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배’ 돌리 는 다단계 업체들
  • 정희상 전문기자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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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다단계·방판 업체 세 곳의 교묘한 판매 수법과 엄청난 피해 실상을 낱낱이 고발한다.

 
국내 최대 다단계 판매업체 제이유그룹이 각종 불법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다단계 업계 전반의 영업 행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2천여 개의 각종 다단계 회사들이 연간 6조원대 시장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데 업계에서는 5백여 만명이 판매사원으로 종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2000년대 들어 크게 확산된 방문 판매 및 다단계 업체의 영업 방식이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큰 폐해는 다단계에 빠져든 수많은 국민이 일부 업체들의 불법적이고 무리한 영업방식에 ‘앵벌이식’ 희생물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용불량과 뒤이은 이혼 및 행방불명, 가정파괴, 존속살인, 자살 등 극단적인 피해 사례도 꼬리를 문다.

물의를 일으키는 곳은 규모가 큰 업체들인데 대개 유사 수신, 사재기 유도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규모 업체일수록 전현직 정치인, 관료, 연예인, 언론인, 교수 등 유명 인사를 활용한 현혹 마케팅 기법을 곧잘 이용한다. 정부와 사회 지도층이 불법 다단계 업체를 비호하거나 관대하게 대한다는 피해자들의 불신이 깊어가는 상황에서 다단계 업체에 대한 유명 인사들의 각별한 주의도 요구된다.

물론 다단계 판매 방식에 현혹당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 에게도 책임은 있다. 아무리 한탕주의와 인생역전을 좇는 세태라지만 불법 다단계의 유혹에 무분별하게 달려들어 피해를 자초한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불법 다단계의 폐해에 대해 엄단 의지를 보인 사람은 서울동부지검 형사부 이종근 검사가 유일했다. 그는 최근 다단계 업체 ‘위베스트’의 불법 행위에 대해 사기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그러나 다른 다단계 업체들은 불법으로 기소되어도 대부분 벌금형과 같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 그쳐 피해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서민 생활 피해사범 엄단 차원에서 다단계 업계 전반의 실태와 폐해를 조사하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는 등 정부의 노력이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될 시점이다.(편집자주)

<위베스트>

5월22일 오전 10시 서울동부지법 1호 법정은 소란스러웠다.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한 것은 변호인단이 피고 안홍헌 위베스트 회장 변론에 나서면서부터다. 변호인은 위베스트 회원 7천2백94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회사에 의한 피해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법정 뒷자리에 서 있던 조남숙씨(52)가 “거짓 변론을 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라고  소리쳤다.

경비원들이 조씨를 붙잡아 법정 밖으로 끌어냈지만 방청객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피해자대표 최필여씨(52)가 두 손으로 엑스(X)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는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이례적으로, 판사는 최씨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며 일으켜 세웠다. 최필여씨는 “변호사는 자칭 피해가 없없다는 위베스트 회원 7천2백94명의 서명용지(설문지)를 증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 서명지는 날조된 것이다. 상급 회원들이 임의로 작성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공판이 끝나자 안홍헌 회장은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벤츠 승용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법정 주변에 남은 회원들은 “얼마나 분노했으면 법정에서 소리를 치겠느냐” “왜 구속 재판을 하지 않느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5월 초 다단계 업체 제이유네트워크 파문으로 나라가 들썩였다. 현재 이 회사 주수도 회장 등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5월 초 다단계 업체 16개사에 대해 실태 조사를 벌여 오는 7월 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제 공은 사법·행정 당국으로 넘어갔다. 여기서 1년 전 제이유와 똑같은 방식으로 피해자를 양산한 위베스트인터내셔널 사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이유를 비롯한 비리 다단계 문제 해결의 전례가 되기 때문이다.

제이유와 사기 수법 같아

위베스트는 지난 2004년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신생 다단계 업체다.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2004년 공식  매출액은 7천1백억원이었다. 위베스트의 성공  비결은 제이유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포인트  마케팅(공유 마케팅)’에 있었다.

