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과외 교사들, 여의도 누빈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09.1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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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현장 전문가들, 국정감사 앞두고 맹활약…족집게 강사는 ‘겹치기 출연’

 
국정감사를 앞둔 요즘 이강래 의원 보좌진은 분주해졌다. 이의원의 과외 교사를 구하기 위해서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위원장인 이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도 속해 있다. 예결위 업무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의원이 환노위 활동에도 의욕을 보이고 있어 보좌진이 분주해졌다.

이의원의 벼락치기 과외 교사로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정희성 연구원이 발탁되었다. 환노위 소속 다른 의원실 보좌진에게 문의한 결과, 모두 정연구원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노동 문제와 관련해서는 김동원 고려대 교수나 최영기 노동연구원장 등에게 도움을 받기로 했다.

성공적인 의정 활동에 전문가 도움이 절대적

의정 활동과 관련해 이의원은 전문가의 도움에 비중을 두는 편이다. 건설교통위원회에서 활동할 때는 임삼진 한양대 교수로부터 교통 대책 자문을 받았다. 열린우리당 부동산대책기획단장을 맡았던 그는 지난 3·30 부동산 대책을 마련하면서 박헌주 주택도시연구원 원장, 김남근 참여연대 변호사, 서승탁 서울시립대 교수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국정감사가 다가오면서 상임위별로 정평이 나있는 ‘족집게 강사’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지고 있다. 여기저기 의원들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어서이다. 교육위원회는 안선회 교육과시민사회 공동대표와 엄기형 교원대 교수가 과외 교사로 인기가 좋은 편이다. 문화관광위원회에서는 양기완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이 문화다양성 협약 등에 대한 정책 조언을 해주고 있다.

당의 이념과 성향에 따라 과외 교사들의 영업 구역도 나뉜다. 재벌 개혁을 주장하는 참여연대 김상조 교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점을 지적하는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은 민주노동당에서 주로 정책 사사를 하고 있다. 반면 ‘비전2030’에 부정적인 옥동석 인천대 교수나 한·미 FTA를 찬성하는 이홍식 대외경제연구소 박사에게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훈수를 청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인기 과외 교사는 이언오 국가정보원(국정원) CIO(최고정보책임자;Chief Intelligence Officer)였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시절 그는 경제 현안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 현안에 사통팔달해서 ‘밤의 국정상황실장’으로 불렸다. ‘열린우리당의 히딩크’였던 그가 지난해 8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국정원으로 자리를 옮긴 후 더 이상 과외 교습이 불가능해지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무척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다.

중진 의원들은 '사설 싱크탱크' 구축

중진 의원이나 대선 주자급 정치인은 단순한 과외 교사를 넘어 ‘사설 싱크탱크’를 구축하기도 한다. ‘사설 싱크탱크’의 위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는 바로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의 ‘뉴딜’이다. 김의장의 외곽 조직인 경제사회포럼 소속인 오해진 LG인력개발원 고문과 오용석 개방과통합정책연구소장,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등이 뉴딜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김태동 교수는 김의장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자여서 변교수의 ‘학현학파’가 뉴딜의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초선 의원들도 나름으로 ‘사설 싱크탱크’를 구축해 상임위 활동에 도움을 받고 있다. 민주당 손봉숙 의원은 광고 전문가로 구성된 ‘일파만파’라는 자문위원단을 두고 있다. 서범석·양종웅 교수 등 광고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손의원은 광고 정책과 관련해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일파만파’는 손의원이 옥외 간판 문제 등 광고와 관련해 다양한 문제 제기와 정책 제안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열린우리당 노웅래 의원은 경제 자문팀과 문화관광 자문팀 두 개의 자문팀을 두고 40여 명의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듣고 있다. 경제 자문팀은 박찬희 숙명여대 교수와 박 진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등 주로 노의원의 지인들로, 문화관광 자문팀은 해당 분야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노의원은 “의정 활동에 자문단 조언이 매우 유익하다. 김형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에게서 ‘기초 문학’의 개념을 배웠고, 서진수 교수로부터 미술 경매시장 활성화 정책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개별 의원이 아닌 의원 모임 차원에서 싱크탱크를 꾸리고 함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열린우리당의 의정연구센터와 한나라당의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이 대표적이다. 모임 차원에서 정책 자료집 발간이나 공청회 개최를 함께 하는 것이다. 매주 수요일 스터디를 하고 있는 수요모임은 지난 9월13일에도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한 전문가를 불러와 간담회를 가졌다.

과외비는 밥 한끼, 정부 프로젝트 수주에 도움돼

전문가들이 의원 과외 교사로 나서도 사실 과외비는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밥 한 끼 대접받는 정도다. 그러나 공식적인 세미나나 공청회로 확장되면 거마비를 받을 수 있다. 의원에게 연구 용역을 받게 되면 소정의 용역비도 챙길 수 있다. 의원 1인당 의정 연구비가 3천2백만원 정도로 책정되어 있어서 ‘국회의원 자문 시장’의 규모는 1백억원 정도 된다. 전문가들이 의원 자문에 나서는 결정적 이유는 이후에 정부기관에서 발주하는 큰 프로젝트를 유치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선호하는 전문가는 분석적 시각과 함께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이들이다. 의원들이 자문위원으로 배제하는 전문가도 있다. 바로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폴리페서(Politician+Professor)’와 방송에서 얄팍한 지식을 파는 ‘미디어페서(Media+Professor)’이다. 유명세는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비판적 시각과 분석적 시각이 떨어져 실제 국정감사나 상임위 활동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교수 등 해당 분야 전문가와 함께 국회의원 과외 교사로 인기가 있는 사람들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다. 특히 시민단체 활동가는 정책 비판 능력과 대안 제시 능력이 탁월하다. ‘바다이야기’와 같은 사행성 게임과 관련해 의원들이 초기부터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도박규제네트워크’의 도움 때문이었다. 이후 ‘사행 산업을 걱정하는 의원 모임’이 구성되어 정부의 무분별한 게임 정책에 호루라기를 불었다.

