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 악몽에 잠못 이루는 중소 건설업체
  • 정우택 (언론인, 전 헤럴드경제 국장) ()
  • 승인 2007.08.1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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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난에 허덕이던 신일과 한승건설의 부도로 충격과 위기감에 휩싸인 건설 업계 현장을추적했다.

 
“공포의 8월과 죽음의 9월.” 자금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ㅂ건설 정 아무개 사장(55)이 8월부터 확대 적용되는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와 9월에 도입될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두고 한숨을 쉬면서 내뱉은 말이다.
그는 “제2 금융권에 대한 DTI 적용으로 아파트 분양이 저조하고 분양가 상한제로 수익이 줄면 건설 사업은 이제 끝난 것과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업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일처럼 정말 괜찮은 회사가 무너진다면 다른 회사는 볼 것도 없다. 우리도 언제, 어떻게 파편을 맞을지 모른다”라고 걱정했다.
10년째 소규모 아파트를 짓고 있는 박 아무개씨(48). ㅅ건설 대표인 그는 최근 건설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다. 박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역의 은행 지점, 상호저축은행 등에서 자금을 융통해 어려움 없이 아파트를 지을 수 있었고 분양도 괜찮았다. 하지만 올 들어 자금을 빌리는 것도 힘들고, 막상 어렵게 아파트를 지어도 분양 실적이 좋지 않아 3억원의 돈을 물리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집 장사에서 손을 떼는 것이 처음에는 가슴 아팠지만 지금은 오히려 걱정할 일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중소 건설업체에 볼트 등 건자재를 납품하는 김동현씨(52). 그는 최근 인천 주안역 부근에 통닭 프랜차이즈 영업점을 계약했다. 일거리가 없어 6개월 동안 빈 트럭만 끌고 다니다 납품 일을 접었다. 그는 “건설 업체가 잘 되어야 일거리가 생기는데, 일거리가 그렇게 없는 것은 처음이다”라고 건설업체의 어려운 분위기를 전했다.
김씨는 일거리를 얻기 위해 건설업체 사장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하는 소리가 ‘지금 하는 일만 정리되면 당장 손을 떼겠다’라는 것이라며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사업을 포기하는 중소 건설업체들이 잇따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업 포기 고민하는 건설 업체 많아
ㅇ건설의 유 아무개 사장(49). 그는 자금 걱정 없는 사장으로 통할 정도로 탄탄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도 걱정이 있다. “부도난 신일이나 한승건설을 생각하면 그 불똥이 꼭 나에게 튈 것 같아 잠이 오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는 “대형 건설업체는 어떻게든 생존이 가능하지만 중소 건설 업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라고 걱정했다. 
가는 곳 마다 쌓여 있는 미분양 아파트 5만2천여 가구, 입주 지연에 따른 잔금 회수 어려움, DTI 규제와 분양가 상한제, 비싼 땅값…. 건설업체에 무엇 하나 희망을 주는 것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사업을 포기할까 고민 중이다.

