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 넘어 대권까지 노린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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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미래모임, 대표 최고위원 경선 ‘단일 후보’ 뽑고 세 확장 나서

 
“대의원 여론조사 결과, 우리가 45% 대 30% 정도로 앞서고 있다.” 7월11일 한나라당 전당대회 대표 최고위원 경선에 나선 이재오 원내대표 측과 강재섭 전 원내대표측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전당대회 판세다. 둘 다 자신들이 여유 있게 앞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검증된 45%를 확보한 후보는 따로 있다. 바로 미래모임 단일 후보로 선출된 권영세 의원이다. 미래모임에 참여한 최종 인원(의원 및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은 1백14명으로 전체 2백43개 지역구의 45%를 넘는다. 산술적으로 보았을 때, 미래모임 단일 후보는 ‘제3후보’로 강력한 당권주자 후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원,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1백14명 모이면서 거대 세력으로 성장

1백14명의 힘은 컸다. 미래모임이 무시하지 못할 세력으로 커지자 전당대회 직후 있을 원내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김무성 김형오 안택수 의원이 미래모임의 토론장과 투표장에 나타나 확실히 눈도장을 찍고 갔다. 미래모임을 초기부터 주도한 한 의원은 “의외의 인물이 많이 참여했다. 어떻게 해서 참여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답이 간단했다. 이 줄이 가장 길어 보였다는 것이다”라고 당 분위기를 전했다.

미래모임이 급성장한 것에 대해 당 관계자들은 시기가 절묘했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등 이른바 한나라당 대선 ‘빅 3’ 후보가 현직으로부터 멀어지는 시기이고 후임 당대표가 결정되기까지 힘의 공백을 효과적으로 공략했다는 것이다. ‘양다리 정치’를 용인하는 한나라당 분위기도 미래모임이 안착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계파가 분명한 열린우리당과 달리 한두 개 모임에 겹치기 출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한나라당 문화는 의원들이 미래모임에 보험 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 이런 느슨한 당 분위기가 미래모임이 단기간에 급성장한 비결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미래모임이 커온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단 출발 시점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은 당 체질개선론을 강하게 제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표가 습격을 당하면서 모든 관심이 박대표에게 쏠리고 5 31 지방선거가 한나라당 압승으로 끝나면서 쇄신론은 설 자리를 잃었다. 

지방선거 압승하면서 '당 쇄신론' 설자리 잃어

수요모임이라는 ‘최소공배수 정치’에서 미래모임이라는 ‘최대공약수 정치’로 진화하기 위한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 함께 하지 않으면 모두가 왜소해진다는 공감대를 통해 소장-중도-초선 의원을 뭉치게 만들었지만 거대한 ‘회의론의 벽’이 이들을 가로막았다. 미래모임의 책임간사를 맡고 있는 박형준 의원은 “기자들도, 의원들도 모두가 회의적이었다. 단일 후보를 낼 수 있겠나? 떨어진 후보들이 도와주겠나? 등 몇 겹의 회의론에 둘러싸여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음모론도 미래모임의 단결을 가로막았다. ‘수요모임이 주도한 미래모임이 다른 모임을 수요모임의 들러리로 세우려는 것 아니냐?’하는 것이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수요모임 의원들은 몸을 납작 엎드렸다. 집합적 결정을 내리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요일에 갖는 정례 모임도 갖지 않았다. 

‘자기희생이 없다’는 수요모임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 남경필 의원은 자신에게 불리한 선출 방식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일반인 여론조사 대신 당원 여론조사를 수용한 것(전당대회 본선은 일반인 여론조사로 진행된다), 결선투표를 거치는 것, 1인3표제 가중투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모두 남의원에게 불리한 것이었지만 그는 기꺼이 이런 ‘핸디캡 투표’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무리 납작 엎드려도 반발자는 있기 마련이다. 공공연하게 대표 최고위원 경선을 준비하던 심재철 의원과 진영 의원이 모임을 빠져나가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두 의원은 각각 국가발전전략연구회 대표와 초지일관 대표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외관상 미래모임에 참여한 네 모임 중에서 수요모임과 푸른모임만 남고 발전연과 초지일관이 떨어져나간 것으로 보였다. 뒤이어 고경화·윤건영 의원 등이 빠져나가기는 했지만 다행히 큰 이탈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고질적인 구태정치 재현되면서 다시 입지 생겨

답보 상태였던 미래모임에 실마리를 제공해준 것은 한나라당의 고질병인 구태정치였다. 최병렬·홍사덕·강삼재 전 의원의 정계 복귀 시도와 공천헌금 문제로 물러나 있던 김덕룡 의원의 역할 재개 움직임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자극한 미래모임이 설 자리가 생겼다.

