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얻기보다 ‘같이’ 잘 살자고?
  • 하재근 (대중문화 비평가) ()
  • 승인 2008.04.2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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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나 고우나> <행복합니다>로 본 드라마 속의 기업 경영관 / 현실과 정반대로 그려

 
요 즘 TV에서 포스코 40주년을 기념하는 광고가 나온다. 광고 카피가 극히 ‘불온’하다. 요즘 유행하는 어법으로 말하면 반기업적이고, 반 시장적이다. 그리고 국가주의·애국주의·민족주의적이다. 그 광고의 카피는 이런 것이다.
‘우리에게 철은 사업이 아니라 사명이었습니다.’
기업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으로 일을 한다? 시장주의자들이 보면 정말 황당해할 소리다. 시장주의적인 관점에 의하면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는 집단이지 국가 공동체 같은 것을 위해 사명을 수행하는 곳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정상적인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적어도 한국 기업 1세대들한테 기업은 ‘사명’을 수행하는 기관이라는 관념이 조금이나마 있었다. 지금은 그런 사고방식을 거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포스코의 박태준 전 회장은 1970년에 있었던 포항제철소 착공식 식사에서 “민족 중흥의 꿈을 실현할 사명…민족 중흥의 대업을 완수하는 밑거름이 되어야…”라고 말했다. 1989년에 있었던 창립일 기념사에서는 ‘제철 보국과 인간 존중의 기업 문화’를 말했다.

‘기업은 사업 아닌 사명’은 옛날 얘기

요즘 누가 기업 하는 목적이 ‘보국’이라고 했다가는 거의 ‘맞아 죽을’ 지경이 될 것이다. 시장으로부터는 이익 극대화를 소홀히 한다고 공격당하고, 진보적인 지식인들로부터는 애국주의·국가주의 마케팅을 한다고 초죽음이 되도록 타격당할 것이다. 요즘 기업들은 오로지 ‘주주’밖에 모른다. 주주 이익 극대화, 기업 수익성 극대화가 기업 경영의 목표다. 2006년 3월26일에 방영된 <KBS스페셜>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삼성전자 주총장 발표 장면)
2005년 약 2조원의 자사주 매입을 하여 당기 순이익의 약 40%에 해당하는 (배당까지 합쳐) 약 3조원의 재원을 주주님들의 몫으로 환원하였습니다.
(장면이 바뀌어 삼성전자 전무 인터뷰)
기업은 곧 주주입니다. 주주가 곧 기업을 만든 겁니다. 사업이 번창하면 주주가 살이 찌는 겁니다. 그건 당연한 겁니다.
질문 : 제가 알기론 사훈이 ‘사업 보국’으로 알고 있는데요.
(조금 전까지의 단호한 표정이 사라지면서 순간 말을 잃고 당황)
……근데 그거는 인제 이…에….”
사업 보국이라는 관념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익을 극대화해 주주, 즉 투자자에게 헌납하는 것이 기업 경영의 목표라는 관념이 한국인의 뇌를 지배하고 있다. 그에 따라 당연히 행동이 지배당하고, 한국 사회가 전면적으로 변하고 있다. 모든 기업이 저마다 자기 이익만 차리는 사회로 바뀌어가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급히 완결 지으려 서두르는 한·미 FTA 협정은 투자 자유화 협정이다. 이것은 투자자, 즉 주주들의 이익 극대화에만 복무하는 최근 경제의 성격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보국’이라는 것은 기업이 활동하는 국가 공동체에 대한 책무성을 의미한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투자 자본에게 그런 책무성은 관심 밖의 일이다. 한국 기업은 점점 더 냉정해질 것이다.
이런 식의 관념은 한국 사람들의 본래적 심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은 공동체성이 강했다. 그것이 너무나 강해 각 개별 주체의 독립성이 종종 억압당할 정도로 한국인은 개별 주체의 배타적인 이익 추구를 배척했다. 대체로 시장주의 경제학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순수한 한국인으로서 상식적인 일상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런 관념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평범한 한국인이 공감하는 드라마를 쓰는 드라마 작가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주인공이 선호하는 기업상을 보면 비시장주의적일 때가 많다.
드라마 <미우나 고우나>에서 주인공 상대역의 경영 원칙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익을 내 투자자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주인공인 강백호는 ‘지역 공동체와 회사 공동체가 투자자와 함께 모두 다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주장한다. 강백호는 룰을 지키려 하지만 강백호 상대역은 뇌물, 청탁, 회계 부정 등 반칙을 불사한다.
그는 자신은 질서를 어기면서 자신이 그렇게 허가를 따낸 후에는 지역 주민들이 법 질서에 따라 저항하지 않을 것을 기대한다. 딱 이명박 정부식 법 관념이다. 현실 속에서는 강백호 상대역의 경영 방식이 ‘실질적으로’ 칭송받는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는 강백호의 방식이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측된다. 공동체에 대한 책무성이 투자자에 대한 책무성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 한국인의 전통적인 기업관이기 때문이다. <행복합니다>에서 주인공 상대역인 이종원은 이렇게 말한다. “리조트 사업도 이젠 고급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특별하고 럭셔리한 VIP 고객을 대상으로 고급 스키장·골프장에 집중 투자해서 고수익을 올리는 게 옳다고 봅니다. 사업하는 이유, 사업하는 목적은 이윤 추구입니다. ”
그러나 주인공인 이준수(이훈)는 이렇게 말한다. “레저도 가족 중심입니다.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는 종합 휴양 시설을 제안합니다. 인공설을 뿌린다고 해도 1백20일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1년에 4분의 1밖에 안 된다는 얘기죠. 그래서 우리 리조트는 4계절 종합 패밀리타운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업 목적만은 행복 추구였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인의 경제 ‘상식’ 잊혀진 지 오래 돼

