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 새는 ‘세금 권력’
  • 왕성상 (wss4044@sisapress.com)
  • 승인 2007.11.1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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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4대 권력 기관의 하나인 국세청은 국가 재정 수입의 85%를 걷는 세정 집행 기관이다. 그래서 엄청난 권한이 주어져 있다. 과세권과 조사권, 세무 정보 수집권까지 있어 ‘무소불위의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검찰청, 경찰청 등은 죄를 짓지 않으면 그뿐이다. 하지만 국세청은 다르다. 누구든지 엮일 수 있다. 죄의 여부와 상관없이 탈세 조사 명분으로 털면 걸려들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국세청이다.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쥔 것은 물론 정권의 정치 자금 조달 창구로서의 권한도 막강했다. 탈세를 한 기업에는 세무공무원이 저승사자 같은 존재이다. 1980년대 한 기업의 경리부장이 세무조사반이 닥치자 심장마비로 숨졌을 정도이다. 조직 역시 ‘매머드급’이다. 6개 지방청, 1백7개 세무서, 1만8천여 국세공무원들이 징세와 탈세 잡기에 동원되고 있다.
이런 거대 조직만큼이나 국세청을 둘러싼 잡음이 수십 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세무조사를 앞세운 ‘정권의 시녀’노릇은 물론 세무공무원들의 비리, 조직 내 불협화음 등이 잦다. 현직 청장이 구속되는 유례없는 일도 그런 맥락에서 빚어진 것이다.
특히 ‘권력의 칼’인 세무조사권의 위력은 엄청나다. 기업이든 단체든 개인이든, 권력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쓰는 카드가 특별세무조사이다. 형사 처벌을 전제로 한 일종의 세무 사찰이라고 보면 된다. 권력은 손대기 껄끄러운 언론사들에도 특별세무조사라는 칼날을 들이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있었던 신문사·방송사 조사들이 이를 말해준다. 1994년에는 추경석 국세청장이 김영삼 대통령 지시로 10개 중앙 언론사를 조사해 파장을 일으켰다. 특별세무조사는 세무 직원 사회에서 ‘염한다’라는 은어가 오갈 만큼 파급 효과와 후유증이 크다. ㄷ일보의 경우 신문사와 대주주들에 대한 전방위 조사가 이루어지자 사주 부인이 투신 자살하기까지 했다.
약점이 많은 기업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심하면 회사 문을 닫거나 사업이 거덜난다. 거대 그룹들도 휘청거리기는 마찬가지이다. 1980년대 초 명성그룹은 조사를 받은 다음 문을 닫았고, 국제그룹 역시 공중 분해되었다.  
 최근 삼성그룹에 몸담았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내용을 보아도 기업들이 국세청 조사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삼성 계열사들의 이중장부·수주액 부풀리기 의혹설, 국세청 로비설 등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삼성그룹의 반박이 있기는 했지만 김변호사와 시민단체의 추가 폭로가 이어져 관심을 끌고 있다. 국세청장 구속과 맞물려 터져 나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소리도 나온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 등 의정 활동 때 국세청장에게는 저자세를 취했던 사례가 많았다. 정면 비판을 삼가고 질의에 대한 국세청장 답변도 서면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흔했다.
정치 자금 모금을 주도하거나 권력의 강요로 기업들로부터 돈을 모은 사실이 드러나 몸을 망친 국세청 사람들이 많다. 15명의 전직 국세청장 중 절반이 비리 연루나 조직 내부 문제로 불명예 퇴진했다. ‘권력의 하수인’‘청와대 전위부대’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탈세 추적의 당위성에도 경제 논리로 풀 사안을 세무조사라는 칼을 동원해 부작용을 낳은 사례들이 수두룩하다. 정권 안보와 유지의 도구 노릇을 한 것이다.

보복성 세무조사·대선 자금 모금 등으로 ‘권력의 시녀’ 눈총

역대 국세청장들의 면면을 보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라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국세청은 청와대 의지에 따라 세무조사를 했다. 권력 최고위층과 줄이 닿지 않으면 청장이 될 수 없었다. 자연스레 정권 실세가 국세청장 자리에 올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는 5·16 군사정변 주역들이 맡았고, 전두환 전 대통령 때는 육사 출신이 임명되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TK·PK·호남 출신이 각각 자리를 차지했다. 더욱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세무조사와 사찰이라는 두 칼날을 이용해 기업인들이 ‘숨도 쉬지 못하게 해놓고’돈을 뜯어내었다. 전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재임 7년간 7천억원을 받았다”라고 털어놓았다.

