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잡은 쇠고기, 사람도 잡을라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8.02.2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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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농무부, 시판 쇠고기 6만5천t 리콜…한·미 FTA 주춤거릴 듯

쇠고기 수출 대국 미국이 52초짜리 몰래 카메라 하나에 휘청거리고 있다. 수출 쇠고기의 안전을 장담하던 미국 농무부가 다윗의 돌팔매 하나에 골리앗 신세가 된 셈이다. 미국 농무부는 지난주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도축 및 정육 포장 회사인 홀마크와 웨스트랜드 사의 미국 내 시판 쇠고기 약 6만5천t에 대해 리콜 명령을 내렸다. 미국 농무부측은 병든 소의 검역을 소홀히 하고 동물을 학대한 혐의가 확인되어 이같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미국 쇠고기 리콜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된다. 이 중 약 1만7천t은 미 전국 36개 주 1백50 교육구 소속 초등학교 급식용으로 공급된 것으로 알려져 그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로 한국 쇠고기 시장 개방을 놓고 한국 정부와 오랫동안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미국 정부로서는 일단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한국 세관의 검역 중단 조치에 따라 한국 수출이 막혀 있는 미국 쇠고기에 대한 재수출 길에 커다란 걸림돌이 생긴 셈이다.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의 이양호 농무관은 “홀마크-웨스트랜드 사 쇠고기가 한국에 수출된 기록은 없다. 따라서 이번 사태 때문에 한국 내 유통 수입 쇠고기의 안전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지난 2006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위해 미국 내 도축장과 포장 회사들로부터 안전 검사 신청을 받아 이 중 30여 개 대형사를 선정해, 매년 쇠고기를 수입했었으나 홀마크-웨스트랜드 사는 당시 아예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이농무관은 밝혔다.

 

미국 주재 한국 대사관 “수입 쇠고기 안전성 걱정할 필요 없다”

이농무관은 이번 사태가 한·미 자유 무역협정(FTA)의 미국 내 비준에 영향을 미칠지 여부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한·미 FTA 비준에 장애 요인이 되고 있는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요구하는 미국 의회의 압력은 일단 주춤해질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거의 매년 쇠고기를 비롯한 시판 농·축산물에 대해 리콜이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 2006년과 2007년은 어느 시기보다도 리콜 횟수도 잦아지고 그 규모도 커졌다. 2006년 두 건의 리콜에 이어 2007년에는 6건이나 발생했다. 그 가운데 병든 소나 오염 쇠고기에 의한 살모네라, 이콜리 그리고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다른 식품 리콜 사건에 비해 강도가 훨씬 높다. 지난해 이콜리로 리콜 조치된 톱스 정육사는 환불 액수가 1억 달러를 넘어서자 파산 신청을 하고 회사 문을 닫았다. 연간 매출 총액을 상회하는 환불금을 물고서는 회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오염된 시판 식품으로 인한 환자 발생 건수가 병원 입원 환자 수 32만5천명을 포함해 7천6백만명에 이르고, 사망자 수만 5천명에 달한다. 작게는 배탈 정도에서 크게는 광우병이나 살모넬라균 감염에 이르기까지 오염 식품의 위험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에드 세이퍼 미국 농무부장관은 이번 홀마크-웨스트랜드 사 리콜과 관련해 일단 해당 회사에 대해 영업 정지 처분을 내리고 연방정부 차원의 조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이퍼 장관은 이번 홀마크-웨스트랜드 정육으로 인한 발병 기록은 아직 보고된 바 없다며 소비자 건강 위험 여부에 대해서는 다소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이번 리콜은 지난 2006년 2월부터 시판된 것이 대상이다. 식품 유통 허용 기간을 감안하면 현재 시중에 남아 있는 이 회사 쇠고기의 양은 별로 많지 않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6만5천t이 넘는 홀마크-웨스트랜드 사의 쇠고기는 미국민 대다수, 특히 어린이들에 의해 이미 소비가 끝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농무부는 이번 사태를 조용히 넘기고 싶어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우선 사건의 증거가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동물 학대 방지 단체인 미국의 인도주의협회(Humane Society)의 몰래카메라에서 나왔다. 이 단체는 촬영한 화면을 우선 경찰에 제보한 뒤 일반에 공개했다. 이 짧은 화면이 나가자 사람들은 홀마크-웨스트랜드 사의 동물 학대 행위에 경악했다. 이 회사는 쇠고기 오염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곧바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고, 전 미국인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 몰래카메라 화면은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동쪽 치노에 위치한 홀마크-웨스트랜드 사 도축장에서 지난해 가을 촬영된 것이다. 이 도축장에서 일하던 종업원 한 사람이 옷 속에 숨긴 동영상 카메라로 소를 학대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촬영해 인도주의협회에 넘겼다. 화면은 일꾼들이 병이 들어 일어서서 스스로 걷지 못하는 도축 대상 소를 지게차 날로 밀어붙여 공기돌처럼 뒹굴게 하거나 앞발에 줄을 매 끌어당겨 옮기는 장면을 담고 있다. 또 다른 화면은 일꾼이 수돗물 호스로 소머리에 물을 끼얹거나 소 입안으로 소방 호스를 밀어넣어 물을 강제로 주입시키는 등 고문에 가까운 가혹 행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주의협회는 일단 종업원들의 동물 학대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애완 동물이 아닌 식용 동물일지라도 가혹 행위는 불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일반 미국 시민들은 동물 학대라는 법률적인 문제보다는 자신들이 식용으로 구매하는 쇠고기가 가혹 행위나 고문받은 소에서 나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치를 떤다. 이 회사의 시판 쇠고기 4분의 1 정도가 자녀들의 학교 급식으로 사용되었다는 데 더 경악하고 분노한다.