 
미래모임을 뒤에서 비난하던 의원들도 안테나를 세우고 모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조금씩 미래모임의 세가 읽히자 슬슬 ‘미래호’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미래모임의 한 의원은 “수직적 위계에 익숙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수평적 협의체의 맛을 보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 관계자들은 미래모임에 속한 1백14명 중에는 허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전당대회가 끝나면 거품이 걷힌다는 것이다(00쪽 상자기사 참조). 원희룡 의원은 “숫자보다 결속력이 더 중요하다. 거품이 걷히더라도 앞으로 50명 선은 유지할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만만치 않은 세력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박형준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명분’이 ‘세력’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인물보다 판을 봐야. 한나라당 중추세력으로 성장할 것"

그러나 미래모임의 중심 의원들은 이번 후보 단일화 과정과 관련해 인물도 인물이지만 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을 움직이는 중추 세력으로서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는 것이다. 원희룡 의원은 “발전연과는 당 혁신안을 뒤집으려는 시도를 막는 것에서부터 연대가 시작되었고 계속 많은 부분 교감이 있었다. 미니 전당대회 아이디어는 이미 1~2월에 나왔다. 이런 것들이 현실화 하면서 이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박형준 의원 역시 “미래모임이 하려는 정치는 세력을 이루는 정치가 아니라 길목을 지키는 정치다. 갈수록 미래모임의 힘은 커질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판을 벌일 때마다 한나라당의 양대 대선후보들과 끊임없이 ‘내전’을 치른다는 점이다. 이들은 벌써 세 번째 대선후보들과 각축해왔다. 첫 번째는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벌어졌다. 이들이 영입한 오세훈 후보는 각각 박근혜·이명박을 등에 업고 각축하던 맹형규·홍준표 후보의 경선구도를 단숨에 무너뜨린 후 승리를 거머쥐었다.

벌써 세 차례 양대 대선후보와 세력 싸움

두 번째는 오세훈 후보 캠프 내부에서 벌어졌다. 캠프 내 주도권을 놓고 맹 전 의원 측근과 이명박 전 시장측 인물들이 소장파 세력과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 것이다. 소장파는 공동 선대위원장에 윤여준 전 의원을 옹립하는 과정에서부터 양 진영과 대립했다. 이 각축전은 결국 오시장이 노들섬 예술센터 건립을 재고하는 등 이시장과 다른 길을 가고, 최열 환경재단 대표를 인수위원장에 임명하는 등 개혁 노선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리되었다.

세 번째는 이번 전당대회다. 양대 후보 간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던 7 11 전당대회에서도 미래모임은 제3의 변수로 떠올랐다. 이명박 전 시장과 가까운 이재오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를 업고 있는 강재섭 후보 간 양강 구도에 미니 전대까지 치른 권영세 후보가 변수로 가세한 것이다. 물론 1인2표제라는 특성상 미래모임측이 강재섭-이재오 두 후보 중 한 사람과 연대를 할 수는 있지만, 제3 후보의 출현 자체가 두 대권 주자로서는 ‘까칠’한 일일 수밖에 없다.

 미래모임은 앞으로 ‘매니페스토 정책연대’의 형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보자 토론 과정에서도 정책을 통해 한목소리를 냈다. “사학법 개정 논의와 급식법 문제를 연결하는 것은 맞지 않다”라는 식이다. 박계동 의원은 “미래모임의 목표는 두 가지다. 당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앞으로 사회적 의제에 대해서 분명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원희룡 의원은 “한나라당이 말하는 개혁의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 일단은 구태정치 청산 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는 낮은 단계의 연합이 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미래모임 리더, 중요 대권 후보로 부각될 수도

미래모임이 제시하는 매니페스토 정책연대는 한나라당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소장파의 도움으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과 남경필 의원의 양보를 통해 당내 경선 초반부터 유리한 입지를 굳히고 당선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안상수 인천시장과 함께 발표한 ‘대수도론’은 이런 정책연대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미래모임은 앞으로 당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될 다른 지방자치 단체장들에게도 광역권 매니페스토 연대를 권유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미래모임의 미래 모습에 대해 박계동 의원은 1990년대 초반 미국 민주당의 ‘민주당 지도자 회의, DLC(Democrat Leader’s Conference)’ 모형과 유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시 민주당 소장파 의원 모임인 DLC 리더였던 클린턴은 아칸소 주지사에 불과했지만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었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DLC 모형을 본 뜬 HLC(Hannara Leader’s Conference)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박의원의 주장이다. 박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HLC 의장 역할을 맡는 사람이 유력한 대권후보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한나라당 대권 구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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