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 끝” 만세 부르다 벽 뚫리고 허둥지둥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12.0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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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잡은 줄 알았던 조류 독감이 2차로 발생하자 공무원들은 갈팡질팡했다. 확산 경로는 찾지 못한 채 소독약만 뿌려댔다. 조류 독감이 발생한 전북 익산 현지 취재.

 
지난 11월19일 전북 익산시 함열읍 이 아무개씨(56)의 농장. 닭 수십 마리가 꾸벅꾸벅 졸더니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날 닭 19마리가 죽었다. 닭 병은 흔히 있는 일인지라 이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 2백 마리, 그 다음 날 4백 마리가 죽었다. 22일에는 닭 5천 마리가 콧물을 흘리고 목을 뒤로 젖힌 채 죽었다. 이씨는 닭들이 큰 병에 걸렸음을 직감했다.

이씨는 익산시나 전라북도에 신고하지 않았다. 대신 승용차에 죽은 닭 다섯 마리를 싣고 경기 안양시에 있는 국립수의과학원을 찾아갔다. 이씨는 “죽은 닭을 치우다가 지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병이 무언지 확실하게 알아보려고 수의과학원에 갔을 뿐 시에 먼저 신고해야 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11월22일 농림부는 조류 독감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2003년 조류 인플루엔자 파동을 경험한 탓인지 국민들은 차분하게 대응했다. 무엇보다 닭고기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지 않았다. 삼계탕과 오리고기를 파는 식당에 손님이 끊어지지도 않았다. 11월27일과 28일, 이틀간 현장을 가보았다. 조류 독감이 발생한 곳에서 10km 남짓 떨어진 익산 시내에서도 동요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익산역 앞에서 식당을 하는 김 아무개씨는 “아직도 반찬으로 계란찜을 내놓는데 손님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먹는다. 더 달라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익산시청에서 만난 한 민원인은 “분위기가 좀 어수선할 뿐 평상시와 별 차이가 없다. 익산 시민들은 조류 독감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류 독감이 발생한 함열읍과 황등면 주변 농가도 침착하게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함열읍 용동리에서 닭백숙 집을 하는 김 아무개씨는 “거의 휴업 상태다. 식당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가게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황등면 죽촌리 노 아무개씨는 “11월31일 그동안 키운 돼지 21마리와 개 다섯 마리를 땅에 묻었다. 심정이야 안타깝지만 빨리 원인을 제거해 조류 독감이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위기 관리 능력 진가 보였다”

정부도 발 빠르게 대응책을 내놓았다. 2003년 조류 인플루엔자 파동을 계기로 정부는 2004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기관리 메뉴얼과 긴급 행동지침(SOP)을 만들었다. 전라북도와 익산시는 위기 관리 메뉴얼에 따라 초소를 세워 방역 작업에 나섰고, 반경 3㎞ 이내를 ‘위험 지역’으로 선포했다. 가금류의 반·출입을 전면 통제한 뒤 조류 독감이 발생한 농장의 반경 5백m 안에 있는 닭과 개, 돼지 등을 도살 처리하고 모든 달걀을 폐기 처분했다. 정부 각 부서에서 경쟁이라도 하듯이 삼계탕 먹는 그림을 보여주어 시민을 안심시켰다. 

 
1주일 간의 방역 작업으로 조류 독감이 진정 기미를 보였다. 정부는 한 고비를 넘겼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26일 오후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서 닭 폐사 신고가 접수되었다. 닭 여섯 마리가 비틀거리더니 죽었다. 하지만 28일 익산시 당국은 “고병원성 조류 독감이 확산될 조짐은 현재로선 없다”라고 밝혔다. 기자가 살처분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하자, 시청 방역대책본부 한 공무원은 “살처분이나 소독을 하는 인원을 더 모집할 계획이 없다. 초기 방역에 성공을 거둬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한 걸음 나아가 정부에서는 조류 독감 파동을 “차분하고 신속하고 꼼꼼하게 대응했다”라며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11월29일 <국정브리핑> 내용이다. ‘철저한 준비와 노력의 결과 우리나라의 AI로 인한 인플루엔자 대비 위기 관리 능력은 국가적 브랜드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다시 발생했다. 익산시 황등면 죽촌리의 종계농장. 최초 조류 독감이 발생한 농장으로부터 3km 바깥에 있는 곳이었다. 정부가 쳐놓은 방어벽이 무너졌다. 정부의 방역 체계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당번을 정해 나오는 방역대책본부에서 자리를 지키는 공무원이 별로 없었다. 총무과에서 사내 방송으로 빨리 나오라고 독려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또 본부에 모인 공무원들은 무엇을 할지 몰라 허둥지둥했다. 방역에 나선 방역차들을 따라다녀 보았으나 체계적인 활동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나다니면서 집과 창고 주변에 소독약을 뿌릴 뿐이었다.

