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인맥도 ‘정권 교체’ 되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 승인 2008.01.0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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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은행들, 이당선인 출신교 동지상고 출신들 전진 배치…3월 이후 대대적 판도 변화 예상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금융권에 수장 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12월27일 법원에 의해 5년형이 확정된 정대근 전 회장 대신 최원병 경북 경주 안강농협조합장을 신임 회장으로 선출했다.
우리투자증권도 지난해 12월24일 이사회를 개최해 차기 사장 단독 후보로 박종수 현 사장을 추천했다. 오는 1월15일 임시주총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업계에서는 박사장이 연임에 성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12월26일 김지완 사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하면서 기존의 김중웅-김지완 투톱 대표이사 체제에서 김중웅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 밖에 오는 3월에는 김종열 하나은행장의 임기가 끝난다. 고 강권석 전 기업은행장의 별세로 윤용로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이 임시 수장을 맡고 있는 기업은행에서도 현재 차기 행장 인선 작업이 한창이다.
금융권에서는 이같은 부분적인 수장 교체가 마무리되는 오는 3월 이후 지각 변동에 가까운 대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엇보다 노무현 정권에서 ‘금융권의 파워 세력’으로 통했던 부산상고 인맥이 물러나고 이명박 당선인의 모교인 동지상고 인맥이 전면에 나설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은행이나 증권사에서는 이런 외부 시선을 적지 않게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동지상고 출신들을 발탁한 데 대해 “새 정부를 겨냥한 포석이 아니냐”라는 소리가 나오자 한결같이 손사래를 친다. 이미 오래전에 결정된 인사인 만큼 외부 입김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권의 핵심 인맥이 그동안 목포상고에서 부산상고로 정권에 따라 움직여온 만큼 동지상고 출신들의 부상을 그리 어색하지 않게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농협중앙회가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해 12월27일 신임 회장에 선출된 최원병 전 안강농협조합장의 경우 이명박 당선인의 동지상고 후배이다. 당시 최회장은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농협중앙회는 최근 상당한 내홍을 겪고 있다. 정대근 전 회장의 구속으로 지도부에 균열이 생기면서 내부 조직은 ‘집안 싸움’으로 연일 어수선하다. 그동안 중앙회 조직과 지방 조합이 다툼을 벌이는 모습도 적지 않게 목격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글로벌 금융 기관으로의 도약은커녕 시중 은행과의 경쟁도 버거울 수밖에 없다. 농협중앙회가 지난해 6월 ‘농협중앙회 비전’을 발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농협 중앙회·현대증권 등 사령탑 교체
 

정 전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잇단 비리 사건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새 정부 들어 대대적인 구조 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과의 보조가 무엇보다 중요해 이당선인의 고교 후배인 최회장에게 중책을 맡긴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최근 김중웅 회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변신한 현대증권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26일 김지완 사장이 임기를 1년5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돌연 사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김 전 사장은 부산상고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인 지난 2003년 6월부터 현대증권 사장을 맡아왔다. 이 과정에서 노련한 경영으로 현대증권의 경영 정상화와 실적 개선을 주도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에 반해 김중웅 회장은 지난 2006년 말 현대경제연구소에서 현대증권 회장으로 영입된 인물이다. 당시 회사측은 “자통법 통과를 앞두고 김회장의 노하우와 인맥을 활용하기 위해 영입했다. 실제 업무는 자문 수준이 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난 상황에서 오히려 주객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업계에서는 김지완 사장의 중도 퇴임을 정권 교체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증권 관계자는 “김지완 전 사장이 업계 리더로 회사의 발전에 상당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초 발표한 대로 건강상 문제가 퇴직 이유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김지완 사장도 퇴직을 앞두고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그동안 애써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현대증권 발전을 위해 애써달라”라는 말만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임원급 인사를 단행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은행은 이당선인의 대학 후배인 이창식 전 구로금천영업본부장을 부행장으로 승진시켰다. 이에 반해 부산상고 출신인 선환규 개인고객2본부장은 8개월 만에 옷을 벗었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12월20일 인사에서 이당선인의 동지상고 9년 후배인 이휴원 IB그룹 담당 부행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임기가 만료된 부행장 6명이 모두 퇴진했는데 이부행장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이에 대해 우연이지 결코 의도된 인사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이부행장도 연임 이후 지인들에게 “이당선인이 서울시장 시절, 시 은행금고 유치 건으로 한두 차례 만난 적이 있다. 이당선인 덕분에 연임됐다는 얘기가 나올까 걱정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금융권의 권력 구도 재편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상되는 인사 태풍권 내에는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 여러 금융 기관장들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여러 소문이 나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행장들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행장 교체를 위해서는 주주총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교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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