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하는 토끼’와 무슨 일이?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6.07.3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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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드라마 작가 이진씨

 
드라마 작가 이진씨(44)는 대학 1학년 때 이미 유명 인사였다. 그의 부친은 지난 1970,1980년대에 ‘한국의 밀턴’ ‘사형수 출신 작가’ 등으로 이름을 떨친 소설가 이정환 씨. 6·25 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모친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잠시 고향을 다녀온다는 게 탈영병으로 몰려 사형수에서 무기징역으로, 7년 반의 옥고 끝에 무죄 방면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이력의 소유자가 이진씨의 부친이다. 오랜 감옥 생활 탓이었던지 그의 부친은 말년에 당뇨성 망막증으로 실명했고, 양쪽 콩팥마저 녹아버렸다. 당시 대학 1년생이던 그녀는 부친에게 콩팥을 떼어주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고, 언론에 ‘효녀 심청’으로 널리 소개되었다.

‘고통의 세월은 어디로 흐르는가’는 그때의 일을 소재로 1999년 <신동아> 1월호 공모에 투고해 당선된 그녀의 논픽션 제목.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그녀의 ‘고통’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부친이 타개한 뒤 ‘삼총사’처럼 의지하며 지내던 모친과 여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로인한 정신적 충격과 신병, 지난 6년간은 그야말로 ‘고통의 세월’이었다.

그녀가 최근 출간한 <잘했어, 흰털>(당그래)은 그 고통의 시절,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던 그녀를 다시 세상 밖으로 인도한 흰털이라는 토끼에 대한 이야기다. 국정홍보처에서 발간하는 <국정브리핑>에 2년 전부터 매회 원고지 20장씩 연재하던 중, 입 소문을 타고 출간 제의를 받게 되었고, 최근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선친으로부터 이어받은 천부적인 문재에다가 실존의 나락에서 만난 ‘말 못하는 짐승’과의 만남과 이별에 얽힌 온갖 에피소드가 요즘 보기 드문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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