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에 울다 웃은 미국 개들
  • 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07.2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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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주 애완동물 강제 불임수술 법안, 여론에 밀려 ‘자멸’
 

서울 강남구 포이동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숙희씨(54)는 남 못지않은 애견가다. 집에서 기르는 시츄견 둥둥이를 자식처럼 생각한다. 함께 사는 시어머니가 둥둥이에 대한 이씨의 지극한 애정을 보다 못해 한마디 던졌다. “얘야, 개 생각하는 만큼만 시에미를 생각해봐라.” 이씨의 대답은 시어머니의 입을 다물게 했다. “어머님도 둥둥이만큼만 귀엽게 굴어보세요.”
지극한 개 사랑은 한국 사람만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민의 개 사랑은 입법 과정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애완 동물 난소 제거 수술과 거세 등 불임 수술을 의무화하는 레빈 법안(AB 1634)이 캘리포니아 주 하원에서 지난 6월6일 무투표로 통과되었다. 로이드 레빈 의원(민주당,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밴나이스)이 제출한 이 법안은 그러나 지난 7월10일 주상원 지방정부위원회의 장벽에 부닥쳤다.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 5명으로 구성된 위원회 소속 의원 전원이 레빈 법안에 대해 비우호적인 발언을 하거나 수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레빈 의원은 위원회의 반응이 부정적이자 스스로 법안 제출을 철회했다. 레빈 의원은 그러나 애완 동물 불임 수술을 법제화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접지는 않았다. 그는 내년 1월에 내용을 보완해 법안을 다시 제출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앞으로 6개월 동안 애완 동물에 대한 캘리포니아 주민의 인식을 바꾸는 데 최선을 다해 자신의 법안이 꼭 통과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레빈 법안의 골자는 △생후 6개월 이상 된 개나 고양이의 경우 불임 수술을 의무화하고 △거리를 방황하다가 동물보호소 직원에 의해 보호소에 수용된 개나 고양이 가운데 불임 수술이 안 되어 있을 때 주인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주인에게 30일 간의 시한을 주어 불임 수술을 시술할 것을 권고하고 △이를 어길 경우 5백 달러의 벌금을 물리도록 한다 △또 일반 주거에서도 조사 과정에서 해당 애완 동물의 불임 수술 회피 사실이 발각될 경우 같은 벌금을 주인에게 부과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이 상정되자 캘리포니아 주민은 찬성과 반대로 확연히 갈라섰다. 주민들의 관심도 여느 법안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주 상원의 조 시미티언 의원은 “캘리포니아 주 의회에 상정된 법안 수가 올해 전반기에만 2천8백 개나 됐지만 레빈 법안처럼 많은 지지와 반대에 부닥친 것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법안 지지자들은 서로 합심해 의회를 상대로 로비에 나섰고 반대파는 애견가들을 중심으로 의회 앞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지지자들은 레빈 의원의 법안 제출 배경 설명에 동의한다. 레빈 의원은 개와 고양이 등 애완 동물 수가 필요 이상으로 넘쳐나 개체수를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집을 잃거나 주인이 버린 개와 고양이를 동물보호소에서 수용하다가 안락사시키는 숫자가 매년 45만4천 마리에 이르며, 이에 따른 경비로 납세자 세금에서 연간 3억 달러(약 3천억원)나 지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전체 애완 동물 안락사 시행 숫자는 매년 1천20만 건에 달하며 그중 캘리포니아 주가 38%를 차지하는 것도 심각하게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법안 반대자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개나 고양이를 무차별적으로 불임 수술하는 것은 동물 학대의 차원을 넘은 동물 권익 침해라고 주장하고, 무차별적인 불임 시술 강제와 벌금 부과는 애완 동물계의 애국법이나 다름없다고 반론을 편다. 애국법은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가 미국을 대상으로 한 테러 방지를 위해 제정되었으나 법 적용이 무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내 애완동물 수, 전체 인구보다 훨씬 많아
찬반 논쟁은 레빈 의원이 법안을 철회함에 따라 동물 애호가들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 승리는 단순한 동물 권익 보호 차원이 아니라 미국의 사회 실상과 직결되어 있다. 미국 전체 1억1천3백만 가구 가운데 64%에 달하는 7천1백10만 가구가 애완 동물을 기르고 있으며, 이중 개 소유 가구 수는 4천4백80만, 고양이 소유 가구 수는 3천8백40만에 이른다. 전미 애완동물 소유주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애완 동물 수는 모두 3억8천2백만 마리가 넘어 미국 인구보다 약 6천만이 많다. 이중 개와 고양이가 각각 7천4백80만 마리, 8천8백30만 마리로 모두 1억6천3백만 마리가 넘는다. 개와 고양이가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인 두 명에 한 마리 꼴이다.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인들의 애완동물, 특히 개에 대한 인식이다. 애완견 소유 가구의 67%에 이르는 2천9백90만 가구의 미국인들은 개를 △베스트 프렌드(가장 가까운 친구, 1천6백20만 가구)로 생각하고 △자녀 대신(8백30만 가구) 또는 △반려(5백42만 가구)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동물의 구별이 아니라 개를 ‘네 발 가진 가족’이나 ‘친구’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개나 고양이의 생일을 기억하고 기념 행사를 벌이거나(22.3%), 개와 고양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는(31%)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개나 고양이에게 거액의 유산을 상속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고, 개가 죽으면 가족을 잃은 것 이상으로 애도한다. 개와 고양이가 이들에게는 이른바 ‘반려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미국인들이 자신의 반려에 대해 불임 수술을 강제하는 법안에 질겁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미국 내 애완 동물 산업의 규모도 만만치 않다. 10년 전 그 규모가 2백10억 달러였으나 2007년에는 2배가량 되는 4백8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이중 애완 동물용 식품이 1백61억 달러로 가장 크고, 도구나 시설이 99억 달러, 의료 시장이 96억 달러에 이른다. 개와 고양이 마리 수는 인구 8위 파키스탄(1억6천4백만명)과 비슷하고, 산업 규모는 GDP 94위 북한(4백억 달러)보다 더 크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통계도 없지 않다. 미국에서 개 한 마리를 키우는데 드는 비용은 연 평균 2천 달러(약 2백만원)이다. 그만한 돈이라면 굶주린 아프리카 어린이 7명을 1년 동안 도울 수 있는 액수이다.
미국 애완 동물들은 또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꿈도 꾸지 못하는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시카고의 어떤 부부는 애완견이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삼키는 바람에 수의사에게 급히 데려가 응급 처치를 했다. 수의사가 청구한 치료비는 2천5백 달러(약 2백50만원)였다. 미국에서는 개나 고양이 치료비가 사람 치료비 못지않다. 높은 의료비 대비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애완 동물 의료보험 제도이다. 미국 애완 동물 건강보험 시장은 2006년 2억 달러(약 2천억원)에 달했으며, 올해에는 가입자 수가 늘어나 적어도 2억5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많은 미국 기업들은 애완동물 건강보험을 내걸어 유능 인력의 취업과 전직을 유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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