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 상속’의 원죄부터 풀어라
  •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 ()
  • 승인 2007.12.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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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사태, 떳떳하지 못한 경영권 승계가 가장 큰 매듭…증여세 납부하고 투명하게 새 출발 해야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사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필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이 이 사태를 세 가지의 큰 줄기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줄기는 이 사건의 종결과 그 과정이 어떻든 삼성이라는 세계적 기업이 영속되는 방향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삼성 자체가 붕괴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것은  온 국민에게 너무나 큰 손실일 것이다. 그 이유는 구태여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삼성이라는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온 국민이 삼성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국민이 삼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겉으로 보기에 이번 사태는 참으로 어마어마하다. 천문학적인 비자금, 분식회계, 불법 로비, 횡령 등 한 기업이 저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범죄가 다 망라된 느낌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동안 한국의 대기업들이 거의 예외 없이 저질러 왔던 일들이다. 그럼에도 만약 이런 문제들 뿐이라면 이번 사태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일정한 대가를 치르고 마무리지은 다른 재벌들의 선례가 있지 않은가?
현재로서 삼성의 사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삼성에게는 모든 국민이 다 아는 원죄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보는 두 줄기는 바로 이 ‘삼성의 원죄’라는 부분이다. 이것은 국민이 잊기도, 용서하기도 쉽지 않은 원죄이다.
삼성은 한국 최대의 재벌이면서 무려 60개에 육박하는 (해외까지 포함하면 무려 1백20여 개) 계열사를 가진, 한국 GDP의 10% 이상을 생산하는 대기업 집단이다. 이 엄청난 재벌이 그 많은 돈에도 불구하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 단돈 100억원도 안 되는 상속세를 내며 자식에게 그 제국을 상속하려 했다. 이것은 위법·불법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염치와 양식의 문제이다. 삼성은 이 양식을 저버렸다.
문제는 삼성에게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려 60개가 넘는 삼성의 계열사 중 40여 개는 비상장사이다. 이 중에는 제일기획, 삼성SDS, 삼성석유화학, 삼성종합화학, 삼성카드 같이 알토란 같은 비상장사들도 다수 있다. 이 중 몇 개만 팔아서 당당히 증여세를 내고 이재용 전무에게 증여하고, 이전무로 하여금 그 돈으로 당당하게 주식을 사 모으게 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그 누구도 시비를 걸 수가 없다. 삼성의 문제는 그 60개의 계열사 중 하나도 팔지 않고 그 많은 것을 다 가지면서, 그것을 또 몽땅 거의 공짜로 상속까지 하려고 했다는 데 있다. 누가 보아도 과욕이었고 탐욕이었다. 국민은 이것을 용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원죄부터 해결하는 것이다. 삼성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단 한 가지이다. 원죄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 해결의 단초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다른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 상황에서 삼성의 정상화는 힘든 일이다.
이 원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 이재용 전무가 경영권 획득을 위해 그동안 축적한 재산을 모두 포기 내지 헌납해야 한다. 그리고 새 출발 하는 방법이다. 그 새 출발은 이건희 회장 일가가 가진 다른 재산, 특히 비상장 계열사에서 출발해야 한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그 재산들을 정리해 증여세를 납부하면서 증여하라. 그리고 이전무가 이를 이용해 합법적으로 당당히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주식을 인수하면 된다. 그때야 비로소 국민은 삼성을 용서할 마음이 생길 것이다. 삼성 문제의 해결은 이 용서의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위기를 어떻게든 일시적으로 넘기더라도 국민은 결코 삼성을 근본적으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삼성 사태를 계속 예측 불가능한 범주에 머무르게 하면서 다른 모든 문제의 해결을 끊임없이 방해할 것이다. 이것은 이건희 회장 일가에게나 국민에게나 불행한 일이다. 삼성은 우리 국민의 경제적 소망의 상징이다. 그 소망의 불꽃이 계속 탈 수 있어야 한다. 그 불꽃은 용서의 토양 위에서만 계속 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밀 유지 의무 안 지킨 김용철 변호사

문제를 보는 세 번째 줄기는 김용철 변호사의 처신 문제이다.
변호사의 기밀 유지 의무는 가톨릭 신부가 고해성사의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 의사가 아무리 흉악한 범죄인의 건강이라 할지라도 돌보아야만 하는 의무에 상당한 것이다. 신부, 의사가 의협심과 정의감에서 자신의 의무를 위배할 수 없듯이 변호사도 의뢰인의 기밀을 지켜야 하는 의무만은 위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변호사가 이 의무를 위반해 의뢰인이 피해를 본다면 그것은 마치 환자가 나쁜 사람이라는 이유로 의사가 자신을 신뢰하고 몸을 맡긴 환자를 치료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의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라는 신성한 의무 밑에 다른 의무를 종속시킬 수 있어야 한다.
삼성 그룹 내에서 김용철 변호사의 역할은 변호사였다. 보수를 월급으로 받는다고 해서 변호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삼성은 그에게 의뢰인의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김변호사의 모든 행위는 변호사 윤리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삼성에 죄가 있다고 해서 의뢰인의 비밀을 폭로한 김변호사의 행위가 민주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점이 덮어져서는 안 된다.
나는 미국에서 법조인으로 훈련을 받았고 미국과 한국의 법조계에서 활동한 바 있다. 미국에서 변호사의 기밀 유지 의무는 가장 신성한 의무로 간주된다. 그런 필자가 한국에 돌아와 변호사로 일하며 겪었던 현실은 때로 충격적이었다. 변호사의 기밀 유지 의무에 대해 사회 전체가 너무 소홀하고 방심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부자 고발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부자 고발도 더 큰 법익을 구성하는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살인자의 집에 경찰이 불법으로 침입해 살인에 사용된 무기를 압수했다고 치자. 법원은 그 살인자가 무죄 방면이 되는 위험성을 무릅쓰고서라도 그 무기에 대한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민의 사생활 보호라는 더 큰 법익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신부가 신도의 비밀을 누설함으로써 다른 정의를 실현하려는 것은 이와 같이 더 큰 법익을 놓치는 것이다. 환자가 흉악한 범죄인이라고 해서 의사가 아무렇게나 치료해 환자를 죽게 했다면 그 의사를 칭송하기 이전에 더 큰 법익이 저버려진 것을 개탄해야 한다.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앞서 말한 세 가지 큰 줄기로 이번 삼성 문제가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을 잘 아는 외국 전문가들에게 앞으로 한국 경제가 잘 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과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 대답은 거의 하나로 모아지는 것 같다. 그것은 재벌의 지배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외신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삼성으로 대표되는 한국 기업들의 투명성에 주목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을 포함한 많은 한국 기업들의 지배 구조가 깨끗하고 투명한 구조로 많이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구습을 쉽게 버리기는 힘든 법. 대한민국 GDP의 약 7분의 1의 매출을 올리는 국민 기업 삼성은 이제 다시 한 번 마음의 끈을 동여매고 새롭고 투명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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