“4백40만원(10비즈)을 납입하면 5백40만원을 돌려주고 4천4백만원(100비즈)을 납입하면 7천5백60만원을 돌려준다고 선전했다.” 위베스트 회원이었던 김종억씨(50)의 말이다. 이 약속을 믿고 김씨는 1억2천만원을 납입했는데 결국 6천만원만 돌려받았다. 위베스트 사건 피해자는 1차(2005년 6월까지)가 4백50명에 94억원. 2차(2005년 7월 이후) 피해자가 1백70명에 1백억원에 이른다. 1차 피해자 대표 최필여씨는 “이 피해액은 물건을 반품한 금액을 뺀 순수 피해액이다. 피해자 가운데는 가정이 파탄 난 사람은 부지기수이고 심지어 살인에 이른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위베스트 사건은 여러 모로 제이유와 비슷하다. 제이유에 주수도가 있다면 위베스트에는 안홍헌이 있었다. 김종억씨는 “제이유 관련 뉴스를 보니 어찌나 위베스트와 수법이 비슷한지 놀랐다. 분명히 수당을 약속(확정 금리)해놓고 나중에 모른다고 발뺌하는 것이나, 회원들이 동요할 때 거짓으로 안심시키는 말이 똑같다. 심지어 ‘전산 고장’ 핑계를 대며 수당을 안 주는 것도 쏙 빼닮았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제이유가 서해 유전 개발 탐사 계획을 터뜨려 억지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면, 1년 전 같은 위기 국면에서 위베스트가 내세운 프로젝트는 ‘빛 엑스포’ 행사였다. 

피해자들이 갈팡질팡하는 모습도 비슷하다. 위베스트 피해자 대책위원회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염 아무개씨(35)는 처음에는 안회장을 보호하려고 애썼다. 2005년 3월 서울동부지검이 안회장을 소환해 밤샘 조사를 벌이자 염씨는 동료 회원들과 함께 동부지검 앞에서 석방 촉구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일이 잘 못 돌아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미 들어간 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안회장이 나오면 회사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서 빨리 그가 법정 구속되기를 바란다. 검찰 수사 이후에도 끝없이 후속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위베스트는 검찰 수사로 회사가 위기에 빠진 와중에도 NSR·IBI·SP·SMⅠ·SMⅡ 등 회사 이름을 바꿔가며 무리한 영업을 계속했다.

위베스트 사건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검찰이 엄정하게 수사에 나선 점이다. 지난 3월29일 동부지검 이종근 검사가 안홍헌 회장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하자 법정 내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검사측은 “원금을 초과해 수당  지급을 사업자들과 약속했고 이를 입증할 녹취록과 참고인 진술 등이 충분하다” “사업설명회 등을 통해 피고인이 사업자들에게 확정 수당의 지급과 계열사의 수익사업으로 인해 부족한 수당 부분을 보전해줄 것을 공공연하게 피해자들에게 말해왔다”라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한편 변호인은 “실제로 제품 거래가 있었고 이에 따른 후원수당을 지급했기 때문에 유사수신 혐의는 문제가 없다” “‘위베스트 사업자 7천9백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대다수 사업자들은 계열사의 수익사업을 통해 공유 마케팅의 수당 지급 약속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변론했다.
다단계 업계의 ‘정몽구 재판’에 비견되는 위베스트 사건 1심 선고일은 6월19일이다.

<다이너스티>

다이너스티인터내셔널(이하 다이너스티)은 2천억원대 매출을 자랑하는 다단계 업계에서  국내 5위권에 든다. 다단계 업체다. 이 회사는 아직 피해자들과 법정 공방을 벌인다거나 검찰 조사를 받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회사가 제이유네트워크나 위베스트인터내셔널과 함께 요주의 회사로 지목되는 이유는 ‘포인트 마케팅(공유 마케팅)’ 때문이다. 중견 다단계 업체 가운데 포인트 마케팅 사업을 유지하면서 버티고 있는 곳은 이제 다이너스티 한 곳밖에 남지 않았다.

 
다단계 관련 시민단체인 ‘안티 피라미드 운동본부’에 요즘 피해를 가장 많이 신고하는 사람들은 다이너스티 사업자들이거나 그 가족들이다. “돈은 얼마 없었지만 화목했었는데, 요즘은 가족들이 만나기만 하면 그 일로 큰소리가 오가기 일쑤다”(5월15일). “시어머님과 시이모님이 다이너스티를 하신다. 좋은 걸 몰라서 너희가 그러는 거라고 아주 자신만만해하시면서 1년 안에 원금 찾고 나머지는 이자굴려서 돈을 벌겠다고, 2~3년 안에 몇 억원을 벌겠다는 말씀을 벌써 몇 번째 하시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잠깐 뵙고 오는 길인데... 신랑 몰래 2백~3백만원 달라고 하신다.”(4월28일)

다이너스티 회원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이 시민단체에 신고한 사연이다. 공통적인 것은 회원 사업자들이 물건을 파는 데는 관심이 없고, 마치 대부업을 하듯 돈을 불리는 데만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유사 수신 행위다. 제보자 가운데는 자신이 다이너스티의 계열사인 DK코퍼레이션 회원이라는 글도 많다.

