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접수한 ‘형님’들 “돈 빌려드립니다”
  • 정선·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 승인 2008.02.18 11: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원랜드, 영·호남파 이어 토박이 조폭도 가세 전당포 차려놓고 불법 사채놀이·카드 깡 일삼아

 
설연휴였던 지난 2월8일, 강원랜드 카지노와 스키장으로 가려는 차량들로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일대 도로가 꽉 막혔다. 이날 강원랜드 카지노 입장객은 자그마치 1만8천여 명. 이는 지난 2003년 개장 이후 하루 입장객으로는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 연휴가 끝난 지난 2월11일 저녁, 기자는 강원랜드 카지노를 찾았다. 카지노 입장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는 했어도, 블랙잭이나 포커 등 늘 인기가 많은 테이블 게임장에는 여전히 빈자리가 없었다. 이 카지노를 찾는 입장객 수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지난해에는 강원랜드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액이 1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카지노가 왜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불리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강원랜드에서 건전한 오락으로 카지노를 즐기는 사람들 속에서 조직폭력배(이하 조폭)들이 돈벌이를 하고 있다. 카지노와 조폭.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않고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조폭들이, 돈다발이 오고가는 카지노장이라는 ‘먹잇감’을 그냥 놓아둘 리가 없다.
기자가 강원랜드 카지노 일대를 현장 취재해보니 ‘역시나’ 조폭들이 암약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난 2월12일 새벽 1시께 강원랜드 4층 일반인 카지노장의 은행 현금인출기 앞. 한 남성이 돈을 인출하려고 할 때 20대로 보이는 한 청년이 바짝 다가가 “자금 도와드립니다”라고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그 남자는 청년의 말을 무시한 채 돈을 인출해 그 자리를 떴다. 허탕을 친 청년 역시 대수롭지 않은 듯한 인상이었다.
호남 지역 조폭 출신으로 현재 강원랜드 인근에서 사채업을 하는 강현일씨(가명)는 “일반실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빌려준다고 하는 사람들은 조폭이 운영하는 전당포의 삐끼들(호객꾼)이다. 돈을 1주일 정도 빌려주면서 선이자로 1할(10%)가량을 떼는데, 그중 절반은 삐끼 몫이다”라고 말했다. 가령 1천만원을 빌려주면서 선이자로 100만원을 떼고, 그중 50만원을 삐끼가 챙긴다는 얘기이다.
기자는 이날 카지노장에서 팔뚝에 문신을 새긴 채 반팔 티셔츠를 입은 범상치 않은 사내뿐 아니라 체격과 복장 등 외모에서 ‘조폭 냄새’를 물씬 풍기는 청년들을 여럿 목격했다.
여기서 강원랜드 카지노 안팎에서 벌어지는 조폭들의 활동을 제법 자세히 알고 있는 사채업자 강씨의 설명을 좀더 들어보자. “4층 일반실과 5층 VIP실에는 조폭들이 많다. 거기서 사채놀이를 하기도 하지만 직접 게임을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나 VIP실에서 카지노를 하는 10명 가운데 7명은 조폭이거나 조폭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그만큼 조폭들이 많다. 거기서 돈이 떨어진 VIP한테 적게는 1천만원, 많게는 1억~2억원씩 빌려주기도 한다. VIP는 카지노 단골들이라 아무런 담보도 잡지 않는다. VIP 중에는 유명한 사업가도 있고, 연예인들도 많기 때문에 대부분 신용만으로 대출해주고 있다.”
이처럼 조폭들이 카지노 고객들을 대상으로 불법 사채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폭이 운영하는 일부 전당포에서는 ‘카드깡’을 해주기도 한다.
 

태백과 원주 지역 조폭들이 주도권 장악 중

그렇다면 강원랜드 카지노장에서 암약하는 조폭들은 누구일까. 강원랜드 카지노가 개장한 2003년 초만 해도 호남과 영남 지역에서 올라온 조폭들이 이 지역 주먹계를 평정했다. 호남에서는 광주의 신서방파와 콜박스파, 전북의 배차장파가 진출했고, 영남에서는 부산 칠성파가 손을 뻗쳤다. 그러다 보니 개장 초기만 해도 조직 간의 암투가 빈번하게 벌어졌다고 카지노장 인근 주민들은 말한다. 사북읍에서 숙박업을 하는 김주영 전 정선군의회 부의장은 “카지노 개장 초기만 해도 조폭들이 개입되었지만 (조폭들이) 정착하지 못했고 지금은 불안을 초래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현재도 카지노 안팎에서는 조폭 간에 주도권 장악을 위한 신경전과 크고 작은 다툼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때 영·호남 조폭들이 장악했던 강원랜드 카지노에 언제부터인가 강원 지역 조폭들이 ‘숟가락’을 얹어놓으면서 이 지역 조폭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강원랜드가 위치한 사북읍과 인접한 태백과 원주 지역 조폭들이 주도권을 장악해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강원랜드와 바로 인접한 태백 지역의 조폭들이 카지노 일대 사채 시장을 상당 부분 ‘접수’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강씨는 이에 대해 “아무래도 강원랜드가 있는 사북과 태백이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동원할 수 있는 꼬마들(행동대원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수적으로 우세한 태백 조폭들이 주도권을 잡은 것 같다”라고 전했다. 여기에 강원도 원주 지역 조폭들도 가세하고 있다. 한때 주름 잡았던 영·호남 세력이 강원도 토박이 조폭들에게 세 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형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히 ‘원정’ 조폭과 ‘토박이’ 조폭 간에 충돌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강씨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카지노장에서 한 고객에게 돈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조폭 간에 욕설이 오가는 격한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로 자신들의 고객으로 유치(?)하려다 빚어지는 예견된 충돌인 셈이다. 그러면 해당 조폭대원들은 강원랜드측으로부터 출입 금지 조치를 당한다. 언론에 대서특필될 만한 조폭 간의 ‘전쟁’은 아니더라도 자잘한 ‘전투’가 카지노장 안팎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찰도 이같은 카지노 조폭의 암약과 암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선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장 방훈화 경위는 “합법적인 전당포 업주들 중에도 조폭 행세를 하는 사람이 있다. 또 조폭 출신으로 무허가 사채업을 하는 경우도 있어 내사를 자주 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카지노 내에) 강원도 몇 개 조폭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신고나 증거가 없어 수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망’(동태를 살피는 사람)을 (카지노에) 넣어놓고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강원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사채를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무자를 골프채 등으로 때린 혐의로 임 아무개씨(32) 등 2명을 구속한 바 있다. 임씨는 조폭 행동대원으로 카지노 인근에서 전당포를 운영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어찌 보면 카지노와 조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카지노 입장에서는 고객이 빚을 내더라도 자신들의 매출이 올라간다는 점에서, 조폭은 돈을 빌려주고 거액의 이자를 챙기는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이기도 했던 카지노와 조폭의 ‘보이지 않는’ 커넥션은 쉽게 해체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