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묵은 불안’, 땅속에 묻힌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7.11.1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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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차례 실패 끝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마침내 첫 삽…‘주민 합의로 국책 사업 추진’ 선례 남겨

지난 11월9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저장고(방폐장)가 경주시에 자리를 잡고 착공식을 가졌다. 지난 1986년 후보지를 찾기 시작한 지 21년 만의 일이다. 방폐장의 공식 명칭은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로 이날 착공식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김영주 산업자원부장관, 김종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 등이 참석했다.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는 2백10여 만㎡ 부지에 세워져 80만 드럼의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한다. 이번에 착공한 1단계 사업은 10만 드럼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로 2009년 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며, 총 1조5천억원이 소요된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동굴 처분 방식을 도입한다. 동굴 처분 방식은 지하 80~1백30m 깊이의 바위 속에 수직 원통형 인공 동굴을 만들어 폐기물을 처분하는 것으로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다. 나머지 70만 드럼에 대한 2단계 공사는 2010년부터 이루어질 예정이다.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에서 처리하는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원자력 발전소와 병원, 산업체 등에서 쓰인 작업복, 장갑, 주사기, 시약병 등을 말하며 압축·고화 처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각 원자력발전소에 임시 보관된 방사성 폐기물은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까지 특수 용기와 전용선을 통해 해상 운송 방식으로 안전하게 이동한다. 한수원 관계자는 “이중 삼중의 안전 장치를 갖춘 전용 선박과 특수 차량으로 운반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도착된 폐기물은 철저한 인수 검사를 거친 후 10cm 두께의 콘크리트 용기에 담겨 지하 처분 동굴에서 처리된다. 80만 드럼 규모의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가 완공되면 2073년까지 국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방사성 폐기물 처리가 가능해진다.

 

아시아 최초로 동굴 처분 방식 채택

방폐장 건설 사업은 1986년부터 울진, 영덕, 안면도, 고성, 굴업도 등을 대상으로 9차례에 걸쳐 추진되었다가 실패하기를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처 원자력연구소에서 산자부 산하 한수원으로 추진 주체가 바뀌기도 했다. 지난 2004년에는 지자체의 주도로 부안군 위도가 후보지로 선정되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특히 부안에서는 방폐장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주민투표 결과 91.8%가 반대표를 던지면서 부안 방폐장 유치는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주민 합의 없이는 방폐장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새삼 확인시켜준 것이다.
이후 방폐장 부지 선정은 주민 동의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결국 2005년 8월 유치를 신청한 경주, 군산, 포항, 영덕에서 주민투표가 실시되었고 투표율 70.8%, 찬성률 89.5%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경주가 최종 부지로 선정되었다.
방폐장이 건설되는 경주에서는 각종 지원 사업이 이루어지게 된다. 특별지원금 3천억원이 지급되고 방폐장 운영이 시작되는 2009년부터는 매년 85억원으로 추산되는 반입 수수료가 지원된다. 한수원은 본사가 2010년 7월까지 방폐장 인근 지역으로 옮겨가고 양성자 가속기 사업도 경주에 유치된다. 이 밖에도 국무총리 산하 유치지역지원위원회에서 심의한 55개 사업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질 계획이다.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에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주시의회는 정부가 방폐장 유치 지역 지원사업비 배정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며 방폐장 착공식 참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불참 결정을 철회하기는 했지만 정부의 약속 이행에 대한 불안감이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튼튼한 내진 설계로 방사능 누출 원천 봉쇄”

경주 지역이 활성단층으로 알려지면서 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있지 않을까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한수원 김종신 사장은 “원전과 같은 내진 설계 기준을 적용해 방사능 누출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처분 동굴이 지하 1백30m에 위치하기 때문에 설령 지진이 일어난다고 해도 방사능 누출로 인한 환경 피해는 없다”라고 일축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의 건립은 여러 가지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경제적 지원을 약속해 주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그간의 부지 선정 작업이 합의 도출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져서 실패했던 반면에 시작부터 주민투표를 거쳤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임시 저장고가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폐기물 처리에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점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 연료의 처리에 대한 공론화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실정에서 원자력 발전은 중요하며 그 부산물인 폐기물 처리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김종신 한수원 사장은 착공식에서 “세계 최고의 안전성을 확보해 국민의 신뢰에 보답하고 안정적 에너지 공급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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