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병 내버려두다 틀니 낄라
  • 박관수 (인제의대교수·상계백병원치과 원장) ()
  • 승인 2007.10.2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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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몸 부었다 가라앉았다 하면 중증…흡연·음주 피하고 주기적으로 치과 찾아야

 
2007년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세계 보건 통계 2007>에 따르면 2005년 현재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75세, 여자 82세이다. 이는 2002년에 비하면 남녀 모두 1.5년 정도 늘어났고 1990년 초에 비해 5~6년 늘어난 수치이다. 생활 수준의 향상과 의학에 관련된 학문과 기술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인의 수명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출산율 저하와 더불어 노령 인구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하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매스컴에 주요 뉴스로 등장하고는 한다.
그럼 과연 한국인의 치아 수명은 어떠할까? 일부 통계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노인은 평균 17.9개의 치아를 상실했으며 모든 치아를 상실한 사람이 40%에 이른다고 한다. 중년기 성인의 90% 이상은 잇몸병(풍치)을 앓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다양한 음식을 씹으며 맛보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는데 나이가 들어 이가 없어지면 그런 즐거움을 잃게 되고 제대로 먹지 못할 경우 건강을 해치고 수명까지 단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구강에 생기는 질병 중 잇몸병은 앞서 말한 대로 대다수 중년 이상의 성인이 앓고 있는 가장 흔한 질병이다. TV 약물 광고 중에 두통약, 감기약에 이어서 잇몸약 광고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잇몸병이 얼마나 흔한 질병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이렇게 흔한 질병이지만 감기처럼 많이 아플 때 잠시 약을 먹어 아픔을 달래주고 나면 저절로 낫는 그런 질병이 아닌 것이 또한 문제이다. 처음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지만 일단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진행되고 나면 약을 먹어도 그 때뿐이고 증상의 악화와 완화를 반복하면서 병의 깊이는 점점 깊어가고 치아와 치조골은 회복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잇몸병의 진행은 플라크(치태)로부터 시작된다. 플라크는 음식물의 미세한 찌꺼기와 구강 내의 미생물이 반응해 치아 표면에 만드는 얇은 막이다. 눈에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증상도 없다. 칫솔질을 통해 제거가 가능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질 때문에 구석구석 칫솔질을 세심하게 하지 않으면 완전한 제거가 불가능하다. 플라크 상태에서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다면 잇몸병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플라크가 오랫 동안 치아에 붙어 있는 상태가 계속되면 타액(침) 속의 무기물과 엉겨붙으며 반응해 점점 단단한 물질로 변해가는데 이것이 치석이다. 처음에는 약간 누런 색을 띠며 푸석푸석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색깔이 진해지고 단단해져서 진짜 돌처럼 변화한다. 이 치석이 잇몸병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치석의 주변에는 여러 가지 세균이 살면서 입안에 들어오는 음식물을 양분으로 삼아 번식하고 그 부산물로 다양한 독소를 배출해내는데 이 독소가 잇몸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잇몸은 이러한 독소에 반응해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염증의 초기 증상으로 모세혈관들이 충혈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초기 잇몸병에서 다른 증상은 없이 잇몸이 정상보다 조금 붉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잇몸의 모세혈관이 충혈되어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러한 단계의 잇몸병은 아주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모세혈관의 충혈이 심해지면 잇몸 조직은 약한 자극에도 쉽게 출혈을 일으킨다. 칫솔질을 할 때나 단단한 과일을 씹었을 때 잇몸에서 피가 나오는 증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점에 이르면 아직 별다른 자각 증상은 없지만 잇몸은 본격적인 질병의 단계로 들어선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이 정도 단계에서는 증상이 없기 때문에 치과를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치과에 가면 이 단계의 잇몸병은 간단한 스케일링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스케일링은 치아 표면에 붙어 있는 치석을 제거하는 잇몸병 치료법으로 플라크에서 진행된 치석은 칫솔질로는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스케일링으로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에는 치아 뽑아내야

이런 단계에서 치료받지 않고 놓아두면 새로운 플라크는 계속 치석 위에 생기면서 치석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잇몸 바깥의 치아 표면에만 생겨 있던 치석은 잇몸과 치근(치아 뿌리)의 사이로 파고들어가 잇몸병은 치근 쪽의 잇몸까지 번지게 된다. 잇몸과 치근의 사이에는 치주낭이라고 하는 주머니와 같은 구조가 형성되어 외부에서의 새로운 세균 침투에 매우 취약하게 된다.
치석에 붙어 있던 세균들과 새로이 외부에서 침투한 세균은 잇몸 더욱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치조골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치조골은 잇몸병 세균들이 방출하는 독소에 의해 조금씩 흡수되어 없어지게 된다. 이쯤 되면 자각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데 잇몸이 부었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면서 치조골의 흡수 정도에 따라 치아가 흔들리는 증상이 대표적이다. 통증이 동반되기도 한다. 이 단계에서의 치료법은 조금 복잡하다. 스케일링을 통해 외부로 노출된 치석을 제거하고 나도 이미 치근 쪽 잇몸 아래로 형성된 치석은 제거되지 않고 남아 있다. 치근면 활택술이나 치주소파술 등의 치료로 남아 있는 치석을 제거하면서 치근의 표면을 깨끗하게 다듬어주고 주변 잇몸에 생긴 염증 조직을 제거해주어 건강한 잇몸 조직이 다시 치근 주변을 감쌀 수 있도록 해준다.
치조골 흡수가 더욱 진행되어 어느 선을 넘어서면 위에 말한 치료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 마지막 단계의 치료는 잇몸 수술인데 치은박리소파수술이라고 부른다. 잇몸을 메스로 절개해 젖힌 후 치근 구석구석에 붙어 있는 치석을 제거함과 동시에 흡수된 주변 치조골을 잇몸병에 잘 견디는 구조로 재형성해주거나 잇몸을 재위치 시켜주는 과정이다. 이 정도의 치료가 필요하면 이미 치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치조골이 흡수되어 버리거나 수술 도중에 치아를 뽑아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잇몸병은 처음에는 증상이 없지만 증상이 생기는 단계에 이르면 이미 치아를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진행된 경우가 많다. 일단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치료를 통해 극적으로 치조골이 회복되는 경우는 드물다. 더 이상의 치조골 흡수를 막고 그 상태에서 가장 건강한 잇몸 상태로 유지시켜주는 치료가 주가 된다. 흡연이나 음주는 잇몸의 염증 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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