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 내리는 날에 더 찬란한 ‘그곳’
  • 최 완(여행 작가) ()
  • 승인 2006.11.18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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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쌍봉사, 소복소복 눈 쌓이면 신비감 더해 덕유산·소래포구, 사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 연출

 

 
겨울이 찾아든 모양이다. 첫눈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괜히 들뜬다. 순백의 풍경 속으로 걸어가 보고 싶다. 눈이 내리면 더욱 아름다워지는 그곳으로 안내한다.

천불 천탑의 미스터리-운주사·쌍봉사

 지난해 12월 초였다. 운주사 무영탑이 그리워 화순으로 내려갔다. 운주사에 도착했을 때는 저물 무렵,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스산한 풍경에 괜히 마음까지 추워져 여관으로 들어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새벽 운주사에 다시 들렀다. 그런데 고맙게도 하늘이 여행자의 불평을 들으셨는지, 함박눈을 펑펑 뿌려주셨다. 새벽 산사는 고요했고 기와에, 불탑에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눈 내리는 날을 골라 운주사에 가시라. 눈발 속에 서서 하얗게 머리에 눈을 이고 있는 ‘못난이’ 부처들의 얼굴을 보시라. 희미한 눈매, 삐뚤어진 코, 위엄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은 부처들. 영락없이 정겨운 우리네 얼굴이다. 뭐가 그리 고단한지 바위에 비스듬히 등을 기댄 부처도 있다.

이 부처 앞에 서고 저 부처 앞에 서서 지그시 눈을 맞추다 보면 마음 한 켠에 따스한 모닥불이 지펴진다. 어디 불상뿐이랴. 이건 호떡 탑이고 저건 항아리 탑이고 요건 걸레 탑이고…. 삐죽삐죽 서 있는 탑들의 이름도 정겹다. 탑에는 ‘××’ ‘○○’ 등의 문양도 새겨져 있다.

 운주사는 참 신비한 절이다. 언제, 어떻게, 누가, 왜 이런 모양의 불상과 석탑을 만들었는지 베일에 싸여 있다. 고려 시대에 몽골의 침략을 막고 국운을 세우기 위해서 지었다는 설, 신라의 고승인 운주 화상이 신령스러운 거북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는 설, 설화에 등장하는 마고 할미가 만들었다는 설 등 다양한 이야기가 떠돈다. 최근에는 해상왕 장보고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조선 중종 25년에 증보된 <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가 1천 기의 불상과 석탑을 가졌던 ‘천불 천탑 사찰’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지금은 12기의 석탑과 70여 기의 석불만 남았다. 절 뒤쪽 공사 바위에 오르면 운주사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천불 천탑을 만들 때 공사를 총감독하던 곳이었다고 전해온다.

 운주사의 신비로움은 문인들에게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작고한 임영조 시인은 ‘운주사 와불’이라는 작품에서 석공과 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황석영은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운주사를 새 세상을 꿈꾸며 천불 천탑을 세우는 ‘해방의 공간’으로 묘사했다. 고은·조태일·황지우·이원규 등 많은 문인이 운주사와 관련한 작품을 남겼다. 2001년에는 프랑스 소설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20년 전에 방문했던 운주사에서의 감동을 잊지 못해 시를 써서 한국에 보내오기도 했다.

여염집인지 절집인지 구분 어려운 쌍봉사

 끝내 못 일어설 부처들은 절 한 켠 숲속에 있다. 길이가 12m인 ‘남편 불’과 10m인 ‘아내 불’이 솔숲에 사이 좋게 등을 대고 누워 있다. 와불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천불 천탑을 세우면 국운이 열릴 것이라 생각한 도선 국사는 천상에서 석공들을 불러 하룻밤 만에 천불 천탑을 쌓기로 했다. 그러나 일에 지친 사동
이 일하기 싫어 일부러 새벽 닭 울음을 내는 바람에 마지막 불상 두 기가 일어나지 못했다.

 와불은 눈을 이불 삼아 덮고 곤히 자고 있다. 장삼을 걸치고 손을 가슴에 가지런히 얹었다. 그리고 웃고 있다. 눈매와 입술 모양이 온화해서 그렇게 보인다. 후대 사람들은 미륵불이 세상에 오는 날 불상이 일어설 것이라고 믿었단다.

