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韓, 어디로 갈 것인가
  • 표완수 편집위원 ()
  • 승인 1989.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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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西화해ㆍ自由化물결 거스를 수 없을 듯

北韓도 변화할 것인가. 베를린 장벽 개방으로 절정에 오른 東歐의 개혁ㆍ개방화 분위기가 체코슬로바키아, 불가리아 쪽으로 더욱 확산돼가면서 그런 물음이 자연히 제기된다. 北韓에도 그러한 開放의 바람이 파급된다면 그것은 언제가 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손쉽게 해답을 내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한사회가 철저하게 폐쇄되어 있을 뿐 아니라 1人독재체제 사회의 특성상 이 문제는 金日成 자신의 意中을 헤아리는 데서 그 해답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다만 몇가지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北韓의 개혁ㆍ개방화 가능성을 보는 학자들의 시각과 해외언론의 진단은 대체로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다. 현재의 상황에서 北韓으로서는 개혁ㆍ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다만 그 시기와 속도에 대해 약간의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변화를 내다보는 두가지 시각

 북한의 변화에 대해 낙관적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은 북한에서도 완만하기는 하지만 이미 변화가 시작됐으면 金日成 사후 그것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이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관해 낙관하는 이유는 북한주민들이 경제적 풍요에 대한 욕구증대, 낙후된 경제에 대한 잡권층의 자각, 그리고 외부적 요인으로 최근의 東歐圈, 소련 등 공산주의국가들의 급진적 개혁ㆍ개방추세 등 주로 경제적 요인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히 金日成 사후 등장할 金正日의 후계체제가 정통성이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새체제의 구축을 위해서도 새로운 경제경책의 제시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美 켈리포니다대 동아시아연구소장)는 “북한은 외부정세의 변화와 내부의 개혁욕구로 인해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으며, 매우 느리긴 하지만 이미 변화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북한의 변화 움직임에 대해 회의적 눈길을 보내는 학자들은 金日成 주체사상으로 인한 북한체제의 지나친 경직성이 북한의 개혁ㆍ개방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정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추구하는 (경제) 개혁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그들의 견해이다.

梁性喆교수(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는 “金日成이 정치적ㆍ신체적으로 건재하고, 金日成-金正日 후계구축과정이 극적으로 대체되지 않는 한 북한에서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 또는 鄧小平의 경제객혁과 같은 정치ㆍ경제변혁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개혁을 거부하고 있는 루마니아에서 최근 지지를 보냄으로써 東歐의 개혁운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이것은 소련이 동구권국가들의 개혁을 적극 권장하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

 북한은 대내적으로도 주민들에 대한 사상학습을 강화함으로써 동구권의 개혁ㆍ개방화 바람이 북한사회에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가가 인민들의 생활을 책임지고 돌보는 것은 사회주의제도의 참다운 우월성”이라고 강조한 11월10일자 <로동신문> 논설 등은 그같은 노력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부정적 측면과는 달리 북한이 최근 최고인민회의 안에 외교위원회를 신설하고 위원장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許錟을 기용한 것 등은 개방화를 겨냥한 조치로 풀이되고 있다. 이처럼 양면적인 북한의 반응은 개혁ㆍ개방화와 관련, 북한이 지금 커다란 딜레마에 빠져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정책의 흐름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개혁ㆍ개방은 피할 수 없는 大勢

 최근까지 북한이 취해온 대외정책 노선이 실제적인 면에서 개방화에 기울어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中ㆍ蘇국경지역에 경제特區를 설립키로 한 것이나 로마에 통산대표부를 설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등은 단적인 예다. 북한이 금년들어 합영사업에 적극성을 띤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북한은 소련의 개혁정책을 공개적으로 찬양했었다. <로동신문>은 7월6일자 사설에서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 업적을 말하면서 “사회ㆍ경제적 발전을 증진하고 사회주의를 새로운 지평으로 올려놓기 위한 페레스트로이카가 오늘날 깊이있게 진행되고 있다”고 논평한 바 있다.

