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어디가 불편하세요?”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6.11.2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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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수발보험’ 시범 사업 현장 취재/수발 요원이 빨래·요리에서 간단한 치료까지 거들어

 
11월21일,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 인구 추계’의 내용은 우울하다. 그 자료에 따르면, 2026년에 한국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인구 5명 가운데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이 된다. 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0.6%(2005년은 9.1%). 노인이 늘어나면 그만큼 젊은이들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고,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각종 노인성 질환도 증가한다. 거동을 못하는 노인이 늘어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매일 24시간 누군가 곁에서 수발을 들어야 하고, 통장에서 돈이 술술 새어 나가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고통을 겪는 가정이 한둘이 아니다. 
다행히 정부가 나섰다. 2008년 7월에 시행할 계획으로, 국회에 ‘노인수발보험법’ 안을 제출한 것이다(딸린 기사 참조). 노인수발보험이란 고령이나 노인성 질환으로 거동을 못하는 노인들의 신체 활동과 집안일을 도와주는 보험을 말한다. 서비스 종류는 취사·청소를 도와주는 ‘가정 수발’과 간호사가 요양상의 치료와 진료 보조를 해주는 ‘간호 수발’ 등이 있다. 정부는 2007년 수발 대상 노인 인구를 71만8천5백 명쯤으로 추산한다. 

 사실, 노인수발사업은 이미 시행 중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수원시·강릉시·제주시·부여군·완도군 등 8개 시·군·구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는 것. 정부는 시범 사업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한 뒤 제도를 운영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에게 노인수발보험은 생소하다.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는 제도인지, 걸림돌은 없는지 부여군 사례를 통해 들여다 본다.   
 
‘우렁 각시’를 기다리는 할아버지

 여든일곱 살 서승석 할아버지(부여군 남면 삼용리)는 지난해까지 심신이 건강했다. 남의 논을 빌려 쌀농사를 지을 정도로. 그러나 지난봄부터 모든 것이 변했다. 아내 송정호씨(76)가 낙상을 한 뒤 손발이 마비되어 꼼짝도 못하게 된 것이다. 가장 큰 걱정은 치료비·입원비였다. “자식들 도움을 받아 읍내 노인 병원에 있었는데, 입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라고 서씨는 말했다.

 9월에 할 수 없이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난감했다.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빨래·설거지·취사를 도맡아해야 했던 것. 여든여섯 살의 몸으로 쉽지 않았지만, 그는 하루이틀 버텨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츠츠가무시병(좀진드기를 매개로 발생하는 질병. 발열·발진이 특징이다)에 걸리면서 그는 남아 있던 근력마저 모두 소실하고 말았다. 자식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모두 제 살림 챙기기에 바쁜 터라 손을 내밀 엄두도 못 냈다.

 지난 10월, 서할아버지는 노인수발보험 얘기를 처음 들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한 달 동안 수발을 받고 전체 비용의 10%를 내야 했지만, 병원비 50여만 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수발 비용의 20%는 이용자가 냄. 그러나 경로우대자는 10%만 내고, 기초 수급자는 무료). 그는 건강보험공단 부여 지사의 심사를 받아 11월1일부터 수혜자가 되었다. 그날 이후 인적이 끊겼던 그의 집에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아침 11시 경에는 여성 수발 요원이 찾아온다. 그녀는 서너 시간 동안 ‘우렁 각시’처럼 밥 짓기·반찬 만들기·빨래하기·집안 청소를 해낸다. 그동안 서씨는 우두커니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그녀를 바라본다. 오후에는 일주일에 세 번 부여보건소 간호사들이 찾아온다. 그녀들은 움쭉달싹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를 돌본다. 욕창을 치료하고, 약솜으로 몸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대소변용 속옷을 갈아입히는 것이다. “혼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라고 서씨는 말했다. 

*부여에는 현재 2백46명이 수발 요원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 서씨처럼 활동이 가능한 1백13명은 집에서 수발을 받고, 치매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1백33명은 성심원 같은 복지 시설에서 공동으로 수발을 받는다.

매일 ‘다른 곳’으로 출근하는 그녀

 부여군 마정2리에 사는 유정순씨(53)는 지난해까지 평범한 주부였다. 경찰 공무원인 남편 덕에 호미질 한 번 안 하고 집안 살림만 한 것이다. 그녀의 생활에 변화가 나타난 것은 지난해 말, 수발 요원 교육에 참여하면서부터이다.

