이스라엘 앞에만 서면 미국이 작아지는 이유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8.06.0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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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계 압력 단체, 로비ᆞ예산ᆞ네트워크 삼위일체로 미국 정계 쥐락펴락

유대인과 미국은 음모론의 단골 소재다. 소수의 유대인이 미국을 지배한다는 이야기는 증명된 적 없는 음모론의 하나이지만 상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왜 그런지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미국 의회는 이스라엘과 교전한 나라들에게는 미국 무기를 팔 수 없다고 결의하며 그동안 아랍권 국가와 맺은 무기 수출 계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열 받은 석유수출국기구 OPEC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에 석유 금수 조치를 취했다. 미국 경제가 침체의 길로 접어든 것은 뻔한 일이었다.

1975년 당시 포드 대통령은 악화되고 있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아랍권 국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그래서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를 재조정하려 했다. 하지만 70명의 상원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리면서 정치적으로 저항했고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유대인의 영향력이 이 정도였으니 음모론이 나오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주는 혜택도 유대인의 영향력을 거대하게 만든다. 미국이 직접 원조를 하는 국가 중 최고의 수혜국은 이스라엘이다. 연간 30억 달러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군사 문제에서도 나토 가맹국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 매년 워싱턴과 예루살렘은 각종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각종 현안을 두고 협력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난 4월15일 로이터는 “이스라엘 원자력에너지위원회(IAEC)와 미국 핵규제위원회(NRC)는 2주 전 핵 안전 연구에서 이스라엘의 접근을 확대하는 협정을 체결했다”라고 보도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이스라엘을 위해 미국이 손을 내민 것이다. 이스라엘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이란에게는 전쟁 불사론도 마다하지 않는 미국이다. 이처럼 미국이 이스라엘을 자신의 몸처럼 돌보게 된 데는 누구나 알다시피 로비의 힘이 작용했다. 이 힘은 1954년에 만들어진 이스라엘 공공위원회(AIPAC)에서 나온다.

현재 AIPAC에는 대략 2백여 명의 로비스트와 정책 연구자들이 포진해 있다. 예산 규모 역시 어마어마해 4천7백만 달러에 달한다. 1949년에 창립된 이후 차근차근 전개한 풀뿌리 운동은 수많은 활동가를 낳았다. 현재 풀뿌리 활동가의 숫자는 대략 10만여 명에 이르고 충원 활동 역시 미국 전역의 3백개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AIPAC은 전문성을 겸비한 로비 활동, 엄청난 예산, 그리고 촘촘히 조직된 네트워크 활동이 삼위일체가 되어 굴러간다.

외형 이상으로 AIPAC은 커다란 힘을 보여주곤 한다. 특히 정가에서는 AIPAC을 두려워한다. AIPAC이 마음먹고 낙선을 꾀할 경우 정치인들은 살아남기 어렵다. 1982년 일리노이 주의 폴 핀들리 공화당 상원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졌다. 11선의 중진이자 정치적으로 존경받던 인물이었지만 AIPAC의 낙선 대상으로 찍힌 것이 문제였다. 핀들리 의원의 죄는 하나였다. 아랍권과 통하는 인물이었고, 그래서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지도자와 정기적으로 만났기 때문이다. 11선의 정치 베테랑은 이스라엘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984년 찰스 퍼시 상원의원도 비슷한 이유로 정계를 떠나게 되었다. 이런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면서 어느 순간부터 정치인들은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문제와 맞닿게 되면 자연스레 입을 다물게 되었다. AIPAC은 홈페이지를 통해 이스라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안건에 각 의원들이 어떻게 투표했는지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딕 체니 부통령이 워싱턴에서 열린 AIPAC 정책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우려와 논란 나와도 거센 저항ᆞ비난받고 꼬리 내려

AIPAC의 힘이 커지면서 조금씩 우려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하이라이트는 지난 2006년 3월 하버드 대학을 비롯해 전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한 편의 논문이었다. 시카고 대학의 존 미어샤이머 교수와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스테판 월트 교수는 대학 홈페이지에 ‘이스라엘 압력 단체와 미국의 외교 정책’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최근의 수십 년간 중동 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스라엘과의 관계였다. 하지만 이것은 아랍과 이슬람의 여론을 악화시켜 미국의 안전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들의 안전까지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논문을 쓴 저자들은 “이스라엘계 압력 단체는 미국의 국익이 본질적으로 이스라엘의 국익과 동일하다고 미국민이 믿게 만들었다”라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던 침묵의 카르텔을 거스르는 주장을 펼쳤다. 그들은 오히려 “이 주장과 증거에 대해서 진지하게 학술적 논의를 해야 한다”라며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에 미국의 모든 언론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라며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의견을 쏟아냈고 학계와 정치계 역시 이 논쟁에 뛰어들었다. 물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상당수는 논문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케네디 행정대학원의 한 멤버는 “이 논문은 기본적으로 학술 논문에 필요한 요건을 채우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했고, 하버드 대학 출신의 유명한 형사 전문 변호사인 알란 델쇼비츠는 “무지한 선전에 불과하다. 나는 이 논문의 주장을 깨뜨릴 논문을 쓰고 있다”라고 밝혔다.

AIPAC을 노린 논쟁은 곧 한계를 드러냈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하버드 대학은 이 논문에 부착되어 있는 학교 로고를 삭제해 이번 논란에서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거센 저항과 비난에 두 교수는 1년 뒤인 2007년에 내놓은 책에서 “로비를 한 주체가 고정된 어떤 세력이라는 주장은 아니었다”라며 한 발짝 물러섰다.
이처럼 AIPAC의 로비 활동은 논란의 대상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떠한 결론도 내지 못하고 있다. AIPAC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정치인들이 존재하는 한 그럴 수밖에 없다. 올해는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해다. 이스라엘이 건국 60주년을 맞았고 미국에 새 대통령이 등장한다. 6월1일부터 3일까지 워싱턴 D.C.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2008년 AIPAC 정책 수련회’가 주목받는 이유다.

이번 행사는 AIPAC의 공식 회원들만 참가할 수 있는 자리이지만 이미 오바마, 매케인, 클린턴 등 예비 대통령 후보 세 명과 낸시 팰로우 하원 의장 등도 참석 의사를 밝혔다. 이곳에는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도 올 예정이다. 이익 단체의 행사라고 하기에는 참석자들의 급수가 엄청나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미리 차기 대통령 대상자들과 예비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들이 AIPAC의 수련회 장소에 바쁜 일정을 마다하고 참석하는 이유는 다음의 책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마케팅회사 버슨 마스텔러의 CEO인 마크 펜은 자신의 책 <마이크로 트렌드>에서 미국을 변화시키는 1% 사람들의 정치 변화를 기술했는데 여기에 유대인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요약하면 이렇다. “선거의 5대 마이크로 트렌드 중 하나는 기독교 시온주의자들의 표심이다.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기독교인들은 이런 이해관계를 고려해 정치인들에게 표를 던진다.”

거물급 정치인들에게 AIPAC은 마이크로 트렌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보물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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