다이너스티인터내셔널은 원래 포인트 마케팅 업체가 아니었으나 2004년 11월 유행을 타고 포인트 마케팅으로 영업 방식을 변경했다. 이때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2004년 12월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다단계 업체 공제조합)에 가입하려 했으나 ‘무리한 보상 플랜’이라며 여러 차례 거절당하다 2005년 6월20일 겨우 가입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다이너스티측은 포인트 마케팅 이론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본사 홍보 담당자는 “만약 마케팅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정부가 허가를 내 주었겠는가. 일부 욕심 있는 사업자들이 회사의 방침을 어기고 2백50% 금리를 확정 약속하는 경우가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절대 확정 금리를 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이너스티측은 “제이유나 위베스트는 운영을 잘못해서 망한 것이다. 우리는 다르다”라고 주장했다.

포인트 마케팅으로 돈 벌 확률 0.015%

2004년 12월13일 열린 한 네트워크 마케팅 세미나에서 이기엽 교수(홍익대·경영학)는 포인트 마케팅 이론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포인트 마케팅을 분석한 결과, 국민 모두가 회원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전체의 0.015%만 약정된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일찍 가입한 일부 회원을 빼면 약정된 배당을 받는 데 너무 오랜기간이 걸린다”라고 비판했다.

시뮬레이션 결과에 대해 다이너스티 관계자는 “그 세미나는 포인트 마케팅 업체와 경쟁하는 다단계 회사들이 주최한 행사였다. 시뮬레이션 구조가 잘못되어 있다. 암웨이 같은 외국계 기업이 음해하려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기엽 교수는 “나는 암웨이에도 똑같이 비판적이다. 어떤 다단계 업체든 이론상 영속성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포인트 마케팅이 다른 마케팅에 비해 더 일찍, 더 많은 피해를 내기 쉽다는 점이다”라고 반박했다. 이 교수는 “다단계 업체들은 회사가 위기에 빠지면 이름을 바꾼 채  새 조직을 만들어 피해자만 남기고 옮겨간다. 정부가 할 일은 이런 ‘말 갈아타기’ 영업을 규제하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화진화장품>
지난 5월29일 국무총리 비서실이 발칵 뒤집혔다. 다단계식 영업 방식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 한 화장품 방문 판매회사에서 한명숙 총리가 등장해 이 회사와 경영진에 찬사를 보내는 내용의 비디오테이프를 신입 판매 사원들에게 틀어주며 4년간 계속 활용해왔다는 점을 처음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비디오는 한총리가 여성부 장관으로 있던 2002년 가을 화진화장품측에서 장관실로 찾아와 회사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화상 축사를 부탁해 제작된 것이었다.

 
 총리 비서실에서는 5월30일 곧바로 이 회사에 연락해 한총리의 얼굴이 들어간 비디오테이프를 모두 회수하고, 한명숙 이름이 거명된 화진화장품 관련 인터넷 홍보 글을 즉각 삭제하도록 조치한 뒤 엄중 경고했다.
사태의 발단은 <시사저널> 취재진이 불법 다단계 판매 방법으로 물의를 일으킨 방판 회사 화진화장품 영업사원 교육용 테이프들을 입수하면서 비롯되었다. 테이프 에는 한총리가 여성부 장관 시절 이 회사 창립기념일에 축하 덕담을 해준 내용을 포함해 황인성 전 총리, 조홍규 관광공사 사장, 윤세영 서울방송 사장 등 각계 저명 인사들이 화상 축사를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제는 4년 전 제작된 이 테이프를 화진화장품측에서 지금까지 방판 사원 유치 교육에 계속 활용해왔다는 점이다. 화진화장품의 한 지점장은 “한총리의 모습은 영업사원 회의와 신입사원 기본 교육 때 오프닝 멘트로 활용했다”라고 전했다. 유명 인사를 활용한 일종의 마케팅 기법으로, 본인도 모르게 이를 활용해 믿을만한 회사라는 점을 한껏 부각한 셈이다.

한명숙 총리 등 유명 인사 적극 ‘활용’

 총리실에서는 <시사저널>의 확인 취재 요청을 받고서야 이 회사가 테이프를 부적절하게 악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황급히 회수 조치를 취했다. 아울러 한총리의 다음과 같은 해명 내용을 전해왔다. “여성부 장관 시절인 2002년 7월 화진화장품 강현송 회장이 여성정치연합에 후원을 하고 여성 인력 고용 창출에 기여한 기업이라고 해서 여성단체 추천 몫으로 품신이 올라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런 사정 때문에 당시에는 이 회사를 좋은 기업으로 생각해 몇 달 뒤 창립기념일에 화상 축사를 해달라고 해서 응했던 것뿐이다. 화진화장품에 다단계 피해 잡음이 인 것은 그 다음해 일이었다”.

