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카리스마의 ‘감칠맛 화음’
  • 정준호(음악 칼럼니스트) ()
  • 승인 2006.09.2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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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지휘자 대니얼 하딩 내한 공연

 
‘19세’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보통 나이의 청소년이 대학에 입학하는 나이이자, 성인 등급의 컨텐츠를 볼 수 있는 나이이다. 그러나 어떤 젊은이에게는 1개 중대를 지휘해 화려한 용병술을 선보인 뒤 기립 박수를 받은 나이이기도 하다.

다방에 걸려 있는 카라얀의 사진이나 텔레비전 광고에도 종종 등장하는 번스타인의 모습은 ‘지휘는 백발이 성성하고 완고한 표정의 노인이 하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각인해 버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만이 수십 명에서 많게는 백 명이 넘는 오케스트라 단원을 조율해 화음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과연 그럴까?

정작 카라얀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처음 지휘봉을 잡았을 때 그의 나이 겨우 스물한 살이었다.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있는 영국 출신의 사이먼 래틀 역시 열아홉 되던 해에 본머스 심포니의 부지휘자가 되었다.

하딩의 다채로운 모습 담은 베스트 음반 나와

영국의 신예 지휘자 대니얼 하딩이 래틀의 부지휘자로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을 지휘한 것 역시 열아홉 살 때였다. 세월이 흘러 하딩도 어느덧 서른한 살이 되었지만 그의 앳된 얼굴은 10년 전이나 매한가지이다. 아직도 미소년 같은 얼굴이기에 ‘신동(神童)’이라는 이미지를 채 벗지 못했지만, 지휘자로서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립(而立)의 나이인 셈이다.

물론 지휘자는 통솔력이 있어야 하고 곡을 읽는 남다른 식견도 필요하다. 그러나 리더십과 직관을 얻기 위해 나이와 연륜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젊은 카리스마와 참신한 아이디어, 자신의 뜻을 굽힐 줄도 아는 유연한 자세야말로 현대적인 지휘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 할 수 있다. 노벨상은 20대의 업적으로 60대에 받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이런 면에서 현재 하딩이 전세계 유수의 악단을 지휘하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눈여겨볼 만하다.

 
하딩은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10월1일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예술의전당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 그와 함께 오는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라는 단체가 또 재미있다. 하딩의 또 다른 스승이기도 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일찍이 유럽 여러 나라의 청년들을 모아 ‘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교향악단’이라는 단체를 결성한다. 20세기 후반 들어 첨예한 관심을 모았던 말러라는 작곡가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감수성이 스펀지 같은 청소년들과 함께 해보고 싶어 창단한 앙상블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더 이상 청소년이 아닌 성년 단원이 생겼고, 이들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바로 이 성년 단원을 다시 모은 악단이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인 것이다.

젊은 지휘자가 지휘하는 젊은 악단이라고 얕잡아 볼 것이 아니다. 하딩이야 이미 세계 최고의 악단들을 두루 섭렵한 젊은 거장이다. 내로라하는 악단 중에 아직 그를 지휘대에 세우지 못한 곳은 그들의 섭외력을 의심해 봐야할 정도이다.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또한 엑상 프로방스, 페라라, 루체른 페스티벌과 같은 정상의 무대가 이들을 상주하는 악단으로 위촉했다.

지휘 천재가 손끝에서 빚어내는 감칠맛 나는 화음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좋은 무대이다. 공연 관람이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음반으로 그의 다채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EMI가 내한 공연에 맞춰 하딩의 베스트 음반을 내놓았다. 젊은 감각을 귀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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