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으면 ‘예술’ 찍히면 ‘외설’?
  • 명운화 (소설가) ()
  • 승인 2007.08.2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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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카메라, 일상·문화 깊숙이 침투…‘리얼스토리’에 목마른 UCC가 확산 주범

 

미국의 <타임>은 ‘2006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했다. <타임>은 ‘당신은 평범하지만 블로그나 미디어 영역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라는 것이 선정 이유라고 밝혔다. 영향력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이다. 타임지의 공인을 받기 이전부터 UCC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다.
UCC는 참여와 소통의 가장 민주적인 매체로 인식되어왔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각 포털 사이트는 새로운 권력자인 UCC에게 거주할 공간을 마련해주었고, 생산자이며 동시에 소비자인 이용자들은 UCC에 폭발적인 관심을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판도라TV 같은 UCC 전문 포털 사이트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기도 했다. 판도라TV는 출범한 지 2년여 만에 1000%의 성장을 했고 국내 포털 사이트 5위 안에 진입하기도 했다. 8월 현재 판도라TV에 올라와 있는 UCC 동영상만 30만개이다. 반 년 동안 쉬지 않고 보아야 겨우 다 볼 수 있는 분량이다.
UCC의 가운데 이니셜 C를 뜻하는 Created에는 ‘창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현재 유통되고 있는 UCC 중 95%는 신문·방송·광고 등 대중 매체를 통해 유포된 정보들을 편집하거나 가공한 것이다. 내용적으로도 상당 부분 흥미 위주의 볼 거리로 흐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CC가 인기를 끄는 가장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는 리얼스토리 추구라는 새로운 사조 때문이다.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면서 손쉽게 주변에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포착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가공된 이야기보다 생생한 이야기를 원하게 되었고, 이것이 UCC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또 은밀하게 들여다본 이야기일수록 생생하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가 겹쳐지면서 UCC 세계에도 ‘몰래카메라’라는 포맷이 적극 도입되었다. 결국 몰래카메라는 리얼스토리를 대표하는 포맷인 동시에 리얼스토리를 엮어나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 되어버렸다.
사실 몰래카메라는 예전에 예술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던 것이다.
에버리 피셔상 등 수많은 수상 경력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39)은 길거리 연주를 감행하고 그 과정을 몰래카메라로 기록했다. 음악에 대한 일반인의 이중적인 태도를 확인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그의 퍼포먼스는 곧 한국에 전해져 국내 정상급 음악가를 자극했다. 피호영 교수는 조슈아 벨처럼 허름한 복장으로 거리의 악사처럼 위장한 채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지하에서 ‘70억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영국 뉴캐슬 인근의 벨세이 홀에서 ‘픽쳐 하우스’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물 중 ‘과거의 거울’이라는 전시물은 몰래카메라를 예술에 도입한 예술 작품으로 유명하다. 몰래카메라는 또한 과제를 연구하고 발표하는 데 실험 카메라라는 이름으로 사용되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장문의 리포트 대신 실험 과정과 결과를 동영상으로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예술 수단이거나 사생활 침해 도구이거나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TV 장르는 리얼리티 쇼이다. 생존 게임, 오디션, 짝짓기 프로가 대표적인 리얼리티 쇼이다. 살을 빼거나 패션을 바꿔 외모 개선하기, 성격 개조하기, 또한 불륜이나 범죄 현장같이 접근하기 힘든 공간에 카메라가 불쑥불쑥 끼어든다. 리얼리티 쇼에서 몰래카메라는 이미 친숙한 방송 기법이다. 리얼

 
리티 쇼 자체가 몰래카메라 포맷을 띤 경우도 종종 있다. 방송계에서 몰래카메라는 이미 방송 포맷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도 케이블TV를 중심으로 리얼리티 쇼 열풍이 불고 있다. TV 프로그램의 몰래카메라 차용은 흔한 정도를 넘어서 없어서는 안 될 정도의 포맷이 되어버렸다. tvN의 <리얼스토리 묘>나 Q채널의 <리얼다큐 천일야화>, m.net의 <추적! 엑스보이프렌드>, tvN의 <독고영재의 현장 르포 스캔들> 등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몰래카메라를 사용하고 있거나 몰래카메라 포맷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몰래카메라는 종종 선정성과 가학성 때문에 시민단체와 방송위로부터 지적을 받곤 한다.  몰래카메라에 대한 논란에 대해 문화평론가 김석훈씨는 “몰래카메라의 본질은 들여다보기이다. 하지만 단순한 일상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몰래카메라에 등장하는 인물이 곤란한 상황이나 사고와 조우하는 가학성이 있을 때 비로소 몰래카메라의 생명력이 빛을 발한다. 즉 스토리가 살아나는 것이다. 건전한 상식과 몰래카메라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예술계, 리얼리티 쇼, CF 등에서 사용되고 있는 몰래카메라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논란이 많은 것은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몰래카메라라는 희극성에 즐거워하는 사이 어느덧 우리는 몰래카메라의 숲에 둘러싸여버리는 역설적인 사건을 맞이하게 되었다. 2007년 현재 전국에 CCTV가 2백50만개 설치되어 있으며 한해 시장 규모는 5천8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CCTV 제조사 씨앤비텍(주)에 따르면 한국인이 하루 동안 CCTV에 노출되는 평균 횟수는 40차례에 이른다고 한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비롯해, 지하철과 버스, 거리, 그리고 회사 건물과 은행 자동출금기, 편의점, 쇼핑몰까지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CCTV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 업체인 구글이 길거리 사진을 찍어 3차원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구글은 기존 평면형 지도에 주요 공공 건물과 상가, 주택 등을 사진으로 찍어 함께 제공하는 ‘스트리트 뷰(Street View)’ 프로그램을 지난 5월부터 서비스하고 있다. 누구든 원하는 곳을 쉽게 찾아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반인들의 일상 생활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기술이 지나치게 발전하고 있다는 데 있다. 조만간 인공위성과 인터넷이 연결되어 언제 어디서든 누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창문으로 몰래 훔쳐볼 수 있게 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 요인으로 가장 위협적인 것은 카메라가 장착된 수천만개의 휴대전화이다. 우리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몰래카메라에 찍힐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올 여름 전국 해수욕장에서 벌어진 몰래카메라와의 전쟁은 단지 해수욕장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일부 전문가는 리얼리티가 점점 더 많이 카메라에 의존하게 되고, 사람들은 몰래카메라에 대한 경계심을 잃어가고 있으며 현실과 몰래카메라를 구분하는 판단력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누군가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한 번 노출된 사생활 정보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퍼져나간다. 몰래카메라를 필두로 각종 첨단 장비로 인한 개인 사생활 침해 문제는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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