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가수 공연은 무대에 ‘금테’ 둘렀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 승인 2008.03.0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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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료 거품’ 논란 또다시 불거져…정부도 실태조사 나서

 
“외국의 유명 가수 중에는 한국을 봉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공연에 대한 열정은 있는데 이를 제어할 전문가가 없다 보니 가격을 터무니없이 높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
한 공연 기획사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팝가수들의 방한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비욘세, 에릭 클랩톤 등이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올해도 셀린 디온, 비요크, 마룬 파이브 등 거물급 대중문화 스타들의 공연이 줄을 이을 예정이다.
그러나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 다는 아니겠지만 이들이 다녀갈 때마다 고액 티켓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3월18일과 19일 이틀간 서울 방이동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 셀린 디온이 대표적인 예이다.

셀린 디온 공연 VIP석 30만원

셀론 디온 공연의 VIP 좌석 티켓 가격은 무려 30만원이다. 이 정도면 논란을 부를 만큼 비싸다. 지난해 티켓 가격 거품 논란을 빚었던 비욘세나 1월 초의 나나 무스쿠리 공연보다 30% 이상 비싼 가격이다. 일반석 가격도 22만원으로 비욘세나 나나 무스쿠리 공연의 VIP석보다 높다.
공연 주최사인 옐로우 엔터테인먼트측도 너무 비싸다는 지적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높은 개런티를 들여 초청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이 회사 공연팀 관계자는 “VIP석의 경우 베스트앨범 등과 패키지로 티켓을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이 높게 책정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셀린 디온의 유명세나 공연 수준을 감안하면 결코 높은 가격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공연 마니아들은 이웃나라 일본과 비교하면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자신을 공연 마니아라고 밝힌 권미숙씨는 “그동안 국내에서 거품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해외 뮤지션의 티켓 가격은 일본에서 절반 정도에 판매되어왔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지난해 셀린 디온의 프리미엄석과 R석이 각각 13만원과 10만원에 판매되었다. 지난해 방한했던 아길레라 공연도 국내에서 17만원을 받았지만 일본에서는 7만원에 티켓이 판매되었다.
티켓 거품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가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문화부 공연예술팀 이홍신 사무관은 “최근 산하 기관인 문화관광연구원에 ‘공연 가격 합리화 방안’이라는 주제로 티켓 가격의 실태 조사를 의뢰했다. 구체적인 연구 방향이 정해지면 7월께에는 조사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연 업계에서는 정부의 이런 조치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창작품의 가치를 가격으로 따지는 것 자체가 적절치 못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연 티켓의 거품을 따지는 것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고 묻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따져 물었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티켓 가격을 올리는 요인으로 여러 가지를 제기한 바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가 대형 공연 시설이 없는 국내 인프라이다. 일본의 경우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공연 시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 번 초청을 한 가수들은 전국을 돌며 투어를 벌인다. 자연히 티켓 가격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국내에는 2만석 규모의 공연장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올림픽 체조경기장이 그나마 2만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일본과 같이 마니아층의 폭이 넓지도 않다. 때문에 방한한 뮤지션들의 공연 횟수가 단발, 혹은 2회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래서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티켓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의 이런 입장을 의식해서인지 문화부측도 “이번 연구가 가격에 거품이 있음을 단정 짓고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 사무관은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전제 아래 조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액 관람료가 공연 활성화를 저해할 수도 있는 만큼 실태 조사가 불가피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 일각에서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공연 기획사 간의 출혈 경쟁, 불합리한 에이전트 제도, 문화접대비 제도 등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다른 요인들이 아직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격 거품을 부풀리는 가장 큰 요소로 에이전트 제도를 꼽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한국의 경우 아직 크로스 체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 고액의 개런티를 주고 해외 뮤지션들을 초대하지만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전문 인력이 없다 보니 해외 뮤지션과의 접촉이나 협상을 에이전트에 의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종 수수료가 붙게 되고 티켓 가격도 자연스럽게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에이전트 통한 불합리한 관행 끊이지 않아

물론 그로 인해 각종 법정 시비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는 “모든 업무를 에이전트에게 의존하다 보니 잘되면 좋지만 잘못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 자신도 그동안 에이전트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일본도 한때는 외국 뮤지션들에게 ‘봉’으로 통했다. 그러나 문화산업이 급성장하고 관련 인프라가 쌓이면서 현재는 해외 뮤지션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에이전트에 휘둘리지 않고 공연을 할 수 있는 전문가 육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지난해 9월부터 시행한 문화접대비 제도도 티켓 가격을 올리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는 현재 기업의 접대비 지출액 가운데 문화 관련 지출이 3%를 넘을 경우 접대비 한도액의 10%까지 손비를 인정해주고 있다. 기업들이 이런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 사실상 각종 대형 공연의 티켓을 싹쓸이하면서 티켓 가격도 자연히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문화부가 실시 중인 최근 실태 조사에는 문화접대비의 남용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문화관광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문화접대비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으로 티켓값이 상승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조사가 시작되면 이 부분도 다루어야 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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