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목적이 ‘개종’이어선 안돼”
  • 정락인 기자 ()
  • 승인 2007.09.1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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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가 펼쳐진 45일 동안 국내 이슬람 교도들은 내내 마음을 졸여야 했고 수난도 적지 않게 당했다. 일부 분노한 시민들의 협박 전화가 이슬람 사원에 빗발쳤고, 플래카드를 들고 사원에 들어와 시위를 부리는 경우까지 있었다. 사태의 경위가 어떠하든 탈레반이 이슬람 교도이기 때문에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이슬람이 이번 인질 석방에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 이슬람 최고 지도자인 이행래 이맘(70)을 비롯한 사절단은 지난 8월23일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인 페샤와르에 9일간 머무르면서 현지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탈레반과 선을 대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현지 언론과 접촉해가며 인질 석방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이 주효했는지 파키스탄 종교 지도자들을 통해 탈레반 간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절단은 이들에게 같은 이슬람 교도로서 선의를 베풀어줄 것을 요청했고, 탈레반측은 “좋은 소식을 전하겠다”라는 약속을 해주었다.  
이행래 이맘은 “우리의 생각이 적중했다. 파키스탄 종교 지도자들과 언론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다음부터 피랍 사태가 빨리 해결되는 것 같았다. ‘몸값 지불’ 논란이 있는데 우리한테는 별도의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사절단이 인질 석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분위기를 유화적으로 이끌어간 공로는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이행래 이맘은 “우리는 인질들이 ‘선교’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간 것을 알고 있었다. 선교는 ‘개종’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슬람 지역에서는 한국인들의 선교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 자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해결하는 데 한국 이슬람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 정부와 사전에 교감이 있었는가?
우리는 순수하게 민간 사절단을 구성했다. 정부의 요청이나 사전 상의도 없었다. 파키스탄 방문 일정을 정부에 알렸을 뿐이다.
인질 사태가 발생한 후 한국 이슬람에 돌발적인 상황이 닥치거나 악영향은 없었나?
이슬람 중앙성원에는 분노한 시민들의 항의·협박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왔다. 일부 시민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사원에 들어와 시위를 하기도 했다. 무슬림 관련 홈페이지에도 악성 댓글이 쏟아졌다. 다행히 큰 불상사는 없었다. 인질 사태에 대한 분풀이 대상으로 이슬람 사원을 선택한 것 같다. 2004년 김선일씨 살해 사건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슬람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사원을 향해 울분을 터뜨린 것 같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사태가 해결된 후 이슬람 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고 정서에 접근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는 본래 뿌리가 하나이다.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서로의 종교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배척하고 싸울 필요가 없다. 이슬람은 평화 종교이다. 종교명 자체가 ‘평화’이다. 하나님에 대한 복종을 뜻한다. 평화와 평등 이념을 가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무슬림들은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탈레반이 무슬림이라는 데 더 아픔을 느꼈다. 이슬람에서는 테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는 것은 이슬람이 아니다. 정치 집단의 테러 행위일 뿐이다.  
이슬람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테러가 이슬람교와 연관성이 없다는 말인가?
테러를 종교와 연관지어서는 안 된다. 테러로 인해 이슬람은 많은 비난과 오해를 사고 있다. 테러는 정치적인 상황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나 근본주의는  이슬람 내의 정치 세력들이다. 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원래 테러는 정치에서 비롯되었다. 테러를 부추기고 원인을 제공한 것은 서구 열강이다. 이슬람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평화를 구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하고 신앙인답게 사는 것을 원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테러’와 ‘종교’는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인질이 석방된 후 책임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이슬람 문화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활동해온 기독교의 선교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선교의 목적은 ‘개종’이 아니다. 종교가 없는 나라나 종교가 없는 민족에게 선교를 하는 것은 말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종교가 있는 곳에 가서 개종시키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선교할 필요가 없다. 그 나라나 국민이 믿는 종교를 인정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은 개종자를 법률로 처형한다. 그런 곳에 선교 목적의 봉사단이 들어갔다. 정부의 만류도 듣지 않았다. 우리가 현지에 가보니 한국인들의 선교 활동에 대해 극도의 반감이 있었다. 심지어 ‘총칼을 들지 않은 침략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위험 지역에서의 선교는 자제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인해 국익 손실이 크다. 국민들에게도 얼마나 많은 심려를 끼쳤는가.
선교가 아니라면 순수한 봉사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인도적인 입장에서의 순수한 봉사는 말릴 필요가 없다. 다만, 위험 지역에 가서 봉사를 하는 것은 정부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또 해당 국가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해당 국가가 원하지 않는 봉사 활동은 있을 수가 없다. 봉사 활동은 ‘순수’ 그 자체로 인도적이어야 한다.
이슬람의 선교 방식이 궁금하다.
물론 이슬람도 선교를 한다. 이슬람 교인은 누구나 선교할 의무가 있다. 다만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선교는 하지 않는다. 선교 인력을 별도로 양성하지도 않는다. 무슬림의 정직하고 올바른 모습을 보고 입교하도록 유도한다. 종교가 있는 사람을 강제로 개종시키는 일도 없다.
한국 내 다른 종교와의 교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슬람은 한국종교협의회에 가입되어 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회합 등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다른 종교와의 대화는 물론 활동도 활발하게 한다. 종교인들끼리 서로 화합해야 한다. 종교인이 타인의 귀감이 되어야 믿음이 싹트는 것이다. 그래야 국가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이슬람 문화와 한국 문화가 극명하게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슬람은 ‘금기’와 ‘금욕’을 철저하게 지킨다. 이슬람은 술을 하지 않고,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다른 고기도 의식(할랄)을 거쳐 도살한 것만 먹는다. 이른바 ‘삼겹살 문화’라고 하는 한국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
한국 내 이슬람 공동체의 활동은?
한국에는 무슬림 수가 그리 많지 않다. 한국 사람 3만5천~4만명, 외국인까지 합쳐 10만명이 넘는다. 이슬람 재산으로 되어 있는 성원은 전국에 9개소. 무살라(예배소)가 50군데 있다. 공동체 활동은 그리 활발한 편은 아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 종교가 다르다 보니 공동체 활동에 한계가 있다.
한국인들은 이슬람 문화에 배타적이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십자군 전쟁 이후 이슬람은 왜곡되어 알려졌다. 호전적인 민족이라는 편견이 만들어졌다. 9·11 테러 사태 이후에는 ‘이슬람=테러 집단’ ‘무슬림=테러리스트’로 각인되었다. 우리나라도 해방 후 미국과 서방 세계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 싹텄다. 무슬림을 마치 ‘테러리스트’를 보는 듯한 선입견이 있다. 이슬람은 코란에도 나와 있듯이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평화의 종교이다. 이슬람은 또 실천적인 종교이다.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이슬람이다. 그런 점을 일반인들이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인질이 석방되고 나서 기독교 종단에서 고마움을 전해왔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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