이익만을 따지면 이종원의 말이 맞다. 통상적으로 기업의 이윤은 소비자 중 상위 20%가 80%를 내준다고 한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국민 전체를 상대로 영업하는 경향이 있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럭셔리 트랙을 분명히 나눠 서비스 역량을 분리·집중시키는 경향이 강해졌다. 은행에 가도 일반인들은 하염없이 기다릴 때 일부 소비자들은 직행 코스를 배정받는다.
점점 더 기업과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국가도 그런 구조를 조장한다. 고급화 병원, 고급화 학교 등 ‘특별하고 럭셔리한 VIP 고객을 대상으로’ 고수익을 올려 이윤 극대화 달성에 복무하는 서비스 트랙을 만들어간다.
한국의 전통적인 관념은 이준수의 생각과 유사하다. 다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들인데 야박하게 너무 분리하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잘 살건 못 살건 평준화된 학교에 가야 하고, 회사에 동기로 들어갔으면 비슷비슷하게 승진·퇴직하며 살아야 한다. 이준수의 가족은 네 것 내 것 없이 사는 공동체다. 과거 한국에서는 국가 전체에 이런 공동체적 기풍이 있었고 기업도 그런 관념의 영향을 받았었다. 그래서 ‘사업 보국, 제철 보국의 사명’이라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이다.
일반 서민이 즐겨보는 드라마에는 그런 전통적인 관념의 기업관이 그려지고 있다. 작가들은 이준수와 강백호의 입을 빌려 한국인의 ‘상식’을 말하고 있다. 자본 시장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한국 경제는 이런 상식을 잊은 지 오래다.
회사 공동체든, 지역 공동체든, 국가 공동체든 모두 이윤 추구의 수단일 뿐이다. 그에 따라 대기업 경영 실적이 매우 좋은데도 노동자, 지역 사회, 하청업체는 고사할 지경인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경제인들에게 경제학 공부할 시간에 드라마를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노동자와 하청업체의 고혈을 빠는 것이 당연하다는 경영만큼은 사라지지 않을까? 이준수의 행복 추구 경영이 대세가 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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