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유괴 어설픈 코미디
  • 김형석(<스크린> 기자) ()
  • 승인 2006.11.1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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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잔혹한 출근> 감독:김태윤 주연:김수로·이선균·김영민

코미디는 가장 날 선 장르이다. 이 장르가 현실을 비틀며 전하는 페이소스는, 비극의 카타르시스보다 더 ‘찐한’ 감정적 반응을 관객에게 요구한다. 어쩌면 코미디라는 장르는 꽤나 ‘잔혹’하다. 제대로 된 코미디 영화 한 편은 관객의 심금을 사정없이 흔들고 지독한 감정적 소모를 필요로 한다. 채플린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 내내 웃다가 갑자기 찡해지며 결국에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느낌을 갖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여기서 <잔혹한 출근>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단 ‘범죄 코미디’는 흔들린다. 오동철(김수로)은 주식 투자에 실패하고, 직장도 잃고 신용도 잃었다. 집에는 그런 상황을 전하지 않은 상태. 마지막으로 한 방만 터지면, 그 모든 걸 갚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동철을 가장 옥죄는 사람은 고리 사채업자인 주백통(김병옥). 동철은 매달 한 번씩 돌아오는 ‘이자 갚는 날’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동생의 차를 훔치고 동창회 회비를 들고 도망친다.

동철이 이자 갚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은 만호(이선균)다. 같은 처지의, 희망이라곤 없는 그들은 로또나 주식이 아닌, ‘유괴’로 인생 역전을 노린다. 그들의 계획은 부잣집 딸을 유괴해, 소박하게도 딱 5천만원만 받아내는 것. 태희(고은아)라는 ‘날라리’ 여고생을 납치했는데, 일이 제대로 꼬였다. 자신을 ‘진눈깨비 도깨비’라고 밝히는 어느 녀석이 동철의 어린 딸 은동(박유선)을 유괴해버린 것. 유괴범의 딸을 유괴하다니! 유괴범인 주제에 자기 딸이 유괴당했다고 경찰에 알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동철에게 녀석은 3억원을 요구하고, 게다가 우연히 동철이 유괴범임을 알게 된 주백통마저 2억원을 요구하면서, 총액 5억5천만원짜리 유괴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이 영화는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가 접어들기 시작한 ‘개인 파산 시대’에 대한 장르적 우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돈’인데, 그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달렸고 ‘이자’라는 악당을 몰고 다닌다. 많이 가진 자들에게는 우습지만, 한 달치 이자를 갚지 못하면 손가락이 잘릴 수도 있다. 여기서 <잔혹한 출근>은 매우 있을 법한 픽션을 만들어내는데, 이 지점이 이 코미디가 현실과 공명하는 부분이다. 동철과 만호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은 이 시대의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충분히 처할 수 있는 상황이며, 매주 로또 한 장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심정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

개인 파산 시대에 대한 장르적 우화

여기서 그동안 ‘언제나 오버’했던 김수로는 꽤 균형 잡힌 연기를 보여준다. <흡혈형사 나도열>에서 극대화되었던 것처럼 그는 전형적인 ‘육체’의 배우였고, ‘꼭짓점 댄스’에서 보여준 것처럼 과도하게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잔혹한 출근>에서 그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내내 정해진 시간 안에 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유괴당한 딸에게 혹여나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적’이 아니라 ‘현실적’이다.

그러나 김수로의 진정성에 비해 영화는 꽤나 편안한 결말을 선택하며 급작스러운 감동을 유도한다. 동철과 만호에게 유괴되었던 ‘문제아’ 태희는 아버지(오광록)와 눈물의 재회를 하고, 딸을 찾은 동철 또한 눈물을 흘린다. ‘진눈깨비 도깨비’의 유괴 동기 또한 강한 부성애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결말이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않다.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통해 손쉽게 봉합되는 범죄 코미디라는, 쉽지 않은 컨셉트를 껴안기에는 <잔혹한 출근>은 너무 무딘 영화인 걸까? 경제적 고통의 시대에 민중이 겪는 자본주의의 모순이라는 심각한 이슈를 건드리기는 했지만, 그 절박함은 밋밋한 휴머니즘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차라리 동철에게 뭔가 저항하는 모습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짱깨’ 배달원으로 나온 김수로의 출세작이었던 <주유소 습격사건>의, 무정부주의적인 호연지기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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