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소문의 나라’의 신데렐라
  • 소종섭 기자 ()
  • 승인 2007.09.0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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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씨 사건 둘러싸고 제2, 제3의 권력 배후설 쏟아져…유력 대권 주자도 입방아에 올라

 
신정아씨의 배후는 있는가. 있다면 누구인가. 변양균 대통령 정책실장이 지난 7월 신씨의 학위 위조 의혹을 제기한 장윤 스님을 만나 “문제 삼지 말아 달라”라며 회유성 언급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부터 신씨에 대한 배후설이 퍼지고 있다. 변실장 말고 제3의 권력 실세가 신씨 뒤에 있다는 것이 소문의 핵심이다. 사실이라면 이 사건은 대선을 앞두고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채 일거에 권력형 사건으로 비화할 것이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지난 8월30일 전남 구례에서 열린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신정아씨 사건에 특정 대권 주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얘기가 있다”라며 본격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호재를 만난 한나라당은 필요하면 특별검사 제도까지 도입하겠다며 이 문제를 대선 때까지 끌고 갈 태세이다. 정가에는 신씨의 배후와 관련해 온갖 소문이 떠다니고 있다.
우선 강대표가 제기한 ‘대권 주자 관련설’이 있다. 신씨가 근무했던 미술관과 관련 있는 대기업 오너의 친인척이 이 대권 주자와 친분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소문이다. 신씨가 이 친인척을 통해 대권 주자를 알게 되었고, 이후 그가 신씨를 후견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은 그림까지 그려가며 이 관계를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까지이다. 실제로 두 사람이 아는 관계인지, 안다고 해도 후견을 했다는 것이 맞는지, 확인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오는 얘기도 없다. 당사자로 거론되는 대권 주자측에서는 아무 관계가 없는데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며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이 정치 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권 주자의 실명이나 이니셜을 보도한 언론사는 없다.
신씨의 배후와 관련해 거론되는 또 다른 인물은 노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이다. 변실장이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대신 나서서 장윤  스님을 만나 회유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추론 속에 나오는 소문이다. 평소 이 인사가 불교계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왔다는 것도 배경으로 거론된다.
이 인사와 불교계 한 언론사 사장- 동국대 이사회로 연결되는 고리가 신씨 임용으로 이어졌다는 그럴듯한 시나리오도 돌고 있다.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이 인사와 관련한 제보가 들어와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이나 사실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권력 내부 흐름에 밝은 사정 기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민정비서실에는 불교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다. 이 인사가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면 굳이 정책실장을 통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정책실장이 그런 일을 하는 자리도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의혹 뒷받침할 만한 사실·정황은 아직 없어

 
이 관계자는 “오히려 권력형 의혹보다는 문화예술계의 문제점에 주목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30대, 미혼에 외제 차를 타고 다니는 잘 나가는 미술계 인사라는 허명에 사회가 속아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만 이런 관점에서 신씨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 가운데서도 이번 사건의 본질을 ‘권력’이 아닌 ‘문화예술계의 허술한 구조’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권력 실세 배후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불교계를 주목한다. 신씨와 권력이 연결되는 고리에 불교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국대 교수로 가기 전까지 신씨와 불교계는 남다른 인연이 없었다. 신씨 어머니가 경북 청송에서 사찰을 소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앙 무대에서 활동하는 불교계 인사 중에 신씨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신씨의 주된 활동 무대는 어디까지나 문화예술계였다.