 이처럼 北韓은 적어도 경제적 측면에서는 개혁ㆍ개방화의 노선을 조심스레 밟아온 것이 사실이다. 11월1일자 韓ㆍ폴란드 수교에 대한 북한측 반응은 북한이 정치적으로도 조심스럽게나마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폴란드가 국교를 수립하기 2주 전 北韓에 對韓 수교방침을 전달하자, 북한은 호감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폴란드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게 우리나라를 방문, 수교의정서에 조인하고 돌아간 마이에프스키 폴란드 외무차관의 말이었다.

 이같은 북한노선의 기본원칙은 이미 작년에 굳혀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9월 정권수립 40주년 기념식에서 金日成은 그 점을 분명히 했다. ‘美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 괴뢰’를 비난하던 그는 갑자기 다음과 같이 어조를 바꿨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主權을 존중하는 자본주의국가들과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자본주의국가들과도 평등 및 상호존중의 원칙에 입각, 경제ㆍ기술협력과 문화교류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그 나라 국민들과도 우호관계를 증진시켜 나갈 것이다.”

 이같은 북한의 변화 움직임은 서방언론에 의해 그대로 전달되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여름 平祝기간중 북한의 변화된 모습을 소상히 전한 바 있다. 이 신문은 “북한이 더 개방적이고 국제적으로는 덜 대결적이며 국내적으로는 덜 탄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전하면서 “나는 외교관계에 대해 잘 모르지만 만일 미국인들이 평화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한 한 학생의 말을 인용했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 보면 북한 내부적으로는 개혁ㆍ개방을 위한 준비작업을 단계적으로 진행하면서 소련과 동구권의 例를 조심스럽게 관찰한다는 신중한 현실주의 노선을 수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東歐圈의 격변상황은 북한의 입장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동구권의 변화 자체가 북한을 어렵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속도와 변혁의 범위가 북한의 입장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일부 동구국가들의 개혁ㆍ개방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되고 진척돼 왔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과 같은 급격한 양상을 보이리라고는 소련이나 당사국들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소련의 과감한 개혁과 중국의 신중한 개방화 사이에서 단계적인 현실적응을 조심스럽게 모색해온 북한의 딜레마는 이런 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1월5일 金日成이 갑자기 北京을 찾아가자 관측통들은 한국의 유엔가입 노력에 소련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과 관련, 이를 제어할 필요성에서 金의 訪中이 이루어졌다고 진단했으나 金의 訪中에는 보다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목적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유엔가입에 관한 문제 못지 않게 사회주의권의 일대변혁에 대한 대응문제가 양측의 주요하고도 시급한 관심사였을 것이다. 북한이 소련과 東歐圈의 과감한 개혁ㆍ개방화 노력을 국제정치의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개혁ㆍ개방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 과감하게 뛰어들 것인가, 이 문제는 북한의 소련 및 중국과의 관계를 접어두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中ㆍ蘇가 북한의 정신적ㆍ경제적 후원국이라는 측면에서 뿐 아니라 북한 스스로의 노선정립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과 中ㆍ蘇 양국과의 관계는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어떤 면에서는 개혁ㆍ개방문제에 있어서 북한과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볼 수있다. 趙紫陽 전 총서기 주도 아래 진행되던 과감함 개혁ㆍ개방정책이 6ㆍ4 天安問사태로 일단 중단되기는 했으나 국민들의 개혁정책에 대한 욕구는 아직도 내연상태에 있다. 중국지도부도 경제난 타결을 위해 개혁ㆍ개방정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나 정치적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에 엉거주춤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對韓관계에 있어 소련에 비해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이유들로 인해 북한이 개혁ㆍ개방문제와 관련, 자신의 노선을 세워나가는 데 중국의 진로는 북한에 중요지침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소련은 최근들어 韓ㆍ蘇교류 확대에 적극성을 보이면서 對북한 관계가 다소 소원해진 듯한 인상을 주고 있으나 북한과 소련은 현실적으로 쉽게 소원해질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북한의 對蘇 수입은 북한 전체 수입의 약35%에 달하며 수출은 약28%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같은 추세는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밖에 북한은 안보목적에서도 소련의 과학ㆍ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대내외정책은 소련의 과감한 개혁ㆍ개방을 크게 무시할 수 없다는 게 현실적인 분석이다.