의원들이 시민단체의 도움을 얻으면 비슷한 이념을 가진 곳으로 자연스럽게 짝짓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 한나라당 보좌관은 “전화를 돌리다 보면 결국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나 바른사회시민연합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민주노동당이 참여연대 도움을 주로 받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 열린우리당 보좌진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연락한다. 우리는 교원 평가를 받아들이는 ‘좋은 교사 운동’이나 학부모 단체로 구성된 교원평가연대에 연락한다”라고 말했다.

예산감시 전문 시민단체 활동가가 최고 족집게 강사

요즘 국회에서는 시민단체 출신의 최고 족집게 강사가 나타나 화제다. 바로 예산감시시민행동에서 ‘밑 빠진 독상’을 담당했던 정창수씨다. ‘밑 빠진 독상’은 예산 낭비가 가장 심한 정부 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공 사업에 주는 상이었다. 이 상의 집행을 맡고 재무행정 박사 과정을 수료한 정씨는 정부의 예산 낭비를 집어내는 데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과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그에게 개인 교습을 받고 있는데, 얼마 전 원의원이 증세·감세 논쟁의 허구성을 재정 운영효율성 강화를 통한 예산 절감으로 증명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당을 넘나들며 예산 관련 조언을 하는 그의 원칙은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 없는 정책은 없겠지만 정책이 정치에 종속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정책의 ‘탈정치화’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국악 평론가 김문성씨나 포털 사이트 피해자 구제 운동을 하고 있는 변희재씨 등 숨은 고수들도 국정감사를 앞둔 의원의 개인 교사로 인기가 좋다. 재야의 국악 평론가로 활동하며 제도권에서 밀려난 국악인들을 재조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김씨는 국악계 비리에 정통하다. 대자보·서프라이즈·브레이크뉴스 등 다수의 인터넷 매체 창간 멤버로 활약했던 변씨는 포털 정책을 비롯해 각종 인터넷 정책에 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굳이 외부 전문가가 아니라 베테랑 보좌관을 개인 교사로 삼는 의원도 있다. 산업자원위원회(산자위) 소속인 열린우리당 최철국 의원은 임재동 보좌관으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구하고 있다. 산자위에서만 11년 동안 보좌진으로 활동한 임보좌관은 웬만한 교수나 정부 당국자를 압도할 만한 식견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환경부장관 출신으로 국방위원회 소속인 열린우리당 김명자 의원은 환경 전문가에서 국방 전문가로 체질 전환하는 데 신진안 보좌관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국민이 최고의 과외 교사!

지역구 주민들을 개인 교사로 모시는 의원도 있다. 농림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소속인 한나라당 김명주 의원이 그렇다. 김의원은 “농해수위는 조금 특별한 상임위다. 학자들에게는 들을 만한 이야기가 별로 없다. 현장의 농민과 어민이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의원은 이렇게 현장에서 거둬들인 문제점을 바탕으로 정우근 해양대학 학장을 찾아 정책 조언을 듣고 의정 활동에 반영한다.

의원들 중에서는 개인 교습이 아닌 학원 수강을 선호하는 의원들도 있다.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의원은 주요 현안과 관련된 토론회나 공청회를 자주 찾아가는 편이다. 균형된 시각을 갖추기 위해서는 상반된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보수 이미지 탈색에 열심인 정형근 의원 역시 보건복지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 각종 세미나에 참석해 ‘열공’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대다수 의원이 개인 교사 밝히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한 의원은 “자문위원이 누구인지는 영업 기밀에 해당한다. 누구의 도움을 받는가가 국감 성적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자문위원을 보호하기 위해서 숨기기도 한다. 한 한나라당 보좌관은 “야당의 특수한 사정인지 모르지만, 기자들이 취재원 보호를 위해 노출 안 시키듯이 우리도 그렇다”라고 설명했다.

‘공부하는 국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17대 국회는 16대 국회에 비해 양적인 성장을 거두었다. 16대 국회 2년차인 2001년과 17대 국회 2년차인 2005년을 비교해보면 정책연구보고서는 52건에서 94건으로, 법안 발의는 72건에서 4백27건으로, 세미나 및 공청회는 1백53회에서 3백20회로, 간담회는 2백45회에서 5백69회로, 조사 활동은 1백4회에서 1백17회로 늘었다.

올해 국정감사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많은 의원과 보좌진이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하고 있다. 와중에 벼락치기로 교묘히 요령을 부리는 의원들도 있다. 국감 모니터 단체를 활용하는 것이다. 한 고참 보좌관은 “‘우수 국감 의원’에 선정되는 비결은 간단하다. 줄곧 자리를 지키면서 국감 모니터 단체들이 평소 주장하는 내용들을 살짝 국정감사 질의에 포함하면 된다. 그리고 모니터 단체에 포함된 시민단체 민원을 조금 들어주면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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