 유씨는 오래전부터 남을 돕고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요것조것 따지다보니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였다. 그런데 뭐가 씌었던지 노인 수발 요원 모집 공고에는 마음이 끌렸다. 세 번의 교육 끝에 노인 수발에 나선 것은 지난 8월. “처음 노인을 만나러 갈 때에는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11월21일 아침,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남편과 집을 나섰다. 차로 30여분쯤 떨어진 부여군 복금리의 박금선 할머니(82) 댁에 가는 길(그녀는 닷새 동안 매일 다른 노인을 찾아 출근한다). 남편은 공직에서 퇴직한 뒤 줄곧 그녀를 차에 태워 일터까지 바래다준다. 박할머니 댁에 도착한 그녀는 남편을 돌려보낸 뒤, 익숙한 손놀림으로 방 청소를 했다. 그리고 밥과 반찬을 만들고, 할머니가 식사를 하는 동안 이불 빨래 등을 거침없이 해냈다. “하루에 서너 시간 일하면 고단하다. 그렇지만 불쌍한 시골의 독거노인이 웃는 모습을 보면 참 행복하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부여군에는 현재 유씨 같은 수발 요원이 40명쯤 더 있다. 그들은 노인 복지 시설에 수용된 노인들이나, 집에서 홀로 지내는 노인을 방문해 수발을 들어주고 시간당 6천~7천 원을 받는다. 유씨는 그렇게 해서 한 달에 60만~70만원을 받는다. 돈을 먼저 생각하면 절대 못할 일이겠지만, 노인 수발을 통해 가정을 꾸려나가는 봉사자들은 보수가 좀 더 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 수발 요원은 “치매 걸린 노인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힘들고 고된 일이다. 보수가 좀 더 세면 신이 더 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수발 요원은 해당 지역에서 선발하며, 일정한 교육을 통해 배출한다. 교육은 노인 가정 관리법, 노인과의 대화법같이 바로 응용이 가능한 것들을 가르친다.

동서남북을 누비는 간호사

 부여보건소 간호사 오애리씨(26)의 하루는 8시40분에 시작된다. 그 시각, 그녀는 보건소에서 그날 쓸 혈압 측정계·혈당 체크계·반창고·거즈·청진기 등 30여 가지 물품을 왕진 가방에 챙겨 넣는다. 그녀의 행선지는 하루하루 다르다. 어느 날에는 남쪽으로 가고, 어느 날에는 북쪽으로 갔다가 동쪽으로 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하는 일만은 똑같다. 병든 노인들의 간호 수발을 드는 것이다.

 5년차 간호사 오씨는 지난 9월말부터 간호 수발을 들고 있다. 거동을 못하는 노인들의 집을 방문해 욕창을 치료해주거나, 소변을 못 보는 노인에게 오줌주머니를 채워준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부끄러움을 잘 타는 시골 노인들이 좀처럼 알몸을 내보이려 하지 않아 수시로 실랑이를 벌여야 했던 것. 의심 많은 노인들에게 인심을 얻느라 웃음 웃는 법도 새롭게 익혀야 했다. 이제 겨우 두 달 남짓 일했지만, 그녀의 손놀림은 민첩하다. 그 덕에 많게는 하루에 네댓 분의 노인을 돌보고, 좀 고된 날에는 노인 수발드는 꿈까지 꾼다.

 노인 수발을 들기 전에 그녀는 논산의 한 내과에서 일했다. “노인 수발 시범 사업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주저 없이 자원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내친김에 한 사이버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했다. 그 분야를 더 익혀 내실 있고 역량 있는 봉사를 하고 싶어서이다.         

 그러나 답답함도 없지 않다. 노인 질환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예컨대 욕창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한 가지 방식으로만 치료하는 식이다.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노인 질환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간호사 경력 2년’ 자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오씨는 노인수발보험 시범 사업을 벌이는 다른 지역(현재 부여 외 7개 시군에서 시행 중이다) 간호사들과의 교류도 바라고 있다. 간호사들이 모여 토론하다 보면 각 지역의 장점을 배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부여보건소에는 간호사 열네 명이 네 대의 순회 진료 차량을 이용해 노인 수발을 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발 필요 노인 중 자식이나 병원의 수발을 받고 있는 비율은 37%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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