신일의 부도는 중소 건설업체들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준다. 신일은 한 때 견실한 지방 건설업체의 대명사였다. 부채비율 1백47%, 건설 시공 능력 순위 57위, 2006년 매출 4천3백억원, 순이익 1백80억원, 2년 연속 흑자 등 승승장구하며 잘나가던 기업이 한순간 쓰러진 것이다. 신일은 주택 경기 침체로 대구겷돗?등지의 아파트 분양에 실패해 심한 자금난을 겪어왔다. 공사 미수금도 1천억원에 달했다. 시행 회사에 빌려준 돈 7백여 억원을 못 받은 것이 부도의 결정적 원인이었다.
이런 상황은 신일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5월에 부도 난 한승건설은 지난해 매출 2천1백60억원, 85억원의 순이익을 낸 흑자 기업이었다. 하지만 냉엄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부도 난 세창건설도 매출 2천억원의 튼실한 중견 업체였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 2월 1백33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현실에서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이 조사에서 건설사들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 56.4%가 주택 사업 규모를 줄이고 6.8%는 사업을 아예 포기하겠다고 답했다. 공급량에 변화가 없다는 응답은 13.5%에 그쳤다.
또 이 제도가 적용되면 응답자의 82.1%가 주택 공급량이 줄 것으로 내다보았다. 특히 응답자의 64.5%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저품질 시공’으로 대처하겠다고 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윤을 줄여 대처하겠다는 답은 21.5%였다.
건설 시장은 지금 안개 속이다. 미분양이 5만2천 가구나 쌓여 있는데도 건설업계는 8월 한 달간 86개 현장에서 4만7천 가구를 또 분양한다. 미분양으로 인한 중견 업체들의 부도 위기, 저축은행의 워크아웃 등 최악의 상황에서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소나기’ 분양에 나서는 것이다. 말하자면 서로 앞 다퉈 ‘자살골’을 넣는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분양될 것을 뻔히 알면서 소나기 분양에 나서는 심정은 건설업자만 안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건설업계, 특히 중소 건설업체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구 지역의 경우 28개 사업장에 1만 가구의 미분양이 남아 있음에도 8월에 1만8천 가구를 분양하기로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건설업체, 자금을 빌려준 금융사, 분양받은 계약자 모두가 죽는다”라고 열을 올렸다.
부천의 ㅇ건설은 재건축 사업으로 아파트를 짓다가 자금이 달려 부도 위기를 맞았다. 몇 달 동안의 노력으로 사업이 재개되고 분양에 들어갔으나 상당 부분이 미분양으로 남아 있다. 답답한 회사는 미분양 가구를 전세 매물로 내놓아야 했다. 부산시 연제구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도 미분양 주택을 전세로 내놓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소 건설업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덩치가 큰 건설 업체들까지 부동산을 내놓으며 자구 노력에 나서고 있다. ㅅ종합개발은 서울 서초동 국제전자센터 상가와 사무실 3백70개를 9백60억원에 판 것으로 알려졌다. 재무 구조 개선과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이다. ㄱ건설의 경우 양산시 물금 택지지구 내 사업 부지를 팔았다. ㄷ건설도 서울 반포동 고속터미널 주식 지분 9만여 주를 4백82억원에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 없다’ 판단, 매입한 땅 내놓기도

 
건설 시행 회사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안양시에 있는 시행 회사는 주상 복합 아파트를 지으려다 땅을 매물로 내놓았다. 은행과 자금 협상을 하던 중이다. 9월부터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될 경우 수익을 맞추기 힘들다는 판단에서이다.
서울 강남의 한 부동산공인중개사 사무실에는 큰 땅에 대한 문의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아파트 터를 샀던 건설사나 시행사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들은 신분은 밝히지 않고 “땅을 팔아야 하는데 부동산 시장 동향이 궁금하다”라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끊는다.
업계는 소형 건설업체나 시행 회사들이 사업 부지를 계속 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래부터 갖고 있던 땅은 분양가 상한제 등이 도입되어도 그런대로 수익을 맞출 수 있지만 비싸게 산 땅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 5월에 만든 주택법시행령은 4월20일 이후 사들인 땅은 감정 평가 방식으로 산정한 금액의 1백20% 안에서만 실제 매입가를 택지비로 인정한다. 쉽게 말해 1백억원짜리 땅을 1백30억원에 사들여도 1백20억원만 택지비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10억원은 아파트 분양가에 얹어야 하는데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되면 이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비싸게 산 땅은 손해를 감수하며 내놓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되면 수익성이 떨어지는 고가 매입 부지, 자금 확보를 위해 급히 팔아야 할 땅,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대지 등이 올 가을부터 쏟아져나올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로 아파트 분양가가 최고 25%까지 낮아져 주택 건설 공사를 해봐야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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