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질책하는 대통령
  • 도종환(시인) ()
  • 승인 2006.09.01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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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명석하다. 아는 것이 많고 수치와 통계치에 밝아 구체적인 근거를 대면서 사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능력을 가졌다. 그런 장점은 이번 KBS 특별회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문제에 대해 그것이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계획되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 평시작전권을 환수할 때 자주 국가니 국민적 자존심이니 하면서 전작권 환수도 2000년 안에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을 국민들에게 상기시키면서 당시 언론이 다들 이에 동조하는 논조의 사설과 칼럼을 썼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노대통령 말처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군의 사기와 생명에 직결되는 것이며 자주 국가의 당연한 권리이다. 50년 넘게 미국에 넘겨주고 있다가 다시 찾아오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전직 국방부장관이나 노쇠한 별들이 모여 반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창피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번 특별회견을 지켜보면서 대통령의 어조는 아직도 설명하고 질책하는 방식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임 초기보다 많이 여유 있는 자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옳다고 믿는 것을 계몽하고 납득시키기 위한 생각이 아직도 강하게 배어나온다. 이회창 후보가 아니라 노대통령을 선택한 국민 중에는 엘리트 코스만을 걸어온 사람보다 민주화 운동하느라 고생도 하고 산전수전 겪으며 살아온 사람이 보통 사람들의 심정을 더 잘 알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서민들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보통 사람들과 같이 편하게 앉아 술 한잔 할 수 있고, 정의로운 사람들과 뜻을 같이하며 말이 통하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설명을 많이 듣고 있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고, 만나기는 점점 힘들어지며, 참여할 자리가 보이지 않는 참여정부로 서서히 바뀌어가는 것을 한발 뒤로 물러나 앉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 이제 경제와 민생은 별개로 보아야 한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과 국정 책임자들은 물론 경제가 정상적인 상태로 잘 돌아가도록 운영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경제는 정상인데 민생이 어려울 수도 있다거나, 양극화는 세계화 시대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말하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비정규직 차별금지법’이 국회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참여할 자리가 보이지 않는 참여정부

 최장집 교수의 지적대로 민주화 운동의 힘으로 집권한 정부가 “민주주의 가치에 상응하는 새로운 대안적 발전 모델의 모색을 통해 재벌 중심의 권위주의 성장 모델을 대체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산업 정책, 생산 구조의 개혁, 노동 정책, 사회 정책을 발전시키기 위한 고민”은 적고 “과거 권위주의 시절 앞뒤 돌아보지 않고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추구했던 것과 같이, 앞뒤 돌아보지 않고 시장 중심의 성장 정책으로 몰고” 가고 있는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걱정이 점점 더 커지게 하고 있다. 정서적으로는 진보적인 정부가 경제 운영에 있어서는 지극히 보수적인 태도인 신자유주의로 급격하게 전환하면서 노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성장은 있으되, 고용은 양적ㆍ질적으로 나빠지고, 빈부 격차는 증가하며, 중산층은 양분화되고, 시장에서의 승자와 패자, 인사이더와 이웃사이더의 차이는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화, 신용 불량자의 양산, 빈곤의 사회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개방과 경쟁만을 강조하고 경쟁해야 일류가 된다고 말하며, 자유무역협정(FTA)했을 때의 실익이 무엇인가를 묻지 말고 안 했을 때 어떻게 되는가를 먼저 생각하라고 하면서, 반대만 하는 사람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꾸짖고 있었다. 노동계와 민중 운동 진영을 향한 질책이 특히 강했다. 그들이야말로 살기가 가장 어려운 처지에 내몰린 사람들인데 그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고 이해를 구하고 협조를 요청하며 대통령이 앞장서서 그들의 편에 서서 법과 제도를 고쳐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서민을 대변해주리라 믿었던 대통령이 서민의 자리로 내려와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하며 눈물을 닦아주는 해원과 포용의 리더십은 보이지 않고, 설명하고 질책하는 리더십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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