 
 운주사 건너편에 쌍봉사가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쌍봉사는 볼품이 없다. 눈이라도 많이 내리는 날은 여염집인지 절집인지도 구분하기 힘들다. 그러나 경내로 들어서면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대웅전·극락전·요사채·해탈문 등, 달랑 네 채의 집이 고작인데도 작지만 아름답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묵직하다.

그중에서 대웅전이 독특하다. 조선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3층 목조탑 양식이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과 함께 한반도에 두 개밖에 없다. 1984년 한 신도의 부주의로 불에 탔는데, 지금 건물은 20년 전에 복원했다.

 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마당에 발자국을 내며 이리저리 걷고 있는데 스님이 말을 걸어온다. “대웅전이 왜 3층인지 알아? 위에서 보면 절터가 배 모양이야. 한가운데에 돛대를 만든 거야. 대웅전이 바로 돛대야.” 스님은 몸이나 녹였다 가라며 요사채에서 차를 내준다. 세상 이야기며 차 이야기며 부처 이야기를 나눈다. 마당에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

가장 매력적인 산줄기-덕유산

 
 덕유산에도 올겨울 첫눈이 내렸다. 상고대도 피었다고 한다. 11월 중순부터 덕유산에는 겨울이 찾아온다. 그리고 밀가루처럼 하얀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 덕유산은 이 세상 그 어느 산보다 아름답다. 덕유산은 2도(경북·전북) 4군(거창·함양·무주·장수 군)에 걸쳐 있는 크고 넓은 산이다.

최고봉인 향적봉(1천6백14m)을 중심으로 대봉(1천3백m), 중봉(1천5백94m), 무룡산(1천4백92m), 삿갓봉(1천4백10m) 등 해발 1천3백m 안팎의 장중한 능선이 남서쪽으로 30여㎞를 달린다. 향적봉에서 무룡산과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에 이르는 주 능선의 길이만 무려 16㎞에 이른다.  겨울이면 공룡 같은 산은 눈에 뒤덮인다. 향적봉 정상에 서면 마치 히말라야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들. 산 너머에는 오직 산이 있을 뿐이다.

 지난해 이맘때 향적봉을 찾았다. 눈을 기다리며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산장 벽에 걸린 온도계의 수은주는 영하 10도를 가리켰다. 산줄기를 쓸어내리는 바람소리가 거셌다. 눈 소식을 기대하며 마음을 졸였다. 해 뜰 무렵 산장 문을 열고 나서자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나 몰래 밤새 눈이 내렸나 보다. 무릎이 잠길 만큼 푸진 눈.

북으로는 황악산·계룡산이, 서쪽으로는 운장산·대둔산이, 남쪽으로는 지리산 반야봉이 버티고 있다. 동쪽으로는 가야산과 금오산이 펼쳐진다. 산과 산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능선을 따라 물결치는 겨울나무들의 행렬뿐이다.

 
능선은 거리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 가까운 능선은 검고 그 뒤의 능선은 감청색이다. 능선은 뒤로 갈수록 옅어져가다 저 뒤에서는 하늘과 색깔이 같아진다. 덕유산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능선은 수많은 사진작가들을 불러들인다. 무주리조트 곤돌라가 생기기 전에는 향적봉대피소의 절반 이상을 사진작가들이 차지했다. 산 사진 애호가들은 덕유산에서 바라보는 전망을 ‘우리 산하의 매력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산줄기’라고 말한다. 향적봉 서북 능선은 설산을 찍기 위한 최적의 장소다.

‘눈꽃 터널’ 사이를 지나가다

 향적봉 대피소를 지나 덕유중봉으로 간다. 철쭉나무 군락에도, 앙상한 주목에도 설화가 피었다. 중봉까지는 30~40분 거리. 방한복과 아이젠, 스패츠 등 기본 장비만 착용한다면 초보자도 쉽게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코스다. 가지마다 두꺼운 눈살을 붙이고 있는 겨울나무들이 찬란하다.