조류 독감은 공기를 통해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지 않는다. 주로 농장 간에는 오염된 물과 배설물 또는 사람의 의복·차량 등에 묻어서 전파된다. 최초 조류 독감이 발생한 농장 부근을 출입했던 차량이나 사람에 의한 감염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부는 확산 경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역학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원인과 감염 경로를 찾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두 농장이 같은 정미소에서 왕겨를 공급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엉성한 대응, 2003년 사태 때와 판박이

결국 11월30일 조류 인플루엔자 단계별 위기경보가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되었다. 박홍수 농림부장관은 전북 익산의 두 양계 농장으로부터 반경 3km 안에 있는 가금류를 모두 살처분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두 농장의 반경 3km 안에는 40개 농장에서 약 77만2천 마리의 가금류가 사육되고 있다. 그중 대부분은 닭이며, 오리는 1백20마리 정도에 불과하다. 익산시 황등면에서 닭 7만여 마리를 키우고 있는 이 아무개씨는 “30년 넘게 닭을 키워왔는데 멀쩡한 닭들을 땅에 묻어야 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닭 키우는 것밖에 모르는데 앞날이 더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함열읍 삼기면의 김 아무개씨는 “토종닭 종계 2만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보상이 어느 정도 나올지…. 문제는 농가들이 연대보증을 하고 있어 하나가 죽으면 줄도산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안일한 판단과 엉성한 초기 대응 그리고 문제가 확산되고 나서야 부산을 떠는 것까지 지난 2003년과 판박이다. 우리나라에서 조류 독감이 처음으로 발생한 곳은 2003년 12월 충북 음성에 있는 한 농장이었다. 조류 독감이 발생한 지 10일이 지난 뒤에야 농가가 이 사실을 신고했다. 처음에는 발병 농장의 닭만 살처분했다. 그리고 반경 3km 안의 식용 달걀을 폐기했다. 그러나 5일, 7일 뒤 인접한 오리 및 닭 농장에서 조류 독감이 잇따라 추가 발병했다. 결국에는 반경 3km 안의 약 1만4천 마리를 살처분했다. 충남 천안과 경북 경주, 전남 나주에서 잇따라 조류 독감 발생 신고가 접수되었다. 하지만 농림부 관계자들은 “대부분 음성 판정을 받을 것이다”라며 낙관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만에 조류 독감은 전국을 휩쓸어버렸다. 방역망에 구멍이 뚫려 천안 오리 농장의 오염된 오리알이 경주와 나주로 독감을 옮기고 있는데도, 공무원들은 줄곧 청둥오리만을 탓했다. 결국 10개 시·군에서 5백3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고 1천5백억원의 피해를 냈다.

문제는 앞으로 조류 독감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46쪽 딸린 기사 참조). 관계 당국은 조류 독감의 발생 원인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철새 탓만 하고 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이번 조류 독감의 발생도 철새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익산시 방역대책본부 관계자도 “철새의 배설물이 첫 발생의 원인이 된 것으로만 추정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익산의 조류 독감 발생 농장은 철새 도래지 금강 하구 둑에서 10km 가량 떨어져 있다. 2003년에도 철새 도래지 근처인 충북 음성에서 조류 독감이 발생했다. 철새가 조류 독감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해법이 없다는 것이다. 한 해 1백만 마리 이상의 철새가 11월 초부터 1월 사이에 한국을 찾고 있다.

고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여러 정황을 볼 때 전세계적으로 조류 독감이 퍼질 가능성이 높으며 그럴 경우 사회·경제·정치적으로 파급 효과가 클 것이다. 조류 독감이 왔을 때 대처하는 것이 미흡하다면 어떤 정부나 정치지도자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11월30일 조류 독감의 진앙지인 익산시 함열읍을 빠져나오는 취재진의 차에 희뿌연 소독약품이 뿌려졌다. 황등면 죽촌리에서 만난 진돗개 진순이가 떠올랐다. 진순이는 12월1일 살처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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