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문화 뒤흔든 UCC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12.1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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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신조어] 평범한 네티즌이 만든 동영상 등을 뜻하는 말…펭귄족 같은 새 종족도 다수 등장

 
지난해 <시사저널>은 ‘올해의 신조어’를 신설해 그해 시대상을 잘 보여준 단어들을 골라 정리했다. 올해 4월부터는 ‘이주의 신조어’ 코너에서 그때 그때 유행하는 신어들을 소개했다. 그간 ‘이주의 신조어’ 코너에 소개된 신어들을 정리에 올 한해 흐름을 정리해보았다.

올해 신조어들의 특징은 유달리 정치적  색채가 짙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난 9월18일 보수 논객 이문열씨는 중앙일보 칼럼을 통해 진보우파 라는 단어를 선보였다. 그는 “지금 세계를 주도하는 세력은 ‘진보 우파’이다. 진보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올해 3월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다”라고 말한 것만큼이나 부자연스러운 신조어였다.  정치적 신조어라면 아마도 미국 백악관 비서실 사람들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악의 축’이라는 신어를 퍼뜨리며 세계를 경악시켰던 백악관의 단어 합성 실력은 이후 2004년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현 국무장관)의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 of Tyranny)’ 발언과 올해 부시 대통령의 ‘이슬람 파시스트(Islamofascist)’ 발언에서 극에 달했다. ‘악의 축’이라는 말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탈리아 군 등을 불렀던 ‘주축국(Axis)'과 냉전 시대 소련을 일컬었던 ‘악의 제국(Devil)'을 합친 말이다. 마찬가지로 ‘이슬람 파시스트' 역시 21세기 미국인들의 의식 수준을 1940년대 전쟁 시대로 퇴행시키고 싶어하는 백악관의 의중이 담겨 있다.

하지만 신조어 정치도 수명을 다하는 것일까.  부시 대통령은 ‘악의 축’ 정치로 재미를 보며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이슬람 파시스트’ 신조어는 공감을 얻지 못했고, 오히려 의회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 풍자한 ‘경포대’와 ‘노곤층’

정치적 신조어는 주로 선거 때 등장한다. 지난 4월6일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강금실 후보는 기자 회견에서 ‘퍼플 오션’ 이라는 합성어를 띄웠다. 베스트셀러 <블루 오션 전략>에서 영감을 얻은 듯했다. 이후 강금실 후보는 선거 홍보전에서 보라색(퍼플)을 상징색으로 썼다. 우파(청색)와 좌파(적색) 사이에서 중도를 걷겠다는 뜻이었지만, 유권자들은 퍼플 정치를 회색 정치로 받아들였는지 강금실의 지지도는 낮았다. 5·31 지방선거 때 후보들이 자주 들먹인 ‘협치’라는 정치 용어도 올해 떠오른 신조어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매니페스토 운동과 같은 뜻인 ‘참공약’ 운동을 벌였다. 참공약은 국민 공모를 거쳐 탄생한 신조어다.
최근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하면서 이를 빗대는 풍자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경포대는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노곤층은 ‘노무현 정부가 만든 빈곤층’을 뜻한다.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종족 신조어가 범람했다. 종족 신조어란 특이한 행태를 보이는 집단이나 세대를 빗대는 용어들이다. 대개 ‘OO족’이라는 형태를 띤다. 2005년의 경우 면창족·신기러기족·부비댄스족·영퇴족·콘트라섹슈얼족·캔들족·위버섹슈얼족·골뱅이족·공시족·스펙족·시혼족 등이 있엇다. 올해 역시 다양한 종족 신조어가 출현했다.

