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성 없어도 공무원이 좋아”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4.0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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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미디어리서치, 20~30대 1천명 ‘직업관’ 조사 / 직장 고르기 ‘몸 따로 생각 따로’ / 취업 선호도 1위 공무원, 비전은 “최악” / 미래 최고의 직업은 금융자산 운용가

 

“장래를 생각하면 썩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은 가장 안정된 직장이니까….” 20~30대 젊은 층의 직장관이 혼란스럽다. 이들은 향후 전망이 좋지 않은 직업으로 공무원을 꼽으면서도 당장 취업하고 싶은 직장으로는 관공서와 공기업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젊은이들의 직업관이 꿈과 비전을 갖고 원대한 포부를 살려나가는 장기적인 안목보다는 당장 눈앞의 안정에 안주하는 식으로 직장을 선택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들은 또 교사나 기업 임원, 변호사, 의사 등도 향후 몇 년 사이에 쇠퇴할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교원 임용고시나 사법고시 열풍, 이공계 기피가 뚜렷해지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한마디로 말해 오늘날 젊은이들은 ‘몸 따로, 생각 따로’ 직장을 선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사저널>은 여론조사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지난 4월1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20~30대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직업관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응답자 가운데 사무직에 종사하는 화이트칼라가 5백21명, 학생이 2백26명, 생산직에 종사하는 블루칼라가 84명, 가정주부가 67명, 자영업자가 31명, 기타가 71명이었다.

전체 응답자 10명 중 3명이 지금은 괜찮지만 앞으로 전망이 없을 것 같은 직업으로 공무원을 꼽았다. 남성의 경우 30.5%가 향후 쇠퇴할 직업으로 공무원을 꼽았고, 여성은 26.6%였다. 공무원 다음으로 향후 전망이 좋지 않은 직업에 기업 임원(19.6%), 교사(15.5%), 변호사(11.1%), 의사(10.6%) 등이 꼽혔다. 이른바 ‘사’자가 들어가는 변호사나 의사는 과거에 비해 점차 쇠퇴하고 있는 직업을 묻는 질문에서도 응답률이 높았다. 변호사는 16.9%로 2위였고, 의사는 15.5%로 3위였다. 과거에 비해 현재 쇠퇴하고 있는 직업 1위는 교사(20.8%)였다.

“고용 불안하더라도 급여 많으면 선택”

반면 당장 취업을 하고 싶은 직장으로 관공서·공사를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28.3%로 가장 많았다. 남성은 26.3%가, 여성은 30.3%가 공사·관공서를 취업하고 싶은 직장 1순위로 선택했다. 이어 대기업(21.2%), 외국계 기업(17.5%), 중소기업(16.2%), 자영업(12.9%) 등의 순이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관공서·공사는 화이트칼라(32.3%)가 가장 선호했고, 대기업은 학생들(31.1%)이 가장 많이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계 기업은 블루칼라(23.1%)에서, 중소기업은 주부층(21.1%)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응답률이 나왔다.

이런 결과에 대해 취업 포털 사이트 잡코리아의 황선길 본부장은 “매우 모순된다. 리스크를 거부하고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꼽는 젊은 층의 취업 트렌드가 그대로 나타난 결과다. 이들은 유망한 직종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본인은 관공서나 공사에 소속된 일반 공무원이 되려고 한다. 큰 위험 부담 없이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공무원 사회가 크게 변하리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자신들이 공무원이 되어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직업의 안정성이 담보되는 시절이 지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안정이라는 것은 자신들의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배양해서 어떤 변화에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추세는 다른 항목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전체 응답자 10명 중 5명은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가장 큰 직업으로 금융자산 운용가를 꼽았다. 다소 낯설지만 고객의 돈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프라이빗 뱅커(PB)·펀드 매니저·증권투자 전문가 등을 포괄하는 직종이다. 금융자산 운용가는 미래 유망 직종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같은 응답률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입 장벽이 높고 경쟁도 치열해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직업이다.

이 때문에 금융자산 운용가는 당장 취업하고 싶은 직업군에서는 하위권으로 밀려나 있다. 취업하고 싶은 직업군 1위는 경영·회계·사무직(26.6%)으로 조사되었다. 그 다음은 건설·기계·전기·전자·정보통신직(17.6%), 문화·예술·디자인·방송직(13.7%), 교육·자연과학·사회과학직(12.7%) 등의 순이었다. 금융자산 운용가가 속하는 금융·보험 분야 직업군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전체 응답자의 7.6%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20~30대는 직업을 선택할 때 무엇을 우선 순위에 두고 있을까. 답은 돈이었다.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사항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35%는 ‘급여 수준’을 꼽았다. 그 다음은 소질이나 적성(21.5%), 성취도나 발전 가능성(17.2%), 복지 수준(14.1%) 순이었다. 반면 고용 안정성은 8.9%로 의외로 낮았다. 개인 시간이나 사회적 평판을 고려한다는 응답자는 각각 2%와 1.1%에 불과했다. 이런 결과는 고용이 불안해도 급여가 높은 직업을 선택하는 추세를 드러낸 것이다.

급여 수준은 월 3백만원 이상을 희망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40.1%로 가장 많았다. 이는 성별·연령·직업·학력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계층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2백만원 이상(22.7%), 4백만원 이상(18.4%), 5백만원 이상(17.8%)이 그 뒤를 이었다. 월 100만원 이상을 희망하는 응답자는 전체의 1.1%였다.

55.2% “한 직장에서 평생 일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지금 일하는 직장이나 앞으로 들어갈 미래의 직장에서 평생 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재 또는 미래 직장에서 평생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5.2%가 ‘그럴 것 같다’라고 답변했다. 반면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응답은 42.6%였다. 직장을 선택하면서 고용 안정성을 적지않게 의식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결과라고 여겨진다. 퇴직 희망 연령도 높게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10명 중 4명은 50대까지 직장 생활을 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이어 60대 초반(29.8%), 40대 이하(14.5%), 60대 후반(10.1%), 70대 이상(5.3%)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헤드헌팅업체 엔터웨이의 박운영 부사장은 “이번 조사로 젊은 층의 직업관 내지는 취업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같다. 이들의 직업관은 필요 이상의 자본 논리와 맞물려 있다. 대학 졸업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취업할 때 급여 수준을 가장 큰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봉 5백만원을 더 받을 수만 있어도 직업이나 회사를 쉽게 바꾼다. 사실 긴 안목에서 보면 얼마만큼의 초봉 차이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경력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이런 트렌드가 젊은 층만의 문제는 아니다. 20~30대의 직업관이 모호하게 형성되는 것은 직업에 대한 정보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현재 학교에서 하는 직업 교육은 젊은이들이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는 직업 정보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 층에게 올바른 직업관을 심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배우자의 직업에 대한 선호도를 묻는 질문에서는 남성의 66.2%와 여성의 32.2%가 각각 교사와 공무원을 꼽았다. 금융자산 운용가를 선택한 응답자는 전체의 15.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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