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의 자진 수거 작전
  • 안병영 객원 편집위원 ()
  • 승인 2006.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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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 안전성에 관해서라면 미국은 선진문명국가임에 틀림없다. 정부의 간섭을 싫어하는 미국인들도 농무부·식품의약국·환경보호국 등의 음식물 안전도 발표에는 귀를 기울인다. ‘먹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 ’이고 보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한 예로, 작년말 美정부 발표로는 과일·채소·곡물류 검사에서 96%가 엄격한 농약함유량 기준에 합격이었으며 나머지 4%도 기술상 불합격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61%는 완전 무공해라고 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지난 20여년간 관민이 건강관리를 떠들어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수준이라면 70년간 이런 음식만 먹었을 경우 농약으로 인한 발암확률은 1백만분의 1이 되는 셈이라고 한다. 그러나 식품관리에 관해서라면 소비자는 정부발표로 만족하지 않는다. 환경오염과 먹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청산완료! ”를 외치지 않는다.

 

회사 신뢰도 높이는 전면 수거

 ‘牛脂라면 ’불량식품 이야기가 이미 한국신문에서 사라졌으나 사건의 원인과 결과는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현대사회에선 정제된 장기보존용 식품이 많아지게끔 되어 있다. 통조림식품, 냉동식품, 건조식품, 비닐포장식품, 화학처리식품, 마이크로웨이브처리 식품, 우주여행용 식품···. 이런 종류의 식품관리와 안전도는 정부 규제기관, 소비자, 업계 자체의 검사기구, 연구소 등 모두가 합심해서 계속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미국의 대형 식품회사는 소비자 교육 및 보호를 위해 중역을 두고 회사 이미지를 위한 홍보에 노력한다. 사소한 미비점이 있으면 방송·신문을 통해 떠들어대면서 자진 수거·무료교환 등을 통해 회사의 신뢰도를 높인다.

 한국의 라면소동은 미국신문에 ‘누들 스캔들 ’로 보도되었다. 이 뉴스가 나가자 필자가 근무하는 <워싱턴포스트>의 몇몇 동료들은 1906년의 화제 소설 《정글》을 이야기하였다. 업튼 싱클레어의 유명한 이 소설은 당시 시카고 도살장의 불결한 정육업 실태를 몰래 심층 취재해 폭로한 문제작이었다. 이 소설은 다시 신문에도 연재되었는데 이 때문에 고기값은 폭락하고 테디 루스벨트 대통령은 조사단 구성을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이 식품업계 조사결과는 결국 ‘청결음식 및 의약품법 ’제정을 유도했다. 얼마 전 CBS뉴스는 양계업의 닭고기 공장 종업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작업해 살모넬라균이 발견됐다는 보도를 하여 소동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이러한 식품업계의 자진 수거 작전과 언론계의 끈질긴 취재보도는 물론 소비자의 높은 의식수준과 요구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의 식수회사 ‘페리에 ’가 벤젠 검출사건과 관련, 물건을 전면 수거함에 따라 발생한 회사 손해액이 7천만달러로 발표됐다. 그러나 이 때문에 미국시장에서 이 회사의 신뢰도는 높아졌다.

 식품문화의 발달은 물론 경제성장의 결과이다. 대소를 막론하고 미국 신문들엔 일주일에 한번은 음식 부록판이 나온다. 일주일분 식료품 쇼핑을 주말에 하는 가정을 위해 대개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세일광고와 함께 내보낸다. 군살빼기에 바쁜 선진국병이 퍼지게 되면 한국신문들도 식품란이 확장되고 식당소개란이 확대될 날이 올 것이다. 음식에 관한 특집기사들엔 으레 뉴욕의 청과상들이 소개되고 부지런한 한국교민 가게가 환히 웃는 주인 얼굴사진과 함께 자주 보도된다.

 작년 미국에서는 사과소동이 있었다. 한 사설연구소의 조사발표로 홍색 사과에 살포된 알라농약이 암을 유발한다는 것이었다. 하루에 사과를 10개씩 1백년을 먹어야 있을까 말까 한 미미한 결과를 보고 온 국민학교가 사과배급을 중지했으며 사과농가는 큰 타격을 받았다. 최근엔 한국산 배의 농약검출로 美세관이 수입금지령을 내린 일이 있다. 한국에서 미국산 자몽에서의 농약발견 뉴스가 터져나오자 미국 무역대표가 화를 내며 사실무근임을 주장한 일도 있다. 이런 경우 양국은 실험실 자료로 싸워야 하며, 이같은 싸움은 무역의 경상수지 차원이 아니라 인간복지 향상과 소비자 건강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할 문제인 것이다.

 

“현재는 식료품가게가 바벨탑 ”

 최근 미국은 또 HACCP(위험도 분석 및 주요 통제항목)시스템의 확대를 논의하고 있다.     HACCP시스템이란 무엇인가. 과거에는 음식의 안전도를 무작위 샘플검사·상품검열 등으로 측정해왔었다. 이것을 농사 초기단계부터 식탁에 오를 때까지 총괄적으로 과학적 모니터링, 즉 검사측정 방법을 하이테크化한다는 것이다. 이는 25년전 우주인 존 글렌이 여행전 식중독에 걸리지 않도록 우주항공국이 연구해낸 방법이었다.

 몇 년전부터 미국에선 ‘섬유질 유통론 ’이 큰 유행이다. 식품회사마다 섬유질 첨가 신종식품을 내놓고 광고를 한다. 이 때문에 필자는 미국인들에게 배추·무우김치와 찌개, 해장국의 섬유질에서 쾌변·쾌면을 일찍이 찾아낸 한국 음식문화의 선진성을 자랑할 기회가 많았다.

 지난주 보건장관 루이스 설리번은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다. “현재는 식료품가게가 바벨탑이고 일반 소비자는 언어학자·과학자·점쟁이가 되어야 하는 혼란상태다. ” 따라서 소비자들이 알기 쉽게 각 식품업자가 모든 품목에 영양가 자료를 명시하도록 곧 연방정부 규정을 발표하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정제된 모든 식품에 내용물을 명기하고 있다. 화학물질·보존가능기간·색깔 등이 적혀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방과 섬유질 및 콜레스테롤 함유량까지 명기된다면 그것은 큰 변화를 의미한다. 미국시장에 라면을 수출하던 한국 식품가공업계도 이 기회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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