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헌법’이 맞는 제헌절
  •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과) ()
  • 승인 2007.07.0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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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월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에 참석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부 대운하 공약을 비판하다 “나도 토론하고 싶은데 ‘그놈의 헌법’이 못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의 이같은 헌법 비하적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쪽팔리는 5년 단임제” “관습 헌법?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이 무산되었을 때도 헌법에 대해 불만을 나타낸 바 있다. 자기 뜻대로 안 되면 헌법을 힐난하는 ‘정치적 고질병’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6월7일에 이어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또다시 노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이 공직 선거법상의 선거 중립 의무에 배치되니 중단해줄 것을 요청하자 노대통령은 반발했다. 이틀 뒤인 6월20일 선거법 제9조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개인 자격’으로 소원을 내기에 이른 것이다. 선거법이 자신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처럼 ‘헌법과의 불화’를 계속 드러내는 노대통령 모습을 보면 애처로운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정말 법률가 출신이 맞는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한마디로 ‘그놈의 헌법’이라는 헌법 경시적 표현은 대통령으로서는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헌법은 국민 모두가 합의한 이 나라 최고의 규범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유·민주·인권·법치 등 우리 사회에서 지켜야 할 고귀한 가치가 담겨 있다. 그래서 헌법은 지역·계층·세대·성별·종교·이념적 성향 차이를 뛰어넘어 우리 사회를 하나로 묶고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를 바탕으로 헌법 제69조는 대통령에게 헌법 수호의 의무를 지우고 있다.
자연인 노무현은 바로 이 헌법에 따라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누구보다 헌법을 존중하고 지켜야 할 사람이 앞장서 헌법을 무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국정이 혼란에 빠져들고 사회가 분열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더욱이 그는 누구보다도 헌법의 덕을 크게 입은 사람이다. 따라서 솔선수범해 헌법을 지켜야 마땅하다. 2004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에서 탄핵 소추 의결이 이루어졌을 때 국회 결정만으로 탄핵이 가능하도록 헌법이 규정되어 있었더라면 이후 대통령 노무현은 더 이상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놈의 헌법’으로 폄하되는 현행 헌법은 국회 의결만으로는 안 되고, 헌법재판소 심판에 따라 탄핵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이같은 헌법 규정으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연장되고 있음을 노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
자유민주국가는 권력 분립을 전제로 한다. 선거법 위반 여부 심사권이나 헌법의 최종 해석권을 대통령이 아닌 다른 기관에 줌으로써 권력 집중과 남용을 막고 있다. 이것이 헌법 정신이요 명령이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선출된 권력 운운하며 헌법 위에, 또한 중앙선관위원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위에 군림하려고 하고 있다. 헌법은 이들의 임명권을 대통령에게 주었지만 이들 헌법 기관(독립적 직무 수행)을 지배할 권리를 주지는 않았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노대통령은 자유민주국가의 대통령이지 군주 시대 제왕이 아니다.


대통령의 거친 말, ‘국격’에도 도움 안 돼


아울러 막말에 가까운 대통령의 발언은 대한민국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최고 지도자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임을 지적하고 싶다. 대통령의 말은 극히 절제된 것이어야 한다. 그의 언어는 개인의 품격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 국격(國格)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천박한 단어 사용을 자제해야 마땅하다. ‘그놈의 헌법’이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자칭 ‘세계적 대통령’ 입에서 나올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최소한 ‘세계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세계적으로 품위 없는 대통령’이 아니라면 말이다.
모름지기 헌법이 살아야 법의 지배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법치주의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선진 사회다. 우리가 이런 방향으로 나가려고 한다면 더 이상 헌법이 부당하게 공격받거나 무시당하는 처사가 버젓이 행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앙선관위와 헌재의 양식 있는 판단과 용기 있는 결정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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