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들 ‘휴가’ 갔다 언제 오나
  • 변희재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7.09.1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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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 혹평 뒤 <화려한 휴가>에는 침묵 일관…소재 떠나 작품성 등 비판 전무

 
<화려한 휴가>와 <디워>. 이 두 영화의 흥행 돌풍은 기존의 흥행작과는 매우 다른 요소가 개입되고 있다. 영화의 작품을 질적으로만 평가하자면 둘 다 완성도가 떨어진다. 이러한 미흡한 점을 외부의 영향력, 혹은 미래에 대한 기대 심리로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논쟁의 촉발은 <디워>가 불러왔다. <디워>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능가하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개봉 전부터 각별한 관심을 받았다. 특히 개그맨 출신 심형래 감독이 이전에 내놓은 <공룡 쭈쭈> <티라노의 발톱> <용가리> 등은 기대에 못 미치는 평가와 흥행을 받은 바 있었다. <디워>에서조차 무언가 보여주지 못한다면, 심감독으로서는 영화 인생에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심감독은 처음부터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등 홍보에 주력했다. 관객들은 이에 호응했다. 물론 기대 이상의 화면 구성 등 심감독의 기존 영화보다 몇 단계 발전한 영화 자체의 힘도 있었다. 이에 더해 미국의 1천4백여 개의 스크린에서 상영 일정이 잡히며, 대한민국의 영화가 할리우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의 관객들은 지난 5년간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을 50% 이상으로 올려놓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사상 최다인 70%를 기록하는 등 한국 영화의 전성시대를 열어주었다. 세계 영화시장을 평정한 할리우드 영화는 겨우 20%에 불과했다. 이미 수치상으로 보자면 자국 영화 40% 상영 일수를 의무화한 스크린쿼터는 무용지
 
물이었다. 그럼에도 지난해 한·미 FTA 협상에서 영화인들은 대형 스타를 앞세워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여론몰이에 들어갔다. 반응은 싸늘했다. 한국 관객들은 작품의 질만 좋으면 얼마든지 국내 영화를 보아주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왜 좀더 진취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국내에만 안주하려 하느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통 영화인과는 조금 다른 개그맨 심형래 감독이 미국 시장 진출을 선언하니, 관객들은 박수를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화평론가와 영화인들은 이러한 <디워>의 열풍을 애국주의 코드라 폄훼했다.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애국심으로 국내 영화를 보호하자고 주장해온 것이 바로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친 영화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논쟁 탓에 <디워>는 더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미국 개봉에서도 성공한다면, 이 효과가 곧바로 국내 시장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디워>의 흥행을 끌어가는 외부 효과는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치이다. 설사 조금 미흡하더라도, 다음 번, 그 다음 번에 완성도를 높인다면, 한국 영화의 폭이 넓어지며, 할리우드영화처럼 전세계에 보급될 수 있는 날도 올 수 있다는 기대이다. 만약 <디워>의 적정 관객이 5백만명이라고 치면, 이러한 기대 효과로 1천만명을 채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대 효과는 정당한 마케팅이다.
축구팬들이 분명히 성인 축구보다 질이 떨어지는 청소년 축구를 보는 이유도 이와 같다. 작품에 대해서도 미래에 대한 기대치가 현재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는 애국 코드도 아니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작품 감상자의 심리적 특성이다. 심감독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든 <디워>는 사실상 최고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5·18 재조명 못하고 ‘참혹했다’는 메시지만…”
<화려한 휴가>는 <디워> 현상과 전혀 반대의 경우이다. <화려한 휴가>는 민감한 ‘광주 5·18’을 소재로 다루며, 현재 7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럼에도 이상하리만큼 이 영화에 대한 논쟁이 없다. ‘광주 5·18’에 대한 논쟁도 없다. 일방적으로 5·18 때 이렇게 참혹한 일이 벌어졌으니, 잊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만 반복하고 있다.
<화려한 휴가> 제작진은 처음부터 이러한 마케팅을 계획했던 것 같다. 유인택 제작자, 김지훈 감독 등은 한 목소리로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단순히 영화로만 봐달라”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손학규·정동영·신기남·한명숙 등 범여권의 대부분의 대선 주자들은 <화려한 휴가>를 관람한 뒤, 상대측을 공격하는 소재로 삼았다. 5·18이 영화를 통해 현실 정치판으로 끌려들어온 것이다. 심지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도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 제작진들은 이에 동석했다. 주연 배우는 “5·18에 책임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떻게 잘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라는 발언을 했다. 제작자와 감독도 아슬아슬한 선에서 5·18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며, 정치적 발언을 유도하기도 한다.
 
관객 역시 단체 관람이 많다.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시민단체·학교·기업·관공서 등의 단체 관람이 이어진다. 제작진은 1백억원의 제작비를 회수하려면 최소 6백만명의 관객이 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적 영향력, 단체 관람 등으로 어쨌든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영화는 대성공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도무지 논란도 없고 논쟁도 없고 담론도 없다. 대체 <화려한 휴가>는 상업 영화인가, 정치 영화인가?
MBC <PD수첩>은 <화려한 휴가> 특집을 편성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화려한 휴가>와 5·18실제 장면을 교차로 보여주었다. <화려한 휴가>를 분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5·18을 재조명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참혹한 장면을 보여줄 뿐이다. 아마도 <화려한 휴가>는 종영하기 전까지도, “이렇게 참혹했다”라는 메시지만 반복할 것 같다. 그리고 한국 영화 사상 가장 참혹한 장면이 이어지는 <화려한 휴가>는 놀랍게도 12세 관람가이다. 별 다른 장면이 눈에 띄지 않는 <태극기 휘날리며>가 15세 관람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등급이다. 참고로 피 한방울 나오지 않는 <디워> 역시 12세 관람가이다.
영화의 작품 논리로만 보자면 <화려한 휴가>는 비판을 받을 만한 요소가 너무 많다. 광주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유독 주인공만 서울말을 쓰는 어색한 설정, 고등학생으로 나오는 주연 배우 이준기만이 머리를 깎지 않는 불성실함, 시민군을 이끌었던 지도층이 전혀 나오지 않는 사실상의 역사 왜곡 등등, 한국 영화사에 오점으로 기록될 만한 것들이다.
그런데 영화계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비판하지 않는다.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한 마케팅 역시 비판받지 않는다. 계획적인 마케팅 없이 우발적인 미래 기대치와 애국주의로 흥행을 이어가는 <디워>를 불량 식품 취급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영화계 내에서 <화려한 휴가>를 제대로 비판했다면, 지금과 같은 동원형 마케팅을 활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계의 암묵적인 침묵이야말로 <화려한 휴가> 흥행 성공의 1순위 요소였던 것이다.
<디워>가 진취적이고 자발적이고 미래지향적 외부 마케팅이라면, <화려한 휴가>는 퇴행적이고 조직적이고 과거회귀형의 외부 마케팅이다. <디워>의 마케팅이 향후 한국 영화의 다른 작품들도 활용할 수 있는 반면, <화려한 휴가>는 다른 영화에는 절대 적용될 수 없다. 물론 다음 대선에서 또 다른 비슷한 유형의 영화가 나올 수야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디워>와 <화려한 휴가>의 흥행은 종영된 뒤, 그리고 대선이 끝난 뒤에 차분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잘한 것이 있다면, 장점을 찾아 공유하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짚어내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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