 개혁ㆍ개방화 문제에 대한 소련과 중국의 미묘한 입장차이는 향후 북한 대내외정책의 운신의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개방이나 폐쇄,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그 한계를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소련의 한 권위있는 북한문제 전문가는 향후 10년 이내에 북한이 엄청난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엇보다도 경제적 절박성 때문에 북한의 개혁ㆍ개방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이 전문가는 북한의 변혁은 金日成의 생존여부, 제3자에 의한 권력대체에 관계없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위의 견해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큰 흐름을 타고 서서히 변화해갈 것이라는 일반적 관측과 다를 바가 없다.

 

김정일의 권력승계 거의 확실

 그러면 북한은 현재의 딜레마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관해 朴漢植(美조지아大)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한다. “변화하는 국내외 정치환경을 고려할 때 북한은 서구에 대해 일련의 진취적이고 화해적인 정책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까운 장래에  북한당국은 서방국가들에 대한 외교정책의 한 지도원칙으로서 ‘政經분리’의 원칙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 원칙 아래 북한은 대외무역을 증진하고 서방으로부터 과학ㆍ기술 도입을 축구하며 합작투자를 포함하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북한과 대화ㆍ공존을 시도하고 있는 한국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의 개방ㆍ개혁을 어떻게 점치고 있는 것일까. 北韓사정에 정통한 서울의 한 高位 官邊소식통은 北韓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아무리 늦어도 5년 이내에 북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라고 낙관적인 견해를 밝힌다. 이 소식통은 이 문제에 세가지의 變數를 지적하면서 이 변수에 따라 북한의 변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변수란 첫째 金日成의 死亡, 둘째 한국과 소련ㆍ중국과의 관계개선, 셋째로 한국의 政治的 安定과 북한에 대한 태도의 유연성 등이다. 이 분석에 따르면 40년 이상 神처럼 군림한 金日成이 健在하는 한 북한에서의 本質的 개혁이나 개방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權力은 대폭 그의 아들 金正日에게 이양되었으나, 外交, 軍事등 북한의 死活이 걸린 중요한 결정은 아직도 김일성이 내리고 있다.

 “김일성은 아직도 會社경영에 있어 會長의 자리에 앉아 있고 김정일이 일상업무를 맡는 社長이라고 보면 된다.” 이 官邊소식통의 말이다. 김일성에 대한 個人崇拜가 지속되는 한 북한이 보다 폭넓은 개방사회로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만78세를 바라보는 청각장애가 심한 노령기에 접어들었다.

 만일, 김일성이 사망할 때 모든 중요한 일을 그의 판단에 의존하는 북한의 장래는 어찌될 것인가. 다시 소식통의 분석을 들어보자.

 “金正日이 일단 權力을 장악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김일성이 누린 절대권력을 계속 행사할 능력이 그에게는 없다. 김일성이 지닌 카리스마가 있는가. 일본ㆍ한국ㆍ미국과 싸운 장구한 투쟁경력이 있는가. 반대파를 숙청하고 권력을 거머쥘 정치적 술수가 있는가. 그는 제2의 ‘수령’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김정일이 권력은 계승하겠지만 唯一사상ㆍ唯一체제는 붕괴된다. 결국, 김정일을 頂上으로 하는 불안정한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돼 과도기를 이끌어가야 하는데, 얼마나 지속될지 성패는 미지수다.”

