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즈 훨훨 나니 타 구단들 “걱정 되네”
  •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8.04.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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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딛고 창단해 승승장구하며 4강 넘봐 선수들 “히어로즈보다 성적 못하면 내년 연봉 끝장”

 

천신만고 끝에 출범한 우리 히어로즈가 잘하면 프로야구 4강에도 들어갈 것 같다. 우리 히어로즈는 지난 4월1일 한화 이글스 전을 시작으로 연승을 달리더니 5일에는 단독 선두에 오르기도 했다. 6일 삼성 라이온즈, 8일 LG 트윈스에 패해 연패를 당하기도 했지만 일단 4강을 이루고 있다.

우리 히어로즈의 초반 파이팅을 바라보는 다른 팀들의 심정이 복잡 미묘하다. 창단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연봉 협상 난항으로 해외 전지훈련도 가지 못한 우리 히어로즈가 잘할수록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해지기 때문이다. 자칫 제주도에서 훈련한 우리 팀의 사례가 해마다 불거지는 ‘프로야구 해외 전지훈련 무용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일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프로야구 각 팀에서는 막대한 외화를 쓰면서 외국에서 훈련할 것이 아니라 제주도를 해외 전지 훈련의 대체지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해마다 나오고 있다. 제주도에서 훈련하면 국내 프로야구 8팀이 평가전을 수시로 가질 수 있고, 외화를 절약할 뿐만 아니라, 제주도 야구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해서 일거다득(多得)이라는 것이다.

한 야구 선수는 심지어 “이번 시즌에 우리 히어로즈가 좋은 성적을 내지 않기를 바란다. 선수들 연봉을 대폭 삭감하고, 해외 전훈도 못 간 팀이 잘해버리면 다른 구단들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올시즌이 끝나면 대대적인 비용 절감 폭풍이 몰아칠 텐데 우리를 기준 잣대로 삼을 것이 뻔하다”라고 솔직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프로야구 선수들 전체 이익을 위해서는 우리 팀의 선전이 달갑지 않다는 뼈 있는 말이다.

해외 전지훈련 무용론 본격 제기될 듯

그러나 ‘네이밍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우리 구단은 성적이 곧 수익으로 직결된다. 다른 구단에 비해 TV 중계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성적마저 나쁘면 방송사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 뻔하고 그렇게 되면 후원 계약은 더욱 힘들게 된다. 따라서 우리 팀은 성적이 좋아야 수익도 좋아지는 구조를 갖고 있어 절대적으로 좋은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

사실 2000년대 들어 세 차례의 우승을 포함해 통산 4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현대 유니콘스 선수들의 전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만큼 4강을 이룬다 해도 별반 이상할 것이 없다.
또한 히어로즈의 상승세가 아직은 프로야구 팬들의 인기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롯데의 돌풍과 비교되기도 한다.

우리 구단이 임시로 거처했던 수원을 떠나 목동이라는 확실한 홈구장을 가졌지만 관중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메이저리그식 운영으로 선수와 팬 모두에게 인정받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지만 정작 목동구장을 찾는 관중은 경기당 3천명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선두를 다투는 롯데와 LG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은 물론 7위인 한화의 평균 5천여 명과 비교해도 훨씬 뒤진다. 한 프로야구 선수는 “히어로즈보다 성적이 못한 구단은 내년에 연봉이 도대체 얼마나 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라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선수는 “히어로즈 선수들은 내년 연봉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과연 베테랑 선수들의 연봉이 대폭 깎이는 것을 본 어린 선수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느냐”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히어로즈의 연봉 협상은 여전히 프로야구선수협회와의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상태다. 언젠가 다시 폭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연봉 감액 규정 삭제, 군 보류 수당 지급 거부 등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사업자 단체 금지행위 위반에 관한 신고서를 제출해놓았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 히어로즈의 올시즌 연봉 구조 조정은 한마디로 혁명적이었다.

선수 연봉 총액이 30억원에 미치지 못해, 지난해 41억원에서 30% 이상 깎였다.

연봉이 오른 선수는 자유계약 즉, FA를 앞두고 있어서 정략적으로 연봉을 대폭 인상시킨 정성훈(2억2천만원에서 3억2천만원) 등 몇몇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 ‘노장 배제’와 ‘실적주의’ 두 가지 원칙에 휩쓸려나갔다.

터무니없는 연봉으로 구조 조정?

 

노장 배제 원칙에 따라 올해 35세인 외야수 송지만의 연봉이 6억원에서 2억2천만원으로 무려 3억8천만원이나 깎였고, 40세 포수 김동수는 3억원에서 8천만원으로 2억2천만원이나 줄어들었다. 39세 외야수 전준호의 연봉은 2억5천만원에서 1억8천만원이 줄어든 7천만원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지난해 성적이 나빴던 것도 아니다. 전준호의 타율 0.296은 지난해 8개 구단 30여 명의 외야수 가운데 8위였고, 김동수는 도루 저지율이 0.225로 주전 포수 가운데 6위였지만 투수 리드와 타격에서는 제 몫을 톡톡히 했다.

10년 이상 경력의 40대 안팎의 프로야구 선수의 연봉이 6천만~8천만원, 즉 대기업 과장 월급밖에 안 된다는 것은 프로이기를 포기한 연봉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상도의에서 벗어나 있는 급여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적주의를 적용하는 데도 원칙이 없었다. 에이스 김수경은 지난해 12승을 올리고도 4억원에서 3억4천만원으로 6천만원이나 깎였다. 투수 신철인은 2006년 65경기에 출전해서 방어율 2.22에 17세이브를 올려 7천5백만원의 연봉을 받았으나 지난해 팔꿈치 수술을 한 이후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연봉이 3천만원이나 깎여 4천5백만원으로 재벌그룹 대졸 초봉 연봉 정도로 쪼그라든 것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 히어로즈의 이같은 구조 조정은 구단 브랜드 가치를 올려 수익을 창출한다는 명분과는 분명히 다른 방향이다.

야구계에서는 이같은 과격한 구조 조정의 여파가 올해 정규 리그에서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멍석을 깔아보니 리그 초반이기는 하지만 우리 히어로즈는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우리 히어로즈의 파격적인 구조 조정 모델은 기존 구단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야구협회의 임원은 “우리 히어로즈의 파격적인 구조 조정으로 인해 당장 기존 구단들이 올시즌 운영비를 20%씩 깎아서 집행하고 있다. 그러나 운영비 20% 삭감은 시작에 불과하다. 올시즌이 끝난 후 우리 히어로즈의 예를 모델로 삼아 각 구단이 대폭적인 구조 조정을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물론 우리 히어로즈의 상승세를 ‘찻잔 속의 돌풍’쯤으로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있다.

우리 히어로즈의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는 ‘투수 명가’를 자처하는 팀이었다. 우리 히어로즈는 일단 마일영·장원삼·황두성 등의 선발 투수를 낸 다음에 한 경기 3~4명의 투수를 투입하는 ‘벌떼 마운드’로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러나 ‘벌떼 마운드’는 보통 투수들이 가장 넘기기 어렵다는 7월이 오기 전에 엄청난 체력 소모를 가져와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마무리로 낙점되었던 신인 김성현이 불안해지자, 이광환 감독은 김성현 대신 송신영에게 마무리를 맡기고 있는데, 최고구속 1백40km 안팎에 머무르고 있는 송신영은 셋업맨이지 마무리가 아니다. 김성현이 자리를 잡지 못할 경우 우리 팀은 뒤가 불안해진다.

투수력으로 버티고 있는 우리 히어로즈는 만약 마운드가 붕괴된다면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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