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깊고 영롱한 ‘소리의 향연’
  • 홍선희 편집위원 ()
  • 승인 2007.02.2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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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고의 합창단 보치 노빌리 등 내한 공연…북유럽 특유의 음색 ‘짜릿’
 
그리그 서거 100년인 올해 북구의 서정을 가져다줄 몇몇 합창단 내한공연이 예정되어 있어 국내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여성 합창단 보치 노빌리가 4월7일 성남아트센터, 4월9일 코엑스몰 무대에 서며 대구 등 지방 도시에서도 공연한다. 민요·재즈·오페라 아리아 등을 부를 예정이다. 
9월에는 노르웨이 솔리스트 콰이어가 내한한다. 단원들은 앙상블 훈련을 받은, 엄선된 가수들로 각각 자신들의 음악 장르에서 솔로로도 활동 중이다. 정식 단원으로 등록한 가수가 60~70명으로 개별 프로젝트의 스타일과 레퍼토리에 따라 단원 수를 유동적으로 조정한다. 9월15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할 예정인데 프로그램은 아직 미정이다.
바다와 지평선, 바람과 침엽수의 나라 북유럽의 음악이라면 으레 그리그나 시벨리우스를 연상하던 시절에 비해 지난 수년 사이에는 북유럽 음악인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그들은 이제 미국 및 서유럽 음악계에서 높은 대우를 받고 있다. 라트비아 출신 지휘자 마리스 얀슨스는 세인트루이스·피츠버그·암스테르담을 거쳐 독일 바바리아 방송 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활약 중이다. 핀란드 출신의 에사 페카 살로넨은 10년 이상 LA 필하모닉 음악감독을 맡다가 2007년부터는 런던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를 겸임하고 있다.
합창음악 선두에서 이끄는 스칸디나비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오늘의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연주하고 듣겠는가”라고 말하는 살로넨을 수장으로 둔 LA 필하모닉은 현대 음악을 자주 연주한다. 최전성기에 올라 있는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는 노르웨이 출신으로 2월13일 서울에서 열린 다섯 번째 리사이틀에서 서거 100주기를 맞은 그리그의 ‘노르웨이 민요에 의한 변주곡 형식의 발라드’를 들려주었다. 올해 처음으로 이 작품을 연주한 그는 “곡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렸다”라고 말했다.
뉴에이지 분야에서 인기가 시들지 않는 시크릿 가든은 노르웨이 피아니스트와 아일랜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가 주축이다. 이 그룹은 자신들의 곡에 영어 가사를 붙여 소프라노 신영옥씨와 음반을 제작한 일이 있다.
크롬 하모니카의 1인자 지그문트 그로븐도 노르웨이 출신으로 하모니카 주자로서는 최초로 카네기홀에서 단독 연주회를 가졌으며 <바그다드 카페> <일포스티노> 같은 영화에도 참여했다.
합창음악 애호가들에게 스칸디나비아는 또 다른 동경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이 지역이 합창음악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로는 스웨덴 9백만명, 핀란드 5백20만명, 노르웨이 4백60만명으로 모두 합쳐도 우리나라의 수도권 정도이다. 하지만 이 세 나라 어디서나 초등학교를 마치면 악보를 읽고 중등교육 과정을 통해 누구나 능숙하게 악기를 연주할 수 있으며 상당한 수준의 음악적 소양을 갖추게 된다. 이처럼 음악이 꽃필 수 있는 자양분을 갖춘 상태에서 뛰어난 작곡자들이 등장해 북유럽 합창음악의 전성기를 열게 되었다.
 
1915년생으로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크누트 니스테트는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이며, 지휘자로 북유럽 합창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노르웨이 솔리스트 콰이어를 이끌고 40여 년간 전세계를 순회했고, 널리 연주되는 뛰어난 곡들을 작곡했다.
에릭 에릭슨 또한 합창음악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고 있으며 그가 지휘하는 스웨덴 방송 합창단은 창작곡 연주에 집중해 클라우디오 아바도·리카르도 무티 등 여러 거장과 함께 녹음한 음반들로 사랑을 받는다.
이들에게 사사한 제자들이 곳곳에 진출해 북유럽을 지구촌 합창음악의 축으로 발전시켰다. 제대로 된 음악 교육 시스템을 통해 대가들을 꾸준히 배출하며 합창음악 발전의 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의 타피올라 합창단은 1971년 BBC가 주최한 세계 합창 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으면서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특유의 맑고 밝은 음색으로 ‘타피올라 사운드’라는 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명성을 얻었다. 에르키 포욜라가 창단한 이 합창단은 모든 단원들이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서 합창과 현악 합주를 조화시켜 다채로운 무대를 연출해낸다. 
노르웨이의 여성 합창단 보치 노빌리는 1989년 그리그의 고향인 베르겐에서 대학생 단원으로 창단되어 마리아 헬베크모의 지휘 아래 유럽 각지의 국제 합창 경연대회에서 20여 차례 최고상을 수상하는 등 단기간에 정상권 합창단으로 발돋움했다.
이러한 괄목할 만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말 두 차례 방문한 타피올라 합창단을 제외하고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정상급 합창단이 내한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는 데다 국내에서 합창음악에 대한 선호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제는 서울의 경우 자치구마다 구립 합창단을 둘 정도로 합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꾸준히 연습해 정기 공연을 갖는 노래 모임도 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합창단의 음색은 그 합창단이 자리한 지역의 자연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러시아처럼 추운 지역의 합창단들은 깊이 있는 소리를 낸다. 독일 합창단들도 소리가 깊다. 춥기로는 이에 버금가는 북유럽의 합창단들도 깊은 소리를 낸다. 북유럽 합창단들의 음색은 좀 복잡하다. 깊을 뿐만 아니라 맑고 영롱하며 포근하고 따사롭다.
“이 지역 합창단은 볼륨을 키우면서도 편안하게 곡을 담아낸다”라고 음악 평론가 조희창씨는 말한다. 하나의 합창단이 이런 음색들을 모두 갖기란 힘든 일이다. 그래서 북유럽 정상급 합창단의 연주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 놀라운 음색을 잊지 못하며 연주회장의 충만한 감동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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