불교계 한 인사도 청와대 변양균 정책실장과 불교계의 관계를 안다면 ‘압력’ 운운하는 말이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말했다. 변실장은 민주당 수석 전문위원으로 파견 나와 있을 때부터 불교계와 남다른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청와대 불교 신자들의 모임인 청불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정대 전 조계종 총무원장 시절 조계종이 현재 조계종 청사와 불교박물관이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크고 작은 불교계 일에 그가 도움을 많이 주었다는 것이 불교계 인사들의 공통된 언급이다. 한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은 “변실장은 참으로 좋은 사람이다. 압력을 가하거나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파문을 일으킨 당사자인 장윤 스님과도 친밀한 사이이다. 동국대 이사인 영담 스님은 “언론이 의혹을 키우고 있다. 엄청난 배후는 없다. 이번 사건은 한마디로 신씨에게 사기를 당한 사건이다. 홍기삼 전 총장이 무리하게 일을 추진했고, 허술한 행정 체계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해 일이 커졌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수를 초빙할 때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학사·석사·박사 과정 성적증명서가 누락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과정을 통해 신씨가 교수로 임용되었기 때문에 의혹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변실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해 해외로 나간 상황에서까지 장윤 스님에게 신씨의 가짜 학위 의혹을 더 이상 문제 삼지 말아 달라고 전화한 배경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현재 변실장은 전화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동국대 교수로 임용되는 과정은 물론 신씨가 일사천리로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임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고 있어 ‘배후설’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씨는 아홉 명의 후보 가운데 상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최종적으로 감독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감독선정소위원회 위원들도 막판까지 신씨가 감독으로 선임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 만한 상황이다.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이 공개한 ‘광주비엔날레 제98차 회의록’에 따르면 한갑수 이사장은 신씨를 감독으로 선임하기 전 박광태 광주시장과 협의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이사장을 선임한 사람이 박시장이기 때문에 회의록대로라면 신씨를 예술감독으로 선임한 사람이 박시장이 되는 셈이다. 박시장은 “신씨가 선임되는 과정은 전혀 알지 못했다”라고 말했지만, 그와 신씨의 관계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홍기삼 전 동국대 총장이 입 열어야 진실 밝혀질 듯
<시사저널>은 ‘신씨 배후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동국대 진상조사위원회가 작성한 A4용지 11장 분량의 ‘신정아 교수 허위 학력 진상조사보고서’ 최종본을 입수했다. 사건이 불거지자 동국대학교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7월11일 공식적으로 한진수 교수 등 다섯 명을 조사위원으로 위촉해 조사 활동을 벌였다. 조사위는 7월20일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신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조사위는 7월 말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진상조사위원회를 개최했고, 최종 조사 결과를 지난 8월24일 재단이사회에 보고했다.
신씨가 동국대 교수로 임용되는 과정과 관련해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은 홍기삼 전 동국대 총장이다. 동국대 이사 영담 스님은 “신씨를 임용한 것은 홍 전 총장이었다. 과거 미술평론가 활동을 하기도 했던 그가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신씨를 추천받았다. 이사들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홍 전 총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의혹 또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국대 조사보고서는 신씨의 임용 경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홍기삼 전 총장이 동국대가 추진하던 수도권 특성화 사업 중의 하나인 CT 특성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문화예술 분야의 우수 인력을 찾는 과정에서 신정아를 미술계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추천받았음. 추천자 및 다양한 경로에 관한 사항은 조사하였으나 밝힐 수 없었음. 신씨를 학과에서 추천하는 과정에서 학과의 자발적인 추천이 아닌 홍기삼 전 총장의 구두 지시가 있었음. 추천 학과에서 신씨를 면담조차 해보지 못하고 추천한 점, 대학원장의 추천이 생략된 채 인사관리팀으로 추천서가 직접 접수된 점, 기타 서류가 추후에 보완된 점 등으로 보아 신씨의 임용 과정은 당시 총장과 기획처장의 무리한 진행으로 판단됨.’
이 대목에서 주목되는 것은 ‘추천자 및 다양한 경로에 관한 사항’이다. 홍 전 총장이 누구로부터 신씨를 추천받았는지, 그것이 신씨를 교수로 임용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앞으로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미술계 인사라면 관계가 없겠지만, 만약 홍 전 총장에게 신씨를 추천한 사람 중에 권력층 인물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열쇠는 홍 전 총장이 쥐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그를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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