 절대적인 독재자가 죽은 다음 으레 취약한 집단지도체제가 뒤따른 것이 소련이나 중국 등 공산세계에 일어났던 권력승계 현상이다. 그것은 곧 제한된 의미에서나마 정치적 多元化가 가능함을 뜻한다.

 이 官邊소식통은, 개방을 반대하는 보수적인 군부 주도세력과 개방개혁에 찬성하는 관리세력간에 분열의 가능성도 있으나, 우선 權力空白의 위기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양대세력을 망라한 混成聯合體制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는 보수파로서 인민무력부장 吳振宇, 前 人民軍總參謨總長 吳克烈, 人民軍총참모장 崔光, 그리고 對南사업비서 金仲麟 등을 들었으며, 개혁개방에 찬성할 수 있는 인물로 국제정세에 밝은 許錟, 金永南, 大時海 등을 손꼽았다. 개혁개방파로 지목된 인물들은 모두 북한의 외교를 담당하고 있는 實力者들이다.

 “만일, 金正日이 민첩하게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면서 보수ㆍ개혁 양측을 통합하는 정치적인 솜씨를 발휘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는 權力을 굳힐 수 있겠고, 실패한다면 거세되고 말 것이다. 끝내는 歷史의 큰 흐름을 탄 새 지도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한 이 소식통은 김정일에겐 “영화ㆍ예술을 좋아하는 낭만적 취향과 김일성의 革命路線을 代를 이어 끌고 가려는 강경한 기질이 있어보이는데, 문제는 그가 김일성 死後 전개될 혼란을 수습하고 북한국민에게 희망을 주면서 잡다한 세력을 통합해서 이끌어갈 능력이 있느냐에 있다”고 전한다.

 북한의 선택을 점치는 데 두 번째 變數는 북한을 둘러싼 국제환경의 變化다. 지난 1년간 가속화되고 있는 共産圈의 변화는 명백히 개방과 개혁을 두 기둥으로 하는 自由化의 물결이다. 더구나 한국과 소련,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조만간 북한을 開放으로 몰고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두나라는 북한의 友邦이고 後援國이다. 군사적ㆍ경제적으로 북한은 전적으로 소련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예컨데 51억달러의 外債가운데 절반이 소련에 진 빚이고 MIG-29의 공급등 신종무기 역시 소련에 의지하고 있다. 한편 국제정치에서 중국은 북한의 후원자 역할을 맡고 있다. 中ㆍ蘇가 한국과 평화적이고 우호적 회교관계를 맺게 될 때 북한이 끝내 고립해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中ㆍ蘇 두나라는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언제쯤 한국과 이들 두나라와의 관계가 정상화될 것인가. 이 官邊소식통에 의하면 소련과의 國交正常化는 빠르면 1~2년이내에, 늦어도 3~4년내에 이루어진다는 전망이다. 여기에는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이 순조롭게 진전한다는 단서가 따른다. 폴란드, 헝가리 및 유고슬라비아와의 修交는 이미 이루어졌거나 곧 이루어질 것이며 自由化의 물결을 타고 있는 다른 東歐圈나라들도 1~2년내에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할 것이고 소련은 이미 한국의 유엔가입에 반대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얼마전 서울을 방문한 소련의 전직 고관은 韓ㆍ蘇교역량이 韓ㆍ中교역량과 맞먹게 될 때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다고 예언했다.

 현재 韓ㆍ中교역량은 연간 30억달러 정도인데, 韓ㆍ蘇교역량은 5억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韓ㆍ蘇간 경제협력관계는 급속도로 긴밀해지고 있고 이 추세라면 3~4년내에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이 韓ㆍ蘇 修交의 결단을 내렸을 때, 한국과의 관계에서 소련보다 더 깊은 이해관계가 있다고 보는 중국 역시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체로 向後 3~4년이면 결판이 난다. 북한이 中ㆍ蘇 두나라와 담을 쌓고 살아간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국제적 현실에 적응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같은 고위 소식통의 이야기다.

