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거칠게 만드나
  • 이시형(정신과 의사,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 원장) ()
  • 승인 2007.01.23 11: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너무 험악하다. 품격도, 규범도, 위·아래도 없다. 어거지, 과격, 폭언, 폭력, 폭행…. 도대체 인간으로서의 기본이 안 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서로 미워하고 편 가르고 헐뜯고, 막가는 세상에 길을 나서기가 두렵고 불안하다.
왜 우리 심성이 이렇게 거칠고 험악하고 과격하게 되었을까? 최근 발달된 뇌 과학적 지식을 통해 오늘의 한국인을 진단해본다. 결론은 ‘세로토닌 결핍증’ 탓이다.
우리 대뇌에는 3대 각성물질이 있다. 첫째가 폭력의 주범인 ‘놀 아드레날린(NA)’. 이 물질은 싸우거나 달아나야 할 위기 상황에서 분비된다. 즉각 교감신경이 흥분되고 온몸에 싸울 준비를 시킨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뇌압이 올라간다. 성이 나서 씩씩거리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쉽게 이성이 마비되고 방어·공격 충동이 발동되는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행동 반응이 나타난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이런 교감신경 과잉 흥분에 걸린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일단 폭발하면 분노 반응이 더욱 격화되어 평생 후회할 일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브레이크 없는 차와 같다.


습관성 격정이 만든 ‘최악’의 기록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는 어느 누구도 차분할 수 없다. 바짝 긴장해야 한다. 만성 교감신경 흥분 상태에 놓이면 작은 일에도 쉽게 자극되어 마음이 급하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유머 감각도 없고 도대체 여유가 없어진다.
그 반대쪽 쾌감 호르몬이 엔도르핀이다. 축구 경기, 드디어 한 골이 터졌다. 와! 환호하는 순간, 이 호르몬이 펑펑 쏟아진다. 기분 최고다. 문제는 좋다고 계속하다 보면 중독이 된다는 사실이다. 술·담배·도박이 세계 최고인 것도 한국인의 습관성 격정에서 비롯된다.
어느 쪽도 건강한 상태가 아니다. 극단의 방향으로 폭주하지 않게 조절하는 호르몬이 세로토닌이다. 중용(中庸) 호르몬이라 부르기도 한다. 충동이나 과격을 조절해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 호르몬은 생기와 의욕을 고양시킴으로써 주의 집중, 기억력을 높여 정신 활동을 하는 데 필수 호르몬이다.
따라서 세로토닌 결핍증은 우울증뿐만이 아니라 인간을 폭력적으로, 중독성으로 만드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이 오늘 한국 사회 실상이다.
왜 한국인에게 세로토닌 결핍 현상이 생겼을까? 제일 중요한 원인은 인류의 기본적 생활 리듬이 난조에 빠진 탓이다. 세로토닌은 생명 중추와 직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잘 걸으려 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하루에 3만 보쯤 걸었는데 요즘에는 5천 보도 안 걷는다. 게다가 계단 공포증까지, 한 층도 걸어 오르지 않는다. 음식을 씹어  먹으려 하지 않는다. 요구르트, 우유, 패스트푸드, 죽집도 성업 중이다. 씹을 것도 없다. 옛날 하루 6천 번쯤 씹었는데, 요즘에는 2백 번쯤이라는 연구 보고도 있다. 심호흡할 기회도 없다. 무거운 짐을 질 일도 드물고, 비탈길도 없다. 땀 흘릴 일도 없으니 땀샘도 퇴행되고, 이윽고 생명도 퇴화될 것이다.
다음 중요한 것이 햇빛이다. 밤낮이 거꾸로 된 사람은 햇빛 구경을 못한다. 이렇듯 우리는 지금 편이·쾌적·효율의 과학 문명 중독증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세로토닌 분비가 안 되게 되어 있다. 밝은 태양 아래 씩씩하게 걷고, 잘 씹어 먹고, 심호흡을 하는 등 생명 유지를 위한 기본적 리듬 운동만으로도 세로토닌 분비가 왕성해지고, 우리 사회에 평화가 온다. 그래도 안 된다면 명상이 효과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