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행정에 시들어가는 해외 봉사의 꿈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 승인 2008.05.2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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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협력단 운영 허점투성이…처우도 열악해

ⓒ시사저널 임영무
개발도상국가에서의 해외 봉사. 누구든지 젊었을 때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다. 그동안 우리 눈에 비친 ‘해외 봉사’는 나눔과 섬김의 모습이었다. 꿈과 낭만 그리고 환상이 있었다. 그렇다면 해외봉사단 단원으로 직접 활동했거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시사저널>이 접촉한 단원들 중 상당수는 ‘봉사는 필요하지만 자신들은 참담했다’라고 표현했다.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 신세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왜 자신의 인생에서 소중했던 경험을 ‘빛바랜 추억’쯤으로 기억하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해외 봉사 활동에 눈을 뜬 것은 1990년이다. 당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네팔,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4개국에 44명의 협력 요원을 파견했다. 1991년에 지금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 외무부(현 외교통상부) 산하에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체계를 갖추었다. 1995년 14개국에 28명의 국제협력단이 최초로 나가면서 해외봉사단의 파견이 정례화되었다. 지금은 세계 32개국에서 1천5백여 명의 단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초기 동남아시아로 한정되었던 해외봉사단 파견 국가도 탄자니아·르완다 등 아프리카 지역과 파라과이·페루 등 중남미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한국의 해외 봉사단 활동은 눈이 부시다.

그러나 그 속내를 보면 후진국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초창기 해외봉사단원들의 선발 기준은 엄격했다. 선발된 단원들의 개인 자질도 뛰어났고 자긍심도 대단했다. 그러다가 파견 인원 수는 늘어나는데 지원자는 줄어드는 기형적인 현상이 나타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취업 문제와 봉사단의 열악한 처우 등이 해외 봉사단에 대한 매력을 잃게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봉사단 인원을 대폭 늘린 것도 문제였다. 김영삼 정부 때 50명이던 것이 김대중 정부 때는 1백50명으로 세 배가 늘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파견 인원이 7백명에 달했다. 올해는 1천명 수준이 될 듯하다. 이미 상반기에 5백명이 해외로 파견된 상태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글로벌 청년 리더 10만명 양성 계획’을 확정해 발표함으로써 내년에는 봉사단 파견인력이 1만명에 달하게 된다.


모집 분야별 직종 편중…형식적 교육 등도 지적받아

정부의 ‘글로벌 청년 리더 양성 계획’에 대해 해외봉사단단원연합회(KOVA·코바) 회원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협력단(KOICA)의 운영이 허점투성이인 상태에서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봉사단의 부실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런 상태로 가면 대표적인 전시 행정으로 전락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현재 코이카의 해외봉사단 활동은 ‘밀어내기식’ ‘땜질식’ 파견이 반복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05년 해외봉사단 지원자는 9백46명 모집에 4천1백34명이었다. 모집 인원 대비 4.4배에 달했다. 이 중 시험 응시자는 1천5명으로 24.3%에 그쳤다. 최종 합격자 중 실제 출국자는 3백86명에 불과 했다. 모집 인원의 40.8%에 그친 것으로 절반 이상이 파견을 포기했다.

모집 분야별 직종의 편중 현상은 더욱 심했다. 1백19개 모집 직종 중 39개 직종은 응시자가 전혀 없었다. 반면 컴퓨터, 한국어 교육, 간호, 태권도 등 상위 10개 직종에는 응시자의 72.4%가 몰렸다. 이러다 보니 상위 몇 개 업종 외에는 대규모의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현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되고 있다.

코이카는 봉사단원을 보내기 전에 파견 대상 국가를 상대로 수혜 조사를 하고 있다. 어떤 직종에 몇 명이 필요한지를 조사한 후 인원을 적정하게 배분하기 위한 선행 조사인 셈이다. 문제는 특정 직종에 지원자들이 편중되다 보니 나머지 미달 직종에는 꿰맞추기식으로 배분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단원은 ‘전자’가 전공인데 기계로 할당되었다. 해외 파견에 급급한 나머지 단원의 전공·성향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적절한 파견지와 활동 프로젝트 부족, 관리 인력과 능력 부족, 교육과 훈련의 형식화, 단원에 대한 사후 지원 미흡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봉사단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 봉사활동의 보람과 성취감보다는 자신들이 무작정 방치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코바 회원들은 봉사단 운영의 시스템을 대폭 손질하고 단원들의 취업, 처우 개선 등의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적극적인 취업 지원, 해외 경력 인정, 가산점 혜택같이 제도화된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봉사단 파견을 원하는 국가들도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한다. ‘봉사단원’이 필요해서 파견을 요청하는 국가는 몇 개 나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머지 국가들은 지원 비용을 타내기 위해 봉사단 파견을 신청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기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개발도상국의 정확한 수요에 기초한 적정 인원의 봉사단 모집과 파견이 최선이다.

고기복 코바 이사장은 “현재 코이카의 봉사 사업 시스템은 관료적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코이카에서 봉사사업팀을 외부로 분리하는 것이다. 독립된 기구로 재편성해서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숫자를 채우기 위한 선발을 해서는 안 된다. 선발 과정을 철저하게 해서 가치 지향적인 인원을 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장기적인 안목에서 해외 봉사의 가치를 정립하고 단원들에 대한 처우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해외 파견 경험을 경력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대학생 등 젊은이들이 해외봉사단을 꺼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2년 동안의 해외 파견 경험이 국내에서 전혀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취업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현재 봉사단원들은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는 것과 동시에 코이카와의 파견 계약이 시작되고 파견을 마친 2년 후 인천공항에 들어서자마자 계약이 종료되는 시스템이다. 해외에 나갈 때는 관용여권으로 출국한다. 봉사단원의 신분은 국가에서 파견하는 ‘공무원’에 준하고 있다. 그런데도 신분상에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고 있다.

한국 해외봉사단원 중 병역을 대신하는 국제협력요원은 ‘국제협력요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신분을 보장받고 있다. 반면, 일반 봉사단원은 신분 보장이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코이카는 봉사단원들에게 현지 생활비 명목으로 매월 40만~50만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 단원들은 현지에서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파견 계약이 종료되면 귀국 정착지원금 명목으로 9백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것이 봉사단원으로서 받는 혜택의 전부다.

코이카는 내부에 취업정보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나 단원들의 호응이 그다지 크지 않다. 코바 초대 이사장을 지낸 안효덕 북한이탈주민후원회 부장은 “코이카의 취업지원센터는 있으나마나다. 리쿠르트와 계약을 맺고 취업 지원을 하고 있으나 성과도 전무하고 취업 통계도 없다. 코이카가 리쿠르트에 연간 7백만원을 정보이용료로 주는 것으로 아는데, 이 정도 금액을 가지고 어떻게 고급 정보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화영 통합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03년 이후 귀국 단원들의 취업률은 74.6%에서 2005년 42.7%로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추세다.

코이카는 엄격한 선발 요건과 현지 적응 교육을 통해 분야별로 엄선된 전문 인력을 파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봉사단원들의 안전과 제도적인 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단원들의 만족감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귀국 봉사단원 중에는 해외 경험을 충분히 살린 성공적인 사례도 많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청년들을 글로벌 리더로 키우겠다고 하는 것은 미래 지향적인 정책이다. 다만, 마구잡이로 보내는 것이 글로벌 리더 양성은 아닐 것이다. 해외 봉사단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철저한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단원들의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글로벌 리더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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