한때 성공 신화의 대명사로 불리며 2002년 7월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던 화진화장품 강현송 회장의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화진화장품에서 다단계식 영업 방식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3백여 명의 피해자들이 피해자방지위원회(피방위, 위원장 김용석)라는 모임을 결성해 강회장을 상대로 줄기차게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방판 회사인 화진에 들어가 강현송 회장이 큰 부자가 되게 해주겠다며 제시하는 판매 및 승진 제도와 보상 플랜을 믿고 따랐다가 결국 쪽박을 찼다고 호소한다.

화장품 사재기 대열에 가담하는 과정에서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구, 친·인척들의 카드까지 돌려 막기하는 바람에 온 가족이 신용불량자가 되고 자살과 이혼 등 가정 파탄이 그치지 않았다는 호소들이다. 이들은 화진화장품이 대외에 선전해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여성 능력 개발과 여성 인력 고용 창출이 결국 이처럼 여성을 집단 신용불량에 빠뜨리는 영업 방식이냐고 항변한다. 지금까지 일곱명의 화진 피해자가 자살했고, 파산에 이은 이혼과 행방불명 등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비닐하우스와 교회 등을 전전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것으로 밝혀졌다.

화진 피방위의 이같은 피해 호소에 대해 화진화장품측에서는 본인들의 책임이지 회사에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영업사원들에게 사재기를 하도록 강요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 자살자들이나 신용불량자들도 원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거나 기존에 신용불량자들이 들어왔다가 적응에 실패해 나간 뒤 화진에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층 추적 결과 이런 공방이 일게 된 이면에는 화진 강현송 회장의 독특한 여성 정신 교육과 이를 통한 무리한 판매 독려 방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1982년 화장품 판매 회사 (주)화진화장품을 설립한 강회장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2백억원의 부도를 내 위기를 맞는다. 이후 100여명의 영업사원으로 새 출발한 화진은 ‘성공 여성’을 기치로 불법 다단계 판매 방식을 도입해 사세를 급격히 확장해나갔다.

 
여기에는 그가 성공 여성의 대명사로 내세운 박형미 부회장의 활약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연인원 70여 만명의 여성이 그의 교육을 받고 화장품 판매 대열에 나섰다고 한다. 그 결과 2003년까지 연간 2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려 IMF 당시 진 빚을 다 갚은 것은 물론 12개의 판매 계열사를 확장하고, 강남 노른자위 땅인 삼성동에 24층짜리 빌딩을 매입했다. 또 ㅅ저축은행의 대주주가 되었으며, 경기도 안성에 공장 부지용으로 1만 평의 땅을 사들였다. 이런 외형 성장을 배경으로 강회장은 각종 사회단체에도 활발히 얼굴을 내밀었고, 여기저기 강연도 많이 했다. 그가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도 이 무렵으로, 그의 활동이 긍정적으로 알려지면서였다.

그러나 화진화장품 사세 급성장의 이면에는 강회장의 발목을 잡게 되는 불법 다단계와 탈세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강회장이 전매특허처럼 자랑해온 여성 고용 창출과 능력개발 교육의 핵심은 불법 다단계 판매 방식으로 증원을 독려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그가 직접 나서 전국 지점망에 위성 중계해온 영업사원 교육용 테이프를 확보해 분석한 결과 핵심 내용은 ‘성공하고 싶으면 증원을 하라’는 강력한 주문이었다. 주민등록등본 2통만 떼서 화진에 신입 영업사원으로 입사하면 60, 70대 여성도 대기업 부장이나 국장 급으로 승진을 할 수 있고, 빠르면 6개월 안에 이사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해준다는 식이다. 지사장은 100만원, 국장은 2백만원, 본부장 3백만원, 이사 430만원의 직급 월급을 보장한다는 그의 교육에 현혹돼 수많은 여성들이 부나방처럼 몰려들어 사재기 대열에 동참했다.

법인세·부가세 2백96억원 추징당해

그러나 이런 방식을 통한 여성 고용 증대라는 강회장의 야심은 안에서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사회적 성공을 독려하는 그의 정신 교육을 받고 화진에 들어온 수많은 중노년 여성들이 기를 쓰고 승급을 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여 카드로 사재기를 했다가 급기야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15억원을 날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2년 강회장이 대통령 표창을 받을 당시 2천여 명의 여성을 각종 간부로 고용 창출했다는 공적을 부각했지만 확인 결과 현재 이 여성들은 대부분 화진을 떠나고 극히 일부만 남아 있었다.

