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계약서의 ‘이면’ 들출까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7.11.2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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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판 진위 여부에 관심 집중…관건은 검찰의 판단

 
온 나라를 혼란의 도가니 속에 집어넣었던 ‘BBK 의혹’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제 BBK 의혹의 핵심은 김경준씨측이 ‘히든 카드’로 제시하고 있는 이면계약서의 진위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김씨의 모친 김영애씨는 11월23일 급거 귀국해서 이면계약서의 원본이라며 문건을 검찰에 넘겼다.
BBK 의혹의 실체를 밝힐 수도 있는 중요한 문건이 대선이 임박한 막바지 시점에서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을 두고 또 다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통합신당과 무소속의 이회창 후보측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임을 밝힐 수도 있는 중요 문건인 만큼 검찰은 하루빨리 사실을 밝혀야 한다”라고 검찰 수사를 재촉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측은 “김씨측이 그동안 3년간의 소송 과정에서도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문건이라고 내놓는 것 자체가 이미 조작임을 증명하는 것이다”라고 반격하고 있다.
김씨측이 제시한 이면계약서는 모두 네 건이다. 영문으로 된 세 건은 모두 2001년 2월21일 작성된 것으로 AM파파스가 이후보와 김씨의 LKe뱅크 지분 53.3%를 1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 매입 계약서’, 이후보와 김씨, 에리카 김 변호사 등 이뱅크증권중개의 기존 주주들이 LKe뱅크에 지분을 모두 넘기는 ‘주식 매각 계약서’, 그리고 이후보, 김씨와 LKe뱅크가 맺은 ‘주식 청약 계약서’ 등이다. 이들 세 가지 영문 계약서의 내용은 이후보와 김씨가 LKe뱅크 주식을 AM파파스에 팔아 얻은 주식 매각 대금으로 이뱅크증권중개를 만들고, 이뱅크증권중개 대주주들이 다시 LKe뱅크의 주식을 사는 순환 출자 구조가 담겨 있다.

김경준씨는 왜 이제야 비밀계약서 원본 공개했나

한글로 된 나머지 한 건은 ‘주식 매매 계약서’라는 제목의 두 쪽 분량으로 ‘매도인 이명박’이 BBK의 주식 61만주를 49억9천9백99만5천원에 ‘매수인 김경준’에게 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내용대로라면 그동안 “나는 BBK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았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온 이후보의 말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증거 자료가 된다. 이 문건은 앞서의 영문 문건보다 정확히 1년 전인 2000년 2월21일에 작성된 것으로 되어 있다.
핵심 포인트는 바로 한글로 된 이 두 장짜리 문건이다. 이 문건의 진위 여부 하나만으로 사실상 현재 BBK 의혹을 일거에 해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김씨측은 이 중요한 문건을 그동안 왜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내놓은 것일까. 
그동안 이 이면계약서를 만지작거린 김씨측의 대응은 확실히 어떤 의도가 엿보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씨가 이 문건의 존재 자체를 처음 공개한 것은 지난 8월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수감 상태였던 김씨는 국내 한 언론사와의 간접 인터뷰에서 “이후보가 BBK의 실소유주임을 밝힐 수 있는 비밀계약서가 있다”라며 문건의 일부만 살짝 보여준 바 있다. <시사저널> 또한 제943호(11월20일자) 보도에서 ‘BBK 4대 뇌관’ 중 하나로 이 비밀계약서의 진위 여부가 BBK 의혹의 진실을 가리는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씨가 그동안 이후보측과 치열한 법정 다툼을 벌여오면서도 미국 법정에 이 이면계약서를 공개하지 않은 점과 한국으로의 송환을 결심한 이후인 지난 8월 처음 이 문건의 존재를 알린 점은 김씨측에서 나름대로 이 문건을 자신의 마지막 ‘히든 카드’로 사용하려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즉 이후보측에게 ‘협상용’으로 사용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또한 어떤 극적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오히려 이 문건의 공개가 김씨 자신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당초 김씨가 한국으로 송환될 때 이 문건의 원본을 갖고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막상 그는 사본만 들고 들어와 검찰 수사를 지체시켰다. 11월20일 미국에서 김씨의 부인 이보라씨가 기자회견에서 사본을 공개했고, 21일과 22일 에리카 김 변호사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문건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김씨의 모친이 23일 원본을 들고 직접 한국으로 들어오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잘 짜여진 한 편의 시나리오를 보는 느낌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미주 중앙일보는 지난 11월22일자 보도에서 ‘네 건의 문건을 입수해서 살펴본 결과 몇 가지 의문점이 발견된다’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한글 계약서에 서울특별시를 서울특별비로 표기하는 등 맞춤법이 틀리는 부분이 있고, 세 건의 영문 계약서에 명기된 이후보의 서명이 서로 다르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 영문 계약서보다 이틀 후에 작성된 2001년 2월23일자의 다른 계약서에서 이후보의 서명 또한 기존의 것과 확연히 다르다. 그리고 2006년 7월16일 이후보의 여권에 표기된 영문 이름의 성과 이름의 표기 순서와도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어쨌든 이면계약서 중에서도 핵심은 한글로 된 ‘주식 매매 계약서’ 문건이라고 보았을 때, 향후 검찰에서 이 문건의 성격을 어떻게 규명하느냐가 대선 정국의 최대 관전 포인트로 부각될 전망이다.

“검찰, 이후보-BBK 관련 정황만 밝히고 마무리지을 수도”

하지만 검찰과 법조계 주변에서는 “이 역시 만만찮다”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한글 문건이 진본임이 확인되더라도 여기에 이후보의 서명이 없고 도장만 있다는 점이 향후 또 새로운 논란을 낳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후보측에서 “김씨가 도장을 위조했거나 몰래 빼돌려 대신 찍은 것이다”라고 주장할 경우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유명 로펌에 몸담고 있는 특수부 검사 출신의 김 아무개 변호사는 “필적 감정의 경우 그 진위 여부가 어느 정도 명확히 가려질 수 있지만, 도장의 경우에는 요즘 컴퓨터 등으로 워낙 위조 기술이 발달해서 정확한 감정이 사실상 힘들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검찰의 판단이다. 현재 김씨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와 그가 제출한 자료의 면밀한 검토를 거의 마친 것으로 알려진 검찰이 마지막 핵심 포인트로 등장한 이 한글판 이면계약서와 관련해서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 하는 점이 관건인 셈이다. 벌써부터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에서는 “검찰로서는 완벽한 증거 자료를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유력 대선 주자의 혐의를 단정하고 기소하는 큰 모험을 감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후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의혹 중에서 수사 결과 상당한 진실이라고 판단할 만한 몇 가지 내용들을 밝힐 가능성이 크다”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면계약서의 진위 여부가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유일한 변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김변호사는 “BBK 의혹의 핵심 포인트가 결국 ‘이후보가 BBK와 직접적인 관련이 되어 있느냐’와 ‘이후보가 김씨와 함께 주가 조작에 직접 개입했느냐’ 하는 두 가지 점이라고 봤을 때, 검찰로서는 전자에 대해서는 충분한 정황 증거가 있음을, 후자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음을 밝히는 차원에서 일단 대선 전 수사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유력 대선 후보를 기소하지 않는 선에서도 세간의 의혹을 어느 정도 입증하는 소기의 성과는 거둘 수 있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결국 검찰의 BBK 의혹 수사 발표가 단칼로 자르듯이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려내는 데 엄청난 부담과 한계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선택의 몫을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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