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에 밀린 ‘비공식’의 힘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7.11.1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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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닷컴’ 출현으로 팬클럽 위축…교감 나누기보다 콘텐츠 소비에 주력

 
역시 여전한 파워를 보여준다. 서태지와 그의 팬들 이야기이다. 서태지가 1만5천장만 제작한 15주년 기념 앨범을 내놓자 그의 팬들은 1분 만에 온라인 예약 매진이라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9만7천원대의 가격표가 붙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태지는 재등장과 동시에 15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할 수 있었다.
잠행을 거듭하는 서태지를 팬들이 망각하지 않은 데는 ‘서기회’ ‘태지매니아’ ‘태지존’ 등 팬클럽의 역할이 컸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 사업회’(서기회)는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다. 서기회는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 선언을 하고난 직후 각지에 흩어져 있던 팬클럽 회장들이 모여 조직한 연합 단체이다. “우리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신을 기리고 기념하는 단체이지 팬클럽이 아니다”라고 밝힌 서기회는 회원 수만 1만3천여 명에 이르렀다. 

서기회 “우리는 팬클럽 아니다”

서기회는 ‘서태지’팬들의 모임이지만 ‘기념 사업회’에 방점을 둔 활동을 해왔다. 서울시에 문화단체로 등록하며 오프라인 사무실을 열고 사회적인 봉사에 힘을 쏟은 것이다. 그들의 힘은 놀라웠다. 문화 검열 반대를 외치며 ‘음반 사전 심의제도’를 철폐시키는 데 공헌했다. 북한에 성금을 보내고 청소년보호법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스타에게 집중하고 열광한 나머지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 난폭하고 무식한 것처럼 보이던 아이돌 팬덤 문화와는 달리 ‘스타에게 목매는 데에서 벗어나 새로운 팬덤 문화를 출현시켰다’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그렇게 된 데는 서기회가 기획사와 연계되지 않은 순수 팬 연합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서기회는 각각의 개성 있는 모임들이 서태지의 공백을 ‘회원 간의 연대’라는 힘으로 극복한 자생적 모임이다. 다양한 의견이 물결처럼 오가고 그것을 자율적으로 정화하는 공동체였다. 여타 아이돌 팬클럽이 기획사의 주도 아래 기획사의 상업적 활동 영역 안으로 흡수되었지만 서기회는 그런 범주를 벗어난 독특한 영역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획사가 유지하는 공식 사이트가 존재한다면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그쪽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공식’의 힘이다. 그러나 2001년 10월12일 서태지가 ‘서태지닷컴’이라는 공식 사이트를 만들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태지닷컴은 팬들이 교감을 나누는 공간이라기보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공간에 가깝다. 월 5천원의 회원료를 내야 정식 가입이 되고 서태지의 미공개 동영상이나 개인 프로필 정보를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팬 연합체는 ‘공식’의 힘에 밀려 무너지고 있다. 서기회가 문을 닫았고 태지매니아, 태지존 등 기존의 팬 모임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뜸하다. 서기회가 보여주었던 ‘스타의 사회성을 인지하고 스타를 극복하는 팬덤 문화’를 사라지게 하고 그 자리에 소비 문화를 채운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서태지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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