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시동산에 다시 핀 '봉선화'
  • 김승규 (시인) ()
  • 승인 2007.04.0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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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 김상옥 시인 시비 제막...작곡가 윤이상 음악제도 함께 열려

 
비 오자 장독대 봉선화 반만 벌어/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광복 후 지금까지 50년 이상을 교과서에 실려 국민의 노래가 된 초정(艸丁) 김상옥(金相沃) 시인(1920-2004)의 작품 <봉선화>가 새겨진 시비(詩碑)가 그의 고향 경남 통영에 세워졌다. 한산도가 바라다보이는 통영시 남망산 초정 시동산에서 김남조 시인,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이근배·민영·허영자 시인과 서울·부산·통영 등지의 시인 등 3백여 명이 모여 지난 3월29일 시비를 제막했다.
김남조 시인은 기념사에서 “선생이 살아계실 때 두문불출하다시피 했지만, 오늘날 성대하게 찬양받는 것은 그분 문학의 은밀한 땀과 눈물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령 전 장관은 “초정은 용기 있는 시인이었고, 지적인 시인이었으며, 덕이 있는 시인이었다. 그리고 오늘 시비를 세운 것을 보니 복받은 시인이기도 하다”라고 축사했다.
초정 시비는 아주 독특하고 아름답다. 높이 190cm의 비석 앞면에는 대표작 <봉선화>를 초정의 육필 붓글씨로 새겨넣었고, 뒷면에는 초정이 그린 백자 그림과 약력을 새겼다. 시비의 조각은 강릉대 김창규 교수가 맡았다.


글·그림·글씨·전각에 능했던 종합 예술인


 
초정은 생전에 글·그림·글씨는 물론 전각 작업까지 했던 종합 예술인이었다. 보통학교 졸업 학력에 그쳤지만 독학으로 문학을 배워 19세에 시인으로 등단한 후, 교과서에 많은 시를 올릴 정도로 천부적 재능을 보였다. 시비에는 르네상스형 인간이었던 그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순한 시비를 넘어 그의 문학과 서예·회화·전각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야외 전시장인 셈이다.
시비 본체를 빙 둘러 의자 모양의 돌 열 개가 놓여 있다. 윗면에는 선생이 그린 백자 그림과 <백자부> <제기> <싸리꽃> <느티나무의 말>    <어느 날> <가을하늘> <참파노의 노래> 등 시와 시조를 새겼다. 제막식에서 허영자 시인이 <봉선화>를, 이우걸 시인이 <백자부>를, 소설가 김민숙씨가 <느티나무의 말>을 낭송했다. 또 초정이 쓰고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이 곡을 붙였던 <봉선화>를 성악가 이종훈씨가 노래했다. 통영에서 배출한 걸출한 두 예술가가 젊은 시절 의기투합해 만든 곡이지만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통영은 한국 예술과 문학의 별을 유난히 많이 배출한 곳이다. 초정 시비로 가자면 남망산 공원 입구의 청마(靑馬) 유치환 시비를 지나게 된다. 제막식이 있었던 3월 말은 윤이상 음악제가 열리고 있었다. 남망산 공원 입구의 통영 시민문화회관에는 음악제뿐 아니라 전혁림 미술 전시회도 함께 열렸다.
남망산에는 초정과 각별한 인연이 닿은 비석이 있다. 1954년 초정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을 뿐 아니라 건립을 주도해 세운 이순신 장군의 <한산시비>가 그것이다. 초정 시비는 여러 개의 시비로 이루어진 작은 ‘시동산’이다. 노송 여러 그루와 동백·철쭉 등이 어우러진 시동산은 7, 8월이면 봉선화 꽃으로 덮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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