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이상해요” 정신과에 몰리는 아이들
  • 김지수 인턴기자 ()
  • 승인 2007.10.15 15: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자 크게 늘어…‘완벽한 아이’기르기가 원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사는 아홉 살 유동현군(가명)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어머니 안미선씨(가명·38)는 동현이가 친구들을 사귀고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해보았지만, 아이는 그럴 때마다 “싫어!”라고 소리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진학하자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동현이는 걸핏하면 친구들을 때리고 도무지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하지만 안씨는 동현이의 행동을 외동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돌발적이고 튀는 성격 탓이라고 여기고 넘어갔다. 동현이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고 물질적으로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급기야 2학년이 되어서 학교로부터 ‘부모 호출’이 왔다. 가보니 동현이가 쓰던 바른생활 교과서는 갈기갈기 찢겨 있고, 책상은 온통 빨간 크레파스로 칠해져 있었다. 동현이는 항상 흥분한 상태였고, 화가 ‘폭발’하면 주위를 난잡하게 해놓는다는 것이다.
안씨는 그제야 동현이와 함께 소아정신과를 찾았다.‘반항성 장애’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동현이 부모는 치료를 위해서 주변 사람 모두에게 아들의 정신병 증세를 알려야 했다. 창피하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 학교, 교회 할 것 없이 ‘동현이가 정신병원에 다닌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안씨는 “아이와 함께 산 속으로 도망가버리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한번은 병원에 가는 길에 아는 사람을 만나 “시장에 간다”라고 둘러대자 동현이가 대뜸 “내가 병원에 다니는 게 부끄러운 일이야?”하고 따져 묻는 바람에 당황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1년여의 치료로 동현이의 상태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소아 정신질환에 해당하는 나이는 대체로 3세부터 13세까지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아정신과를 방문하는 아이는 ‘극단적인 경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질환의 경중부터 발병 원인까지 다양해졌다.
가천의과대학교 길병원 정신과 조인희 교수는 “최근 발생 빈도를 보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및 ADHD가 공존된 행동 장애가 40~50%, 정신 지체·자폐증과 같은 발달 장애가 20~30%, 우울증 및 정서 문제 20%, 기타 0~20% 정도로 집계된다”라고 밝혔다.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서는 ‘주변 아이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소아정신과를 다닌 적이 있는 것 같다’라고 할 정도로 어린이 정신질환이 늘고 있다.

영재 교육·조기 유학에 아이들은 괴로워
소아정신과 전문병원인 마인드케어의원 서현주 원장은 “출산율 감소로 소아 인구가 줄어 문을 닫는 소아과가 늘어나는데도, 소아정신과 관련 외래 환자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문의 전화를 받는다”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소아정신과를 찾는 환자들이 늘었음을 실감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증가한 만큼 전문의도 늘어났다. 안동현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 겸 한양대학교 의료원 교수는 소아청소년정신의학 전문의의 숫자(그래프 참고)가 2004년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7년까지 배출된 105명의 전문의 외에도 현재 91명(1년차 21명, 2년차 70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수련 과정에 있다. 수련 기관도 1997년 세 곳에서 2007년 11곳으로, 1년에 최대 24명의 전문의를 배출할 수 있는 규모로 성장했다. 소아정신과와 관련한 질병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커졌음을 보여준다.
반건호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총무위원 겸 경희의료원 교수는 “개원의도 최근 들어 많이 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대다수 병원이 수요가 많은 서울과 경기도 및 주요 대도시에 편중되어 있다”라고 밝혔다. 대한소아청소년의학회 홈페이지에서 집계하고 있는 개원의의 수는 전국적으로 1백94개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소아정신과 환자 수가 늘고 전문의가 증가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첫째는 아이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완벽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부모들의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어 교육, 영재 교육에다 심지어 일찌감치 조기 유학까지 보내는 부모들의 극성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원인은 컴퓨터에 있다. 정통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실시한 ‘2007년 하반기 정보화 실태 조사’에
 
따르면 만 3~5세 유아의 인터넷 이용률이 무려 51.6%로 1주일에 평균 인터넷 사용 시간이 4.3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컴퓨터는 아이들의 감성에 지나치게 자극적일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여가 시간마저 또래들과의 놀이보다는 컴퓨터 앞에서 ‘혼자 놀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정유숙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아이들에게 ‘놀이’는 중요한 배움터이다.‘자연스러운 놀이’는 아이에게 사회성을 길러주고 건강한 지적·신체적 자극을 받게 해준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또래와의 놀이’대신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다.
셋째는 가족 형태의 변화이다. 핵가족화되면서 지난날 가정에서 행해지던 사회 관계 형성 및 역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가정이 해체되면서 이혼 가정, 조손 가정(부모 없이 할머니·할아버지와 생활하는 가정)이 늘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삶의 질이 높아짐에 따라 소아의 이상 행동을 정신질환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의식주에 관한 기본적인 욕구가 해소되면서 자연스레 삶의 질을 좌우하는 정신과적 질병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부모가 문제 있어도 치료 받아야
물론 질병의 원인이 사회·문화적 차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문제가 아이에게 2차적으로 전이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사는 박은정양(가명·6)은 친구들을 때리는 공격적 성향과 대소변 실수가 잦아 병원을 찾아갔다. 상담 결과 아이가 아닌 어머니 이수진씨(가명·43)가 심각한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앓고 있었다. 이씨는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웃집 오빠에게 몇 차례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다. 청소년기에는 그에 따른 고통 때문에 반항적 행동과 가출 등 비행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당연히 결혼 후 남편과의 부부 관계에도 문제가 생겼다. 고부 간 갈등까지 겹쳤다. 결과적으로 은정이는 어머니에게 받아야 할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은정이는 별도의 치료를 받지 않았다. 어머니인 이씨가 정신과적으로 치료를 받자 아이의 문제 행동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소아 정신질환을 줄이기 위해서는 부모와 아이 모두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 차원의 조기 선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모든 병이 그렇듯 소아 정신질환도 예방이 중요하다. 진혜경 국립서울병원 소아정신과장은 “학교에서 학교 정신보건 교육 및 이를 담당하는 상근 교사 또는 관련 정신보건 요원을 상주시켜 조기에 문제를 피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또한 각 종합병원과 학회, 지역사회 차원에서 ‘대국민 정신건강 홍보 및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기 아이에게 맞는 올바른 양육법을 알아야 한다. 성공적인 치료를 마친 동현이의 어머니 안씨는 “부모가 할 일은 매사를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아이의 상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든지 경청해주고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엄마는 내 편’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소아정신과 전문병원인 소향 신나는 심리클리닉 김은숙 원장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의 관계이다. 아이와의 대화를 늘리고, 아이가 예측할 수 있는 일정한 훈육 체계와 상벌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아이를 세심히 관찰하는 것 역시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다. 진과장은 “아이가 급격히 평소와 다른 행동 양식을 보이면 일단 의심해 봐야할 때”라고 지적한다. 대다수의 소아정신과 전문병원에서는 각 병원 홈페이지에 약식의 자가 진단법을 소개하고 있다. 아이가 의심될 때는 간단한 클릭 몇 번으로 해볼 수 있는 자가 진단법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