일반인들이 눈길을 헤치며 1천6백m가 넘는 덕유산 정상을 오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등산하기가 버겁다면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곤돌라는 설천봉(1천5백30m)까지 오른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는 쉬엄쉬엄 올라도 20~30분이면  닿을 수 있다. 눈꽃 터널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 사이로 걸어가는 맛이 기가 막히다.

 덕유산 정상의 진수를 맛본 후에는 걸어 내려오면서 등산길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내려오는 길은 백련사와 구천동을 거쳐 삼공리 관광단지로 이어지는 코스를 택하면 편하다.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 때 백련 선사가 숨어 살던 곳. 흰 연꽃이 솟은 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대웅전 왼쪽에 있는 샘의 물맛이 좋다. 향적봉에서 백련사까지는 길이 다소 가파르다. 쉬엄쉬엄 쉬면서 내려오는 것이 좋다. 3시간 정도 걸린다.

노을은 더 예쁘게 빛나고-월미도와 소래포구

 
첫눈이 오는 날,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타보자. 1시간여를 가면 인천에 닿는다. 차이나타운과 월미도, 소래포구를 돌아보는 멋진 당일치기 겨울 여행을 할 수 있다. 지하철은 용산-노량진-영등포-오류-소사-부천-백운-제물포-동인천을 지난다. 간석역을 지나면서 열차는 지상으로 올라온다. 창밖으로 스산한 겨울 풍경이 스친다. 공단과 슬레이트 지붕을 인 다세대주택과 무수한 여관들이 차창을 지나간다. 지붕에 눈이 수북이 쌓인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기차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이 든다.

 인천역에 내리면 패루가 보인다. 패루를 지나면 차이나타운이 시작된다. 먼저 짜장면을 먹어보자.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다. 1905년 문을 연 ‘공화춘’이 원조다. ‘풍미’에서는 담백한 짜장면을 맛볼 수 있다. 짜장면을 먹고 차이나타운을 한 바퀴 돌아본다. 붉은색과 금장으로 치장한 옛 건물이 서 있고 치파오(중국 여성의 전통 복장)를 본떠 만든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이 거리를 걸어다닌다. 그리고 심심찮게 들려오는 중국말…. 영락없는 중국이다.

아이 손을 잡은 아빠 엄마가 각종 중국 전통 차와 술, 기념품을 구경하느라 상점을 기웃거린다. 양산박이라는 곳에 가면 중국차와 가면을 볼 수 있고 중화예원이라는 곳에 가면 중국옷과 신발, 가방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만두빵이나 월병 같은 중국 음식을 파는 복래춘도 가볼 만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 보면 한두 시간은 금방 간다.

눈 내리는 날 망연히 바라보는 바다의 매력

 다음 코스는 월미도다. 월미도의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다. 입구에 조그만 놀이공원이 있고 카페가 늘어서 있다. 연인들이, 가족들이 바닷가를 거닌다. 바람은 차갑지만 즐거운 표정이다. 눈이 내린다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들고 벤치에 앉아 바다를 망연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갈매기들의 끼룩거리는 울음소리, 모델을 앞에 두고 캔버스에 몰두하는 거리의 화가들, 영종도로 떠나는 유람선의 고동 소리도 낭만적이다.

 
월미도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가면 소래에 닿는다. 소래에 도착할 때는 해질 무렵이면 좋겠다. 버스에서 내리면 갯비린내가 훅 하고 끼쳐온다. 해산물 좌판이 죽 펼쳐진다. 그리고 젓갈 시장, 활어회 시장이 이어진다. 새우젓, 멸치젓, 조개젓, 갈치젓, 꼴뚜기젓, 오징어젓 등 젓갈과 새우, 꽃게, 민어, 농어, 광어, 우럭, 고등어, 각종 조개까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시장을 지나면 소래철교가 나온다. 옛날 수인선 협궤 열차가 운행했는데 지금은 사라졌다. 보도로 바뀌었다. 철교 위에 서서 바라보는 노을이 예쁘다. 철교 주변에 포장마차가 많다. 그냥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 곳에 들어간다. 통통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린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이런 겨울 풍경이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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