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차별' 장애물 머나먼 '더불어 세상'
  • 정락인 편집위원 ()
  • 승인 2007.04.0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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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복지, 낙후 여전..."장애인의 날부터 없애라"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올해로 스물일곱 번째이다. 장애인들은 ‘장애인의 날’을 반기지 않는다. 아예 없애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장애’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회 풍조가 편견을 만든다고 본다. 장애인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장애인의 날을 없애도 좋으니 편견만 버려달라는 것이다. 내 이웃이나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 달라고 외친다.
동정이나 특별 대우가 아니라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다. 차별은 장애인들을 고통과 절망에 빠지게 할 뿐이다.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환경,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 능력에 따른 고용 환경을 원한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회 환경과 권리를 찾고 싶어한다.
장애인을 위한 정부 지원과 편의 시설이 대폭 늘고 있다. 특례 입학을 통해 대학 진학률도 높아졌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시행해 취업도 확대되고 있다. 장애인들을 멸시하고 무능력자로 취급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렇다고 장애인의 삶의 질이 크게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아직도 열악하다. 엘리베이터, 건물 출입구, 화장실, 편의 시설 등 장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설치된 것들이 아직도 많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입학 혹은 입사를 거부하는 학교나 기업들도 부지기수이다.
장애인의 경제력은 일반인들에 비해 약 40% 수준이다. 약값·치료비 등의 부가 비용이 들어가 지출은 오히려 더 많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장애에 대해 너그럽지도 않다. 곳곳에 차별과 편견이 존재한다.
장애인들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해 두 얼굴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무관심과 기피 현상이다.
가수 강원래씨는 2000년 11월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를 당한 후 가수 생활이 더 이상 어렵게 되었다. 피나는 재활 노력 끝에 기적적으로 가수로 재기했다.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휠체어 댄스 등 다양한 연예 활동을 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다른 장애인들에게는 큰 용기를 주었다.
강씨가 재활에 성공하기까지는 엄청난 시련이 뒤따랐다. 중도 장애인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장애와 대인 기피 증세도 찾아왔다. 강씨는 부인과 주변의 사랑에 힘입어 재활에 나섰고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 이런 사연을 접한 사람들은 강씨를 ‘인간 승리’의 대표적 사례라며 치켜세웠다.
지체장애인인 오성수씨(37)는 얼마 전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동네 식당에 들렀다가 식당 주인에게 쫓겨났다. 장애인이라는 이유였다. 오씨는 자주 겪는 일이지만 그때마다 우울증에 시달린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오씨를 쫓아낸 식당 주인은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다. 오히려 하루 매상을 망쳤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오씨는 “내 장애가 남들에게 피해를 준 일이 없다. 손 벌린 일도 없다. 정상인보다 몇 배 더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런 차별과 수모는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가족이 이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달라질 것이다”라며 울먹였다.


“일반인과 생활하는 데 불편함 없게 해줘야”


 
경기도 성남시 분당 신도시에 들어설 장애인복지관은 주민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일부 주민들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반대한다. 장애인들은 이런 사회의 이중성을 개탄한다.
장애인이 있는 가족은 충격·거부감·슬픔·죄책감에 시달린다. 이웃 간의 대화 단절과 엄청난 금전적 부담을 져야 한다. 심리적 고통도 크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 모두 안간힘을 쓴다. 눈물겨울 정도이다. 자신의 의지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 사회적 지지 등이 필요하다.
지난해 초 중견기업 ㅎ사의 영업부서에 입사한 임성훈씨(27). 임씨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을 볼 수 없었다. 선천적인 장애이다. 사춘기가 되면서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임씨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부모를 원망하고 스스로 자학했다. 불량 학생이 되어 온갖 말썽을 부렸다. 삶에 대한 자신감도 잃었다.
임씨 부모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장애아로 태어나게 했다는 죄책감이 컸다.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소용없었다. 임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부모는 그를 외국에 보내기로 했다. 넓은 세상을 보면 비뚤어진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임씨도 부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본·필리핀·영국·캐나다 등지를 다녔다. 어학도 배우고 세상을 보는 눈도 넓혔다. 임씨는 지난해 ㅎ사 영업부서에 입사했다. 1년이 지나 최고 실적을 올린 영업 직원이 되었다. 임씨는 자신의 장애가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특별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이다.
사회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의 희망 찾기는 계속되고 있다. 유석종씨(26)는 ‘시각장애인과 안내견 이야기’ 광고의 주인공이다. 이 광고는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전파되어 국민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덩달아 유씨도 꿋꿋하게 사는 시각장애인의 표상이 되다시피 했다. 유씨가 다녔던 창원대는 장애인 학생을 위해 점자 블록, 장애인 전용 승강기, 출입구 경사로, 장애인 화장실, 안내 점자 표지판 등 장애인 편의 시설을 설치했다. 유씨가 이끌어낸 변화이다.
유씨는 지난해 3월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 시각장애인 1호 직원이 되었다.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내견에 관한 상담과 홍보를 맡고 있다. 그의 안내견 ‘강토’는 하루 24시간 내내 유씨의 눈이 되고 있다. 유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기쁘고 행복하다. 자신이 겪고 있는 장애가 오히려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고 믿는다. 시각장애인과 상담을 할 때마다 가슴이 뿌듯하다.
현재 국내에는 59마리의 장애인 안내견이 활동 중이다. 장애인 안내견을 동반한 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지난 3월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년 4월부터는 장애인을 악의적으로 차별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 정당한 편의 제공 거부, 광고를 통한 차별이 금지된다.
장애인들은 ‘장애인의 천국’으로 불리는 선진국의 장애인 복지를 부러워한다. 장애인을 배려한 복지·교통·가전제품 등은 정상인처럼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도록 해준다. 정상인보다 장애인을 우선 배려하는 사회 풍토도 일반화되었다.
지난 3월 초에 장애인 가족대학을 개강한 마산시 장애인복지관 허문희 사회재활팀장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선진국은 국가정책이나 사회 인식이 장애인에게 맞춰져 있다. 일반인과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세상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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