 

노 전 대통령도 “4천5백여 억원을 조성해 1988년과 1992년 총선 때 1천4백여 억원을 썼다”라고 했다. 전 전 대통령은 13대 대선을 앞둔 1987년 10월 안무혁 국가안전기획부장, 사공일 재무장관, 성용욱 국세청장, 이원조 은행감독원장 등을 통해 대선 자금을 모았다. 성용욱 청장의 경우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에게 그룹 세무조사 내사 사실을 알려주면서 무마 명목으로 50억원을 청와대에 주도록 유도한 바 있다.
이어 1992년 10월 국세청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일가와 계열사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그때로서는 엄청난 1천3백여 억원의 세금이 부과되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재벌의 소유 분산과 부의 세습을 막겠다’라며 정주영 회장을 조준했다. 이에 정회장은 돈이 없어 세금을 못 내겠다고 맞섰고 “억울해 나도 대통령 한 번 하겠다”라며 대선에 나갔다. 현대그룹은 국세청이 물린 세금을 일단 낸 뒤 ‘과세가 부당하다’라며 소송을 벌여 2년여 재판 끝에 1천2백여 억원을 돌려받았다. 재벌 손보기를 위한 보복성 조사의 산 표본들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에는 정치 자금 문제에 청와대가 빠지고 안기부, 국세청 등이 나섰다. 1997년 국세청을 이용한 한나라당의 대선 자금 모금 의혹 사건도 이회창 전 총재 관련 여부가 쟁점이 되기는 했지만 청와대 개입설은 없었다. ‘세풍’ ‘차떼기 정당’이라는 말도 그런 가운데에서 나온 것이다. 1999년에도 이런 일은 되풀이되었다.
김대중 정권은 대선 때 상대 후보 지지 뜻을 밝힌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을 겨냥해 특별세무조사를 벌였다. 국세청은 한진그룹 5개 계열사와 조회장 등 사주 일가가 1조원을 빼돌렸다며 5천4백16억원의 세금을 추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진은 법정 투쟁을 벌여 추징 세액의 대부분을 돌려받았다. 법원은 ‘국세청이 밝힌 탈세 이유가 대부분 적법하지 않다’라고 판결했다.
국세청은 특히 권력자의 정치적·개인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권력을 잡은 뒤 가장 먼저 하던 일이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표적 조사’였다. 현대그룹(정주영)이나 포항제철(박태준)에 대한 특별세무조사가 대표적 사례이다.