펭귄족 은 기러기족에서 파생된 단어다. 즉 돈이 없어서 자녀가 사는 외국을 방문하지 못하는 기러기 아빠를 뜻한다. 혹은 아내가 한국에 있고 남편이 외국에 있는 이별 부부를 으미한다. 펭귄이라는 동물이 모계 사회를 이루고, 날지 못하는 새이기 때문에 나온 말인 듯하다. 엠니스 는 여성의 역할을 함께 떠안은 기혼 남성들을 부르는 말이며, 퍼블리즌은 자신의 사생활을 인터넷을 통해 외부에 공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키티맘 은 20~30대 중산층 고학력 기혼 여성을 부르는 종족 신조어다. 어린 시절 키티 인형을 가지고 놀며 자란 세대다.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라 그 전 세대 어머니들과 달리 희생을 싫어하고 감각적인 소비 취향을 지녔다.
종족 신조어 중에는 소비 행태와 관련한 낱말이 많다. 트리타지족·와이프로거·보테슈머·블링블링·웰시족 등은 나이와 성별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모두 화려한 소비 생활을 즐긴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소비 종족 신조어가 범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기업 산하 연구소들이 툭하면 이런 신조어가 담긴 보고서를 발표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백악관이나 청와대가 벌이는 신조어 정치와 맥을 같이한다. 대중을 선동하고 자극시키려는 ‘신조어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쌍춘년’은 사기성 신조어?

 
종족 신조어는 아니지만 쌍춘년·쌍춘절 이라는 새말에도 신조어 마케팅의 냄새가 난다. 쌍춘년이란 음력을 기준으로 1년이라는 기간을 잡았을 때 그 안에 입춘(양력)이 두 번 들어있는 해를 말한다. 결혼업체에서는 2백년마다 한 번 돌아오는 쌍춘년이라며 홍보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2~3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반복되는 것이 쌍춘년이다. 이상한 것은 올해가 쌍춘년이라는 사기극이 끝나갈 무렵에 내년이 ‘황금돼지해’라는 신종 사기극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황금돼지해에 아기를 낳아야 복이 들어온다는 것인데, 올해 결혼해 내년에 아기를 낳게 하는 수순은 너무 절묘하다. 혹시 저출산과 인구 감소를 막으려는 정부의 국가적 비밀 프로젝트는 아닐까? 엉뚱한 음모론이다.

인터넷 시대답게 올해 신조어 가운데에는 인터넷 문화와 관련된 것도 많다. 구글링 은 ‘구글을 이용해 검색하다’는 문장을 한 단어로 줄인 동사다. ‘현피’는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끼리 다투다, 오프라인(현실 세계)에서 직접 만나 주먹다짐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UCC
는 올해 다음커뮤니케이션(daum.net)이 의욕적으로 광고하고 있는 신조어다. ‘User Created Contents’의 약자로 평범한 네티즌 사용자들이 직접 만든 게시물이나 동영상 등을 말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광고하기 오래 전부터 UCC는 인터넷 업체의 최대 화두였다. UCC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하는 자가 미래를 잡는다는 말이 나돌았다. 실제로 미국의 인터넷 사이트 유튜브는 UCC 동영상을 잘 가공해 대박을 터뜨렸다.

UCC는 인터넷 기업의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인터넷 문화 자체를 흔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쌍방향 통신인 인터넷에 가장 잘 어울리는 현상이기도 하다. <시사저널>은 올해의 신조어로 UCC를 선정한다. 2005년 올해의 신조어 ‘네카시즘’에 이어 2년 연속 인터넷 관련 신조어가 왕좌의 자리에 등극했다. 한편 국립국어원에서는 UCC 대신 ‘손수제작물’이라는 순화어를 쓸 것을 당부하고 있다. 어느 쪽이 편한지는 언중의 뜻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손수제작물’ 다섯 글자보다는 ‘유시시’라는 말이 더 실용성 있어 보이기도 한다.

올해 ‘이주의 신조어’ 목록을 살펴보면 외래어 신조어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친디루·글로비시·압솔리지·사이코패스·하비홀릭 등이 그렇다. 밥터디·용겔계수·착플 처럼 우리말과 외래어가 합쳐진 신조어도 있었다. 내년 신조어 목록에는 우리말 신조어가 많아져 국어의 진화에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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