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 문제가 아니라 효율과 비용의 문제다
  • 정옥임(선문대 국제학부 교수) ()
  • 승인 2006.09.1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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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군사적 위협 소멸된 뒤 전작권 환수해야

 

국내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환수’를 그들이 천명한 대로 추진하려 할 것이다. ‘군사 주권’의 회복을 강조하며 문제를 공론화한 배경에 정치적 포석이 있었다는 방증(傍證)에 더해, 이 시점에서 물러서는 것 자체가 곧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수용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사이에 일련의 함수 관계가 있는지이다.

한국과 미국 간에 북한 핵 및 미사일 해법,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알력은 차치하고라도, 동맹 유지와 관련한 제반 문제들-주한 미군기지 이전과 분담금, 직도 사격장 문제 등-로 균열이 감지되는 상황에서, 유독 전시작전통제권에 관해서는 2009년 또는 2012년이라는 시점의 차이만 있을 뿐, 코드가 전혀 다른 노무현 정부와 부시 행정부가 의견 일치를 보이기 때문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군사주권의 회복’으로 보는 노무현 정부와 ‘전시작전통제권 이양=한미 동맹의 강화’로 보는 부시 행정부가 ‘환수’ 또는 ‘이양’에 한목소리를 낸다는 사실 자체가 한·미 동맹의 역설이다. 이것이 동맹의 미래 지향적 발전을 위한 성장통인지 아니면 이른바 우호적 이혼의 수순인지 가늠할 수는 없으나, 만약 이 문제를 한국의 차기 정부에서 재협상해 원점으로 돌려 미국의 전시 개입 보장과 동맹의 진정성 회복을 시도할 경우, 어떤 형태이든 상당한 비용 지불이 불가피함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사실 미국의 처지에서 보면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으로 자연스럽게 한국에 투입되는 방위 비용과 부담이 줄고, 무기 수출의 판로가 확대되는 이점이 있다. 반미 감정도 해소될 것이고, 특히 21세기 미국이 공세적으로 추진하는 전략적 유연성은 동맹의 이완과 비례해 커질 수 있다. 한국이 원하고, 미국에 결코 손해가 안 되는 한·미 동맹의 이완을 미국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군이 작전통제권을 이양받을 수 있는 역량을 배양하도록 한국 정부가 투자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워싱턴의 고위 정책 결정자들과 실무진 그리고 한·미 연합사 관련 인사들 사이에 전시작전통제권을 둘러싼 미묘한 온도 차도 감지된다. 워싱턴 쪽에서는 한국의 경제적 능력에 걸맞은 군사적 투자에 기대감을 적극 피력하는 반면, 한·미 연합사 사령관은 한국 정부의 전략적 전쟁 목표 및 한국 정부가 희망하는 전쟁의 최종 상태가 무엇인가, 한국군의 독자적 전시작전통제권 행사가 전시 미군 증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지휘 관계 변화가 유엔사 역할과 정전협정에 어떤 역할을 미치는가에 대한 한국측의 답변이 선결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 내에서는 전시작전통제권의 군사적 기능과 효율성 검토 및 실질적 이양의 문제점과 대응에 관한 실용주의적 논의가 실종된 채, 동맹 균열 대 자주론의 기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국익보다 정치가 우선시하는 한국 안보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10월 SCM에서 전작권 이양 시기 결정 말라

냉철한 시각에서 볼 때, 전시작전통제권은 주권의 문제가 아닌, 군사적 효율과 비용의 문제이다. 이것은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강력한 억제 기제로서 한·미 연합사 사령관이 전시에 양국 합참의장의 건의와 대통령 승인을 거쳐 위임받게 된다. 전시에 1천3백조원 규모에 달하는 증원 병력과 첨단 무기 체제의 동원을 보장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역설적이나, 밀착된 한·미 연합체계 속에서 미국의 대북 일방적 행동을 제어하는 역할도 했다.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는 곧 정보 감시 체계, 전술 통제 및 정밀 타격 체계의 강화를 위한 국방 예산의 증가, 미국산 첨단 무기 구입의 확대, 나아가 미국에 대한 의존 심화로 귀결된다.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주장하며 미국으로부터 이유(離乳)를 추진하는 인사들이 오히려 미국의 전시 개입 공약에 강력한 신뢰를 표출한다는 점이다. 국제 정치는 신뢰보다 실리가 우선하는 무정부 상태의 정글이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변화될 때 그 규모에도 변화가 있으리라는 암시는 이미 미군 태평양사령관의 언급으로부터 나왔다. 반미와 자주를 주창하는 인사들이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지원에 순진한 기대감을 피력하는데 비해, 동맹론자들은 오히려 유사시 미국의 방어 공약을 보장받기 위해 제도적 뒷받침이 불가결하다고 역설한다.

 

환수론자들은 남북한 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매우 중요하다는 주장도 개진한다. 그런데 단순히 합의문에 서명한다고 평화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엄연히 주둔하는 상황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받는다고 하여, 북한이 남북 평화 체제 논의에 호응하리라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오산이다. 더욱이 북한이 요구해온 평화 체제는 남북한 간의 평화 체제가 아닌 북․미 간 평화 체제였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평화 체제 구축을 명분으로, 핵 문제 등 심각한 현안을 해결하지도 못한 채, 무리하게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불필요한 오해가 생겨나고 있다. 한편 북한의 상황이 급변할 때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데 한·미 연합사 체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걱정도 환수론의 주요 근거가 된다. 예컨대 미국이 북한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대량살상무기(WMD) 색출 등을 이유로 무력을 쓰게 되면 자칫 불필요한 긴장 증폭은 물론이고 한반도 문제의 한국화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문제 제기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북한의 급변 사태시 우리의 행동 반경을 제약하며 압박을 가해올 나라는 중국이다. 명목상 북한과의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이 어떤 식으로든 관여할 것은 분명한데, 과연 우리 스스로만의 힘으로 중국의 간섭을 차단할 복안은 있는지 반문할 일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첨예하게 갈린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가장 원만하게 풀 수 있는 해법은 다음과 같다. ‘한·미간 전시 작전통제권의 이양 원칙은 천명하되, 미래 어느 시점에서 우리의 단독 행사 능력이 확보될 때 -즉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실질적으로 소멸되고 실질적 평화가 도래할 때-전시작전통제권을 이양받는다. 특히 이번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이양 시기를 못박지 않는다. 단, 정기적으로 (3년 또는 5년을 주기로) 한국의 작전 통제 능력에 대해 한·미 간 심도 깊은 논의와 협조를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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