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만화만사성'
  • 최만수 프리랜서 기자 ()
  • 승인 2007.06.0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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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 커버린 어른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어린 시절 즐겨본 월간 만화 잡지 <보물섬>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한 달 내내 손꼽아 기다린 그들은 따끈따끈한 <보물섬>을 받아든 날이면 이불 속에서 그 두꺼운 잡지 한 권을 밤새 읽어 해치우곤 했다. <아기공룡 둘리>와 같은 한국 만화의 대표작이 <보물섬>과 그것의 애독자로부터 탄생했다.
<보물섬>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낡아버린 ‘보물섬’에서는 새로운 보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선생님과 부모님의 눈을 속여가며 읽는 것쯤으로 생각했던 만화가 ‘금 나와라 뚝딱’ 도깨비 방망이가 된 것이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드라마·게임 제작이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 그 첫 번째 사례이다. 국내 영화로는 <올드 보이> <타짜> 등이, 할리우드에서는 <스파이더 맨> <엑스 맨> 등 최고 흥행작들이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궁> <다모> 등 드라마와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의 원작 역시 만화이며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게임 <리니지>도 우리나라 만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습·요리·와인 등 각 방면에서 맹위

 

만화의 콘텐츠가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면서 국내 만화 산업 규모는 수천 억원 대에 이르렀다.   
 만화가 ‘심심풀이 오락’의 수준을 훌쩍 넘어선 것은 오래 전이다. 게임·학습 만화 <메이플스토리>가 수백만 독자들을 사로잡고,   <먼 나라 이웃 나라> <마법천자문> 같은 ‘아동·학습 만화’라는 만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만화는 경영 지침서로 활용되기도 하고, 전자 제품의 설명문을 대신하기도 한다.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주인공은 음식의 조리, 유통, 판매 전과정에서 장인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와인을 소재로 한 만화 <신의 물방울>은 CEO들의 와인 문화 필독서. 최근에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만화로 다시 태어났다. 원작 소설가는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완성도가 더 높다고 평가했다. 만화 잡지와 코믹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온라인 만화와 아동·학습 만화에 자리를 내주었으나, 상상의 세계 만화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전통적으로 만화 강국은 일본이었지만 근래에는 한국 만화가 한류 붐을 타고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한국 드라마에 대한 선호가 곧 한국 만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북미 지역에서는 한국 특유의 감수성, 정교하고 섬세한 기술로 그려진 만화를 선호한다. 형민우의 만화 <프리스트>는 동양 최초로 할리우드에서 유명 제작자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 얼마 전 허영만의 만화 <식객>이 1백2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여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발표가 나오자 일본 NHK를 비롯해 42곳에서 구매 의사를 밝혀오기도 했다. 빛바랜 옛 추억으로 묻힌 줄 알았던 만화가 경제적·문화적 효자 상품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와 기업이 이처럼 놀라운 ‘도깨비 방망이’에 걸맞은 투자를 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만화를 원작으로 한 2차 산업은 계속 성장 중이지만, 정작 그 원류인 만화 자체의 콘텐츠는 말라가고 있어 앞날이 우려된다.
 만화이기에 가능한 거침없는 상상력, 그리고 그것을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환경과 정책 지원이 시급하다. <보물섬>을 추억의 창고에서 다시 끄집어내자. ‘금 나와라 뚝딱’을 외치며 만화 방망이를 두들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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