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의 상처 딛고 선 ‘무신’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 승인 2008.02.0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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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되 무시할 수 없는 신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신은 위대하지 않다”라고 서슴없이 주장하는 저자가 우선 궁금해진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그는 세계적인 정치학자 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레넌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문학성까지 인정받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2005년 가을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영국 정치 평론지 <프로스펙트>가 함께 실시한 독자 투표에서 ‘100대 공적 지식인’ 5위에 올랐다. 2만여 명이 참여한 온라인 투표 결과, 1위 노엄 촘스키, 2위 움베르토 에코, 3위 리처드 도킨스, 4위 바츨라프 하벨, 그리고 5위 히친스였다. 그는 타고난 우상 파괴자이자 탁월한 논쟁가로, 1949년 4월13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침례교-칼뱅주의)를 신봉하는 부계와 유대교를 신봉하는 모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학교에서는 독실한 기독교도 교사로부터 교육받았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신에 대해 회의가 깊었고, 어른이 되어 세계의 종교를 공부하면서부터는 특히 신(종교) 스스로가 품고 있는 ‘자기 모순’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과 정치·경제를 전공한 그는 좌파 주간지 기자로 활동하면서 현실 정치에도 독설을 뿜어댔다. 베트남 전쟁 등 주요 국제전쟁 도발과 피노체트 정권 지원 등 정치 공작의 책임을 물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전쟁 범죄자·반인륜 범죄자로 기소한 단행본을 펴내기도 했고, 가톨릭 교회 등을 비판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이 숱한 한국 독자들도 만들어낸 것을 보면 ‘신을 모독하는’ 듯한 내용을 반기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이단 논쟁’만이 판을 벌이던 마당에 ‘호교론자’들의 할 일이 더욱 늘어난 것을 여기저기 보이는 글들에서 느낄 수 있다.
 

‘무신론자’를 무시하지 말라는 소리?

사실 종교를 경멸하는 사람들은 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에 천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교가 저지른 역사상의 죄악을 좌시할 수 없다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
저자는 신(종교)에 깃든 모순을 파헤쳐 그것이 보통 사람의 생활과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 미래 인류의 평화와 어떻게 불화할 수밖에 없는지를 논증하고 있다. 이제까지 종교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지적하던 지식인들 대부분은 생물학, 집단 유전학, 발생학 등 자연 과학에 바탕해 종교를 ‘외부로부터’ 비판해들어가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이와 달리 히친스는 종교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신의 속성에서 찾아 신과 함께라면 인간은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없음을 논증하며, ‘신(종교)의 자기 모순에 파고들어 내부의 붕괴’를 기획하기까지 한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을 만한 내용이지만 종교계의 호교론들로서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논쟁의 시작이다.
이 책 논의의 출발점은 신과 종교의 ‘자기 모순’이다. 그러므로 ‘참신앙은 다르다’ ‘진정한 종교인도 많다’라는 식의 예상할 수 있는 종교계의 반론은 사전에 봉쇄되며 저자가 거론하는 ‘진짜 문제’에 집중하게 만든다. 예컨대 호교론자는 본 회퍼나 테레사 수녀쯤을 예로 들며 ‘이렇게 대단한 종교적 실천도 있었다’라는 반론을 준비하겠지만 ‘초월적’이거나 ‘신비’한 반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종교의 모순을 논하는 데 신자가 아닌 무신론자나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결국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반론밖에는 제시할 것이 없을 것 아닌가! 히친스가 노리는 것은 이것이다.
히친스는 경전 자체, 교부(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종교 지도자군 일반)의 가르침, 종교의 역사 하나하나에 일일이 파고들어 이렇게 논증한다. “인간은 인류 역사의 시원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과 함께, 신의 섭리에 따라 서로를 죽이고 짓밟는 한편, 간신히 이룩한 문명의 성과를 파괴하며 살아왔다. 파괴와 반생명주의는 신의 속성이며 종교의 태생적인 조건이다. 이제까지 서로 부수고 짓밟고 살아온 인간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새로운 내일을 꿈꾸기 위해 신에 엮인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인간에게 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인간다운 판단과 실천을 바탕으로 신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꿈꿔야 한다.”
저자가 보통 배짱이 아닌 것은 이 저작이 ‘종교의 범죄상 폭로’에 논의를 한정한 책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류 평화와 개인의 행복을 위한 조건을 근본적으로 생각할 때 ‘신 자체’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라는 저자는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단호히 답변한다. “신의 자기 모순을 보라. 묻기 전에 무효다.” 저자가 전하는 핵심은 “인간의 역사와 우리의 삶에서 신을 떨쳐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찾아, 인류의 역사를 평화와 행복으로 다시 설계하자, 새로운 세상을 꿈꿀 권리를 두려워 말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이 있다면 어쩔 것인가. 이런 저자 같은 사람을 ‘마녀 사냥’하듯 단죄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시절도 있음에, 신은 위대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관대하다” 하면서 믿는 자와 안 믿는 자를 두루 감싸안으며 ‘천국’을 건설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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