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비단 숄’ 컴퓨터를 탄생시키다
  • 표정훈(출판 평론가) ()
  • 승인 2006.12.2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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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의 책]<핀볼 효과:우연적 사건의 연쇄가 세상을 움직인다>

 
나폴레옹이 현대 컴퓨터의 발전과 상관 있는 인물이라면? 사연인즉 이렇다. 1798년 이집트로 원정을 떠난 나폴레옹 군대는 이집트에서 비단 숄을 들여왔다. 이집트 비단 숄은 곧 프랑스 사교계 전체에 엄청난 유행의 광풍을 몰고 왔다. 그 유행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유럽에서 비단 숄은 자카르식 직조기로 자동 생산되었다. 자카르식 직조기의 원리는 미국 공학자 허먼 홀러리스가 천공 카드를 이용한 계산기를 발명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 계산기는 최초의 전자 컴퓨터 에니악(ENIAC)이 탄생하는 원리가 되었다. 이쯤 되면 앞으로 컴퓨터를 사용할 때마다 나폴레옹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11세기 유럽의 상속법과 서양 제국주의 발달 간의 관계는? 11세기 유럽의 상속법에 따르면 장남이 모든 유산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장남이 아닌 남성들의 유일한 출세 길은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다. 성직자의 길로 나서지 않은 유럽의 ‘동생’들은 사회적 문제아들이 되었다. 마침 십자군 전쟁이 터지면서 동생들은 출세를 좇아 십자군 원정 길에 나섰다. 원정에 나선 이들을 통해 유럽에 들어온 향신료는 유럽인들의 입맛을 바꿔놓았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이슬람 세력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향신료 무역에 드는 비용이 엄청나게 뛰었다. 유럽인들은 새로운 교역처와 교역로를 개척해야 했고, 그 결과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제국주의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파마 머리를 한 여성들을 보면 쾌속선을 떠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1906년 독일 미용사 카를 네슬러의 여동생은 뻣뻣한 생머리 때문에 고민했다. 웨이브 효과를 주려면 인두를 사용해야 했지만, 여동생은 인두 사용을 싫어했다. 네슬러는 여동생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머리를 싸맨 끝에, 붕사를 쓰면 영구 웨이브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파마 머리의 시작이다. 파마에 쓸 붕사를 채취하는 산업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성황을 이루었으니, 붕사를 채취하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도착한 이민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우연히 금 덩어리를 발견했다. 골드 러시의 시작이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려는 경쟁의 와중에 쾌속선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렇게 ‘자그만 파문 하나가 망 전체로 펴져나가듯, 변화의 거대한 망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서로 다른 사건들을 연쇄적으로 일으키고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우연적 사건의 연쇄가 세상을 움직이는 핀볼 효과다. 핀볼 효과는 지식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바꾸게 만든다. 무엇을 아느냐보다 어떻게 연결을 짓느냐 하는 것, 요컨대 지식의 그물을 어떻게 짜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의 저서들 가운데 번역되어 있는 다른 책 <지식혁명이 남긴 위대한 유산>(청아출판사)의 원제목이 ‘지식의 그물(The knowledge of Web)’이다.

 
이런저런 잡다한 사항들을 연결지어 놓았다는 것이 무어 그리 대단하느냐고? 그렇게 묻는 사람에게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지능을 기억력, 순차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그리고 문장력으로 평가하는 대신, 마치 핀볼 게임처럼 지식을 꿰어 연결한 망 위에 상상력이 풍부한 패턴을 만드는 능력으로 측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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