 다음으로 北韓개방화를 촉진할 수 있는 다른 하나의 큰 변수는 한국의 안정과 유연성있는 對北정책이다. 만약 한국이 만성적인 정치위기와 사회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北에서 판단한다면 평양측은 ‘南朝鮮革命’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강경노선을 고수할 것이다. 반대로 한국이 민주화과정을 착실히 진척시켜 체제의 안정을 꾀하고 과감한 분재정의를 실현해서 사회안정을 구축했을 때 그것은 독일의 예에서 보았듯이 北韓에 가장 강력한 개방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北의 對南정책노선은 따라서 南韓체제의 안정화 여부에 그 열쇠가 있는 셈이다.

 

‘東歐충격’으로 더 폐쇄될 것이란 진단도

 지금, 북한은ㅿ權力의 승계ㅿ경제의 近代化ㅿ외부세계에 대한 개방 등 세가지 당면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세가지는 서로 맞물려 있는데, 근본적으로는 김일성式 1인 숭배체제를 고수하는 가운데, 이 세가지를 성취하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평양축전’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심스런 개방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북한경제는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외국의 자본과 기술도입 없이 이른바 ‘主體思想’만 가지고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방은 경제건설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과제다.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자는 것, 이 구호가 오늘의 북한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고립해서 살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大院君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결국은 北에도 고르바초프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식통의 견해이다.

 북한의 개방화에 南韓이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안으로 民主化와 分配正義를 다져가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南北교류를 다져가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南北접촉과 교류를 확대하는 데 노력하는 것 말고 별 방법이 없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낙관론과 대조적인 비관론을 펴는 고위 정부관리도 있다.

 南北關係를 다루는 또다른 고위관리는 이같은 낙관론을 성급한 희망적 관찰이라 규정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북한은 아직도 김일성의 唯一사상에 지배되고 있으며, 金은 첫째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성공할 것인가에 회의적이고, 그 成敗를 시간을 두고 지켜보고 있으며, 둘째로 중국에서 10년간 실시된 개방정책이 결국은 天安門사태를 초래하였데 유의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북한지배층으로선 더 보수적으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물론, 동구권에서 불고있는 自由의 바람이 북한지배엘리트에게 엄청난 심리적 충격을 주었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그러니까 북한도 자진해서 開放하고 改革해야겠다는 발상보다는 오히려 문단속을 단단히하고 기다려보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을 것이다.”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명실상부하게 정권을 인수받았을 경우 북한이 어찌될 것인가는 누구도 자신있게 점 칠 수 없는 일이고, 우선 당장에는 東獨사태가 결코 북한의 닫혀있는 문을 활짝 여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것이라는 것이 그의 관측이다.

 단기적으로 보아 그의 관찰은 맞는 얘기인지 모른다. 지난 9월에도 북의 선전기관들은 “당의 혈통을 혼탁하게 만들려는 이단적인 사상조류와의 투쟁을 全黨的 규모로 수행중이며 경애하는 김일성동지가 이 투쟁을 조직, 주체혈통의 순결성을 지켜냈다”고 보도하였다. 아직도 金日成父子의 권력승계가 불완전하다는 이야기가 들리지만, 동시에 스탈린주의식 통제체제를 더욱 다져 “제한된 개방 속”에 외부에서 스며드는 ‘불순한’ 이단사상을 씻어내자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북한 로동당은 10년마다 당대회를 열어 중요 정책을 채택해 왔다. 제6차 당대회가 80년 10월에 있었으므로 아마도 내년중으로 제7차 당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짙다. 그때까지 북한의 지배층은 權力의 승계, 경제의 근대화 및 문호개방 등 어려운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특히 남쪽정부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남한과의 平和共存관계를 모색할는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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