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권력이 된 포털 무소불위·안하무인
  • 정락인 편집위원 ()
  • 승인 2007.07.0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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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한 영향력 누리면서 책임 회피 일관해 '눈살'

 
"네이버를 막아라.” 기업의 홍보 담당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포털 사이트(포털)를 검색한다. 언론사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는 검색 2순위다. 모든 뉴스를 포털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ㅅ사의 홍보팀 관계자는 “우리는 오프라인 매체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네이버만 신경 쓴다. 우리 회사에 부정적인 기사가 온라인 뉴스에만 뜨지 않으면 괜찮다”라고 말한다. 현직 언론사 기자들도 자사의 인터넷 사이트보다 포털에 더 신경을 쓴다. 포털 뉴스 면의 어디에 기사가 배치되느냐에 따라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기자도 두려워하는 언론, 이것이 오늘날 온라인 미디어의 현주소다.
네이버·다음·야후·네이트·엠파스 등 국내 거대 포털은 모두 뉴스 면을 운영하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은 뉴스 서비스 클릭 횟수가 하루 1억 회가 넘을 정도이다.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는 100개가 넘는 언론사로부터 하루 평균 8천여 건의 기사를 공급받는다. 이중 2백여 개의 기사를 골라 주요 면에 배치한다. 하루에 네이버를 찾는 누리꾼은 1천6백만명. 포털과 언론사 사이트의 운명은 거꾸로다. 포털의 영향력이 클수록 언론사닷컴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다. 클릭 횟수에서도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는 언론사는 지면이 아닌 포털에서 속보 경쟁을 벌인다. 속보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오보와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포털을 언론으로 인정해야 하느냐 마느냐는 오랜 논쟁거리다. 기사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언론사로부터 공급받은 뉴스를 취사 선택하는 것이 문제다.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기사를 배치하는 것은 물론이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취사 선택’이 실질적인 편집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포털을 언론으로 보아야 한다는 근거이다. 실제 포털은 흥미 위주의 뉴스나 자극적인 제목으로 방문자의 시선을 유도한다. 기사의 제목을 고치거나 특정 언론사의 기사를 부각시키는 일도 다반사다.
포털은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권한은 누리고 책임은 회피하려 한다. 오보나 기사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면 ‘나 몰라라’로 일관한다. 포털의 이중적인 태도에 누리꾼들은 분노하고 있다. 현행법상 포털을 법적으로 규제할 만한 장치가 없다. 때문에 포털은 사회적 견제와 감시에서 벗어나 있다. 현행법상 30% 이상 뉴스를 자체 생산할 경우 인터넷 언론으로 규정한다. 모든 포털 뉴스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신문법상의 정기간행물도, 인터넷 신문도 아니다. 정체가 모호한 포털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미디어 언론이 된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은 포털에 민감하다.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은 “포털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영향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 대선에서 포털의 정치적 성향과 대응에 따라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포털에서 일어나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개인의 인권과 명예는 휴지조각 취급


지난 5월에는 포털의 ‘나 몰라라’ 태도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김 아무개씨(31)는 포털의 댓글로 인해 자신의 명예가 훼손당했다며 네이버·다음·야후·네이트 4개 포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사건은 김씨와 사귀다 헤어진 ㅇ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발단이 되었다. ㅇ씨의 유족이 김씨를 비난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고, 이 글은 누리꾼들에 의해 삽시간에 번졌다. 일부 언론이 이를 기사화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댓글과 검색 등을 통해 김씨의 실명은 물론이고 사진·주소·직장·연락처까지 유포된 것이다. 김씨의 명예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다. 댓글을 본 김씨의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쓰러져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법원도 포털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제3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악성 댓글을 감시하고 삭제할 책임이 인터넷 포털에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4개 포털에 각각 3백만~5백만원씩 총 1천6백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악성 댓글로 인한 명예훼손에 대해 포털의 책임을 물은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김씨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정률의 이지호 변호사는 “포털은 기사를 자체 생산하지 않고, 언론사에서 자동 송고하는 시스템이어서 책임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는 기사를 취사 선택하고 배치한 데는 엄연한 책임이 따른다”라고 말했다. 4개 포털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곧바로 항소했다. “판결문에 따라 포털이 기사의 내용을 책임져야 할 경우 언론의 자유 침해나 저작권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법적 책임의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 항소 이유다.
누리꾼과 인터넷 언론사들은 포털의 항소에 대해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회장 이준희)와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회장 지민호)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포털의 개혁을 촉구했다. 성명서는 “포털은 전자상거래, 부동산, 보험,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등 인터넷에서 가능한 모든 사업을 다 하고 있다. 이러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중소 인터넷 기업의 이익 및 저작권과 명예훼손 침해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언론사들이 이에 대한 비판 기사를 작성해도 뉴스 면에 배치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포털의 뉴스 배치는 자신들의 사업 보호를 위해 이루어진다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 악성 비방이나 인신 공격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올해 1분기 명예훼손 침해 등 사이버 폭력으로 신고된 건수는 1만2천여 건에 달한다. 대다수 포털이 관련되었다. 악플(악의적인 댓글) 등 사이버 테러는 이제 도를 넘고 있다. 욕설은 말할 것도 없고 인신공격이나 사생활 침해를 넘어서 개인의 인권이 크게 훼손당하고 있다. 이름을 숨길 수 있다는 익명성 때문이다.
포털 개혁을 주장해온 미디어평론가 변희재씨는 “포털은 한 개인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그것이 자사의 페이지뷰 상승에 큰 기여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예인 X파일 이후에 일반 네티즌들이 공격 타깃이 되었을 때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힘없는 일반 네티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포털과 언론사, 힘겨루기 본격 시작


정보통신부는 최근 인터넷에 글을 올리려면 본인 여부를 먼저 확인하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를 마련했다. 앞으로 포털에 댓글을 올리려면 주민등록번호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악성 게시물을 작성할 경우 해당 기관에 등록된 개인 정보가 사법기관이나 민사 소송시 원고인 피해자에게 제공될 수 있다. 네이버와 다음은 6월28일부터 시범 서비스에 들어갔다. 
조선닷컴 등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한 언론사들은 포털을 경계하고 나섰다. 한국온라인신문협회는 최근 ‘콘텐츠 이용 규칙’을 만들어 네이버 등 6개 포털 사이트에 보내고, 7월1일부터 지켜줄 것을 요청했다. 규칙에 따르면 협회에 소속된 언론사의 기사를 제공받은 포털은 기사 저장 기간을 7일로 제한하고 있다. 이후에는 데이터베이스(DB)에서 삭제하며, 저작권 보호를 위해 네티즌의 무단 복제와 배포를 막고, 포털 편집 등을 통한 뉴스 콘텐츠 원본 변형도 금지된다. 함부로 기사를 퍼가서도 안 된다. 사실상 포털과 언론사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이다. 포털이 이 규칙을 받아들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KBS는 지난해 12월1일자로 네이버에 대한 기사 공급을 중단한 바 있다.
포털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언론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는 인터넷 언론사도 개혁의 대상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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