 

물 먹이고 고문하고…“광우병 감염 여부 확인이 더 시급”

미국 농무부는 홀마크-웨스트랜드 사의 부당한 동물 학대 행위를 강조하면서 쇠고기 오염 문제에 대해서는 수의사의 검진 소홀 정도를 문제 삼는 선에서 마무리 지을 태세이다. 일단 직접적인 피해자가 밝혀지지 않는 한 이 사안을 홀마크-웨스트랜드 사로 국한시킴으로써 전국적 식품 공황으로 몰고가거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해외 신용도에까지 파급되는 것을 막겠다는 생각이다. 세이퍼 장관의 문제 회사에 대한 강력한 어조의 비난 성명은 사건의 초점을 종업원이나 회사로 좁히자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연방 상원의 딕 더빈 의원(일리노이 주)이 세이퍼 농무부장관과 미국 식품안전검사국(FSIS)에 보낸 서신을 통해 이들 쇠고기가 학교 급식에 사용된 점을 강조하고 철저한 조사와 대비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서 정치권의 문제로 비화될 조짐도 있다.
더빈 의원은 “화면에 나타난 동물 학대가 끔찍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 어린이들이 학대받은 소에서 나온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더빈 의원은 특히 앞으로 학교 급식용 식재료에 대한 전반적이고 철저한 안전 대비책 마련을 촉구했다.
하지만 미국의 주요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번 홀마크-웨스트랜드 사 도축용 소 학대 사건이 더 구조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면에 나타난 소들은 스스로 일어서서 걷지 못하는 병든 소임이 확인되었다고 전제한 이들 언론은 우선 이들 소가 면역력이 떨어져 어떤 질병에도 쉽게 감염될 수 있음을 반증한다고 지적한다. 걷지 못하는 소는 땅에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어 오물에 쉽게 노출되고 질병으로 약해진 탓에 오물 속의 박테리아가 침입하기 쉬워 다른 심각한 병을 앓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스스로 걷지 못하는 소를 도축에서 제외하지 않고 걸어서 도축장으로 들어가도록 지게차로 밀어부치는 것은 단순한 가혹 행위가 아니라 병든 쇠고기를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범죄 행위라고 주장한다.
특히 몇몇 언론은 광우병의 주요 증세가 소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는 것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즉 문제의 소들이 광우병에 감염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 더욱 시급하다는 것이다.
미국 농무부는 이런 언론들의 지적에 무척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당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꺼리는 한국 같은 나라들에 쇠고기의 안전성을 구구히 다시 설명해야 할 부담을 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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