직원들의 ‘끈끈한’ 연결 고리 속에 상납 관행 등으로 세무 비리도 잇따라

세무공무원들의 비리 또한 국세청의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직의 연결 고리 속에 관행적 상납과 납세자로부터의 금품 수수, 부정 축재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11월6일 전군표 청장이 현직 국세청장으로는 처음 구속되는 상황까지 벌어졌을 정도이다. 전 전 청장은 2006년 7월18일 16대 국세청장으로 취임하는 날 부산지방청장이었던 정상곤씨로부터 현금 1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이후 정씨는 거의 매달 찾아가 1천만~2천만원씩을 바쳤다. 더욱이 그해 말 인사 때 국세청 부동산납세관리국장으로 옮긴 뒤에도 미화 1만 달러를 상납했다. 국세청장 취임일부터 다달이 뇌물이 오갔고 인사 후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은 뇌물 상납이 관행화했음을 암시한다. 검찰은 영장에서 ‘관행적 상납’이란 말 대신 ‘포괄적 상납’이라고 에둘러 썼지만 성격은 대동소이하다.
국세청의 상납 관행은 세무조사와 연관이 깊다. 전 전 청장의 구속으로 국세청의 상납 고리에 의심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도덕성과 신뢰성이 벼랑 끝에 몰린 분위기이다. 세무 비리는 최근에도 이어졌다. 지난 11월5일 인천지검에는 건설사로부터 골프 가방 4개로 현금 2억원을 나누어 받은 전직 세무서장이 붙잡혔다. 또 지방국세청의 한 사무관은 세금을 줄여주고 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광주지방국세청의 국유지 환수 보상업무 부당 처리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전 세무공무원 이석호씨가 7천억원대 국가 땅(4백98필지, 1백42만㎡)을 가로채려다 덜미가 잡혔다. 이는 지난 6월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이씨 연루 사실이 드러나면서 취해진 조치이다. 희대의 국유지 사기 사건과 관련해 국고(71억6천만원) 손실을 가져오는 등 국세 행정의 총체적 난맥상을 보여주었다.
 세무공무원들의 잦은 비리에 대해 국세청은 궁색한 입장을 늘어놓는다. ‘뇌물 받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구성원이 워낙 많다보니….’ 세무공무원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듣는 소리이다. 국세청 관계자 말처럼 1만8천명의 직원 수는 결코 적지 않다. 그렇다고 비리 사실이 정당화 되지도 않겠거니와 다른 관청과 비교해도 건수가 줄지 않아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매년 1천건 안팎의 세무공무원 비리가 적발되고 있다는 ‘국무조정실 공직기강 확립 업무 추진 실적’ 분석 자료가 잘 말해준다. 나아가 이런 행위에 대한 파면, 해임, 정직, 감봉 등 징계는 고작 10%대에 그쳐 비리의 재발을 불러온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법무부가 국회에 낸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직무와 관련해 비리를 저질러 형사 처벌 받은 국세청 및 관세청 공무원은 24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며 세정 당국의 상급자들은 과연 몰랐을까. 우선 국세청 특유의 상명 하복 문화와 비밀주의가 비리를 부채질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세청은 철저한 보안 의식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으로 유명하다. 5대 국세청장을 거쳐 안기부장으로 간 안무혁씨가 안기부 보안이 허술하다며 “국세청 직원을 본받아라”라고 호통쳤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국세청에 로비와 뇌물 여전히 통한다”…도덕성·신뢰 ‘벼랑 끝’

국세청 직원들은 끈끈한 동료애로 ‘국세청 마피아’라는 소리를 듣는다. 최근 부산청 직원의 딸이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국세청 인트라넷을 통해 알려지자 1천여 동료들이 모금에 참여했고 서울·수도권 세무서 직원 수백명이 헌혈했다. 학계 관계자는 “국세청의 아래 직원들은 납세자 세무 정보를 독점해 비리의 근거로 삼고 상급 간부들은 권한이 몰려 있어 상납 고리가 끊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누가 언제 왜 세무조사를 받았는지, 또 그 결과까지 철저히 쉬쉬하는 비공개 원칙도 바뀌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받은 돈을 상납하거나 ‘업무 협조비’로 쓰는 관행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는 것이 국세청의 해명이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전군표 전 청장 사건에서도 드러났지만 국세청 부패 구조의 한쪽은 ‘뇌물’이고 또 다른 한쪽은 ‘상납’이다. 국세청에 대한 로비와 뇌물로 세무조사를 피하거나 세금 추징 액수를 줄일 수 있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재확인되었다. 또 이렇게 받은 뇌물들이 국세청 안에서 상급자에게 올라가는 관행도 여전하다는 정황이 포착되어 국세청이 술렁대고 있다.
전 청장 구속 이틀 뒤인 지난 11월8일 오전 국세청 회의실에는 긴급 지방국세청장 회의가 열렸다. 참석자들의 표정은 무겁고 어두웠다. 이 자리에서 한상률 국세청 차장은 3번이나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회의 시작 전 먼저 언론에 대해서부터 사과했다. 지난 10월23일 국세청장 퇴근길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사진 기자들과 국세청 직원들 간 몸싸움으로 기자가 다치는 불상사가 생긴 점에 대해 용서를 빈 것이다. 국세 행정을 믿어준 국민과 열심히 뛰어준 직원들에게도 사과하며 머리를 깊이 숙였다. 그러나 한차장이 국세청장 직무대행으로서 한 자리에서 3번씩이나 사과했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글쎄, 얼마나 오래 갈까?’라는 시각들이 지배적이다.
백 마디 사과보다 단 한번이라도 확실히 달려진 국세청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국세청이 내어놓을 특단의 카드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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