이렇게 떠난 이들이 피해를 호소하며 피방위를 구성해 강회장에게 대항해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강현송 회장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이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 고용을 창출했다고 내세웠던 많은 여성이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데 대해서도 ‘영업회사의 특성’상 원래 그렇다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박형미 전 부회장(현 파코메리 대표)조차 최근 펴낸 저서 <그곳에 파랑새가 있다>에서 화진 교육과 다단계 판매 방식의 폐해를 이런 요지로 고백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세일즈를 시작했다가 목표를 달성하면 고정급을 받는 관리자로 승진시켜준다는 유혹에 못 이겨 시키지 않아도 사재기를 하다가 가정이 파탄 나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등 각종 폐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나는 오랜 경험을 통해 이 승진이라는 미끼, 이른바 ‘완장’의 유혹이 주는 폐단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승진이 곧 독약이다”.

 결국 한때 강회장의 심복이었던 박형미 부회장의 표현대로라면 강현송 회장이 제공한 ‘독약’을 마신 수많은 여성들이 피해자의 대열에 들어선 셈이다. 강회장은 자신이 사재기를 시키지 않았다지만 기자가 이틀 동안 신입사원 교육을 직접 받은 결과 화진의 교육 방식은 사실상 교묘하게 다단계 판매를 유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급증하는 신불자와 가정 파탄, 심지어 자살자까지 발생하는 상황에서 화진을 떠난 이들은 2003년부터 피방위를 결성해 화진화장품의 숨은 정체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강현송 회장을 서울 중앙지검과 국세청에 고소했다. 이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2004년 11월26일 강현송 회장에게 방문판매법 위반과 조세범처벌법 위반을 적용해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판결에 따르면 강현송 회장은 화진화장품에 불법 다단계 판매조직을 개설해 관리 운영하며 5만 명을 판매원으로 가입시켜 3천억원 상당의 상품을 판매했고, 소속 판매원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면서 회사측이 원천징수한 사업소득세 14억원을 포탈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와 별도로 2004년 강회장은 국세청에 허위 세무신고를 한 혐의로 세무사찰을 받고 2백96억원의 법인세와 부가세를 추징당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처지는 바뀌지 않았다. 이 판결 이후 강현송 회장은 피방위를 상대로 보복에 들어갔다. 피방위의 활동으로 인해 영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의 대결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불법 다단계 판매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강회장은 화진 피해자들을 가차없이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일부 피방위 간부들이 화진을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강회장의 명예를 훼손하고 폭력을 사용하고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소송에 대해 법원은 일부 피방위 간부들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비록 피해 구제 활동 과정에서 위법 행위를 한 데 대한 유죄 인정이었다지만, 이 판결은 화진 강회장에게 대해 고작 1억원의 벌금형을 내린 것과 비교하면 상식이나 사회 통념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형평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화진화장품측에서는 불법 다단계 판매 행위와 조세 포탈이라는 과거의 잘못에서 벗어나  올 해 들어서는 새로운 판매 제도와 승진 제도를 도입해 문제의 소지를 없앴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성학 총괄이사는 “방판법에 3단계 이상을 두면 문제라고 하니 2단계로 줄이고 신분보장을 해줘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법률 검토를 거쳐 지난 2월부터 신제도를 도입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가 이틀에 걸쳐 잠입해 새로 개편했다는 신입사원 제도 교육을 받은 결과 이 제도 역시 사실상 다단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첫날 강현송 회장이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여성 정신교육을 시킨 뒤 이튿날 수당과 승진 제도 교육을 했다. 판매사원으로 입사해 본부장과 지점장, 상무, 수석상무, 전무,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구조인데 역시 가장 강조하는 대목도 증원이었다. 판매사원이 본부장으로 승진하려면 필수적으로 세명의 하위 판매원을 끌어들여야 하고 매출도 매달 5백만원씩 두 달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 윗선도 지점 분할이라는 증원 방식이 단계마다 필수였다. 신입사원이 7개월 만에 상무로 승진할 수 있다고 현혹하기도 했다. 교육에 참석한 30여 명의 여성은 대부분 50~70대 노년층으로서 영업사원으로 입사해 증원만 잘하면 고액 월급을 받는 간부로 승진할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는 반응을 보였다.

화진 피방위에서는 올 들어 바뀐 제도도 무늬만 변했지 사실상 다단계라며 2004년 법원 판결 이후 화진에서 나온 피해자들과 함께 강회장을 상대로 방판법 위반 및 사기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제이유 사태를 계기로 이처럼 불법 다단계 및 방판 업체를 엄벌해달라는 피해자들의 절규에 관련 당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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