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죽만 울리는 사법부 개혁
  • 김상현 기자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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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개혁안에 비관론 많아···“자정 안하면 더 큰 희생 부를 수도”

 “사법부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  외부로부터 칼을 대지 않는 한 개혁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 가운데 사법부만큼 민주화가 진전되고 깨끗한 곳은 없다.”

 똑같은 사법부를 놓고 이를 바라보는 안과 밖의 시각은 이처럼 극단적이다.

 지난 2일 언론은 대법원이 △법관 비위 등 내부 감찰 강화 △전관예우 풍토 개선 △변호사들이 판사실 출입 규제 및 개인적 접촉 제한 △법관회의 활성화?상설화 △사건번호 순서대로의 재판 진행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사법운영개혁안’을 마련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법관윤리강령’제정을 검토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같은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실의 ㅁ판사(38)는 “사법 개혁안에는 애초부터 법과 비위를 사찰한다는 부분이 들어 있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판사가 아닌 법원 일반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법조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감사하겠다는 의도가 와전됐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이 같은 발표를 놓고 한 재야 법조인은 사법 개혁의 본질을 피해 변주만 주리는 짓이라고 꼬집었다.

 

“변호사 출입 규제는 20년전 수법”

 주무 부처인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5일부터 감사관 4~5명씩을 각 지방하급 법원들에 보내 기강?직무 등을 중심으로 특별 감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광주 지방법원의 ㅂ판사(38)는 무엇을 감사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판사에 대해서는 어떤 점을 감사하는 것이냐고 관계자에게 물었더니‘판사들의 출근 시간이나 점검해보자는 것이다’라는 대답이었다.  출근을 5분 늦게 하는 것이 개혁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ㅂ

판사는 반문했다.

 대법원이 사법 개혁안에 따라 눈에 보이는 조처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사법 개혁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결실을 거둘 수 없으리라는 비관론이 많다.  정종섭 교수(건국대?법학)는 “대법원의 사법 개혁안을 들여다보면 요즘의 거센 사정 바람을 의식해 개혁하는 시늉만 내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권교수는, 변호사들의 판사실 출입을 규제하겠다는 내용은 이미 20여년 전에 써먹었던 수법이라면서 “변호사가 판사실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만으로 그들 사이의 거래관계를 차단할 수 있으리라는 발상 자체가 우습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에서는 이 조처가 그동안 세간의 의혹을 받아온 변호사가와 판사 간의 그릇된 유착관계를 끊는 데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실무자는 이 조처를 어린아이의 익사를 방지하기 위해 무가에 철조망을 치는 것에 비유하면서 “변호사?판사의 불법 거래 관계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포착해내기도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민사지방법원의 ㄱ판사(30)는 “시도 때도 없이 변호사가 찾아오는 바람에 업무에 방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실질적인 효과가 있든 없든 환영한다”라고 말했다.

 이 조처에 대해 변호사들은 대체로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인천( ? )≫지에 ‘변호사여 부끄러워하자’라는 글을 기고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  ?  ) 변호사(35)는 “변호사가 업무상 꼭 필요해 판사실에 들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  변호사가 판사실에 들어가는 목적이 검은 거래를 하려는 데만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듯해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대법원이 내놓은 사법 개혁안 중에는 법관회의를 상설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평판사도 직급별 법관회의 및 법원장 주재 회의를 통해 사법 행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일반 행정 업무에 법관들을 어느 선까지 참여시키는가 하는 문제, 법관 회의에 권한과 기능을 부여하는 문제 등은 아직 합의되지 않은 상태이다.  법원행정처의 한 실무자는 “법원마다 실정이 다르기 때문에 한달 간의 실험을 거쳐 가장 합리적인 운영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 상층부에서는 지금처럼 법원장이 법관들과 가끔 회식하고 모여서 차 마시면 그게 회의지 따로 법관회의를 둘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반발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지법의 ㅂ판사는 대법원의 사법 개혁안이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개혁이 진행되는데 사법부만 가만히 있으면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테니까 뭐라도 하는 시늉을 내야겠다는 의도에서 하는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비판한다.  전관예우 풍토를 개선하겠다는 내용의 경우 “아무런 문제는 없지만 세간에서 하도 부당하다고 떠드니까 그냥 포함시킨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전관예우에 관한 한 법원의 공식적인 입장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이다.  법원 행정처의 ㅁ판사는 “전관예우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판사만 1천명이 넘는데 문제가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개혁 성향을 지닌 법조ㆍ재야 인사와 법학계 교수들은 상층부 숙정이 사법 개혁의 출발점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정종섭 교수는 “법원 내부에도 사법 개혁을 바라는 목소리가 분명히 있다.  이를 상층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는 비개혁적ㆍ반개혁적 인물을 먼저 청산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정교수는 또 “정치 판사들 스스로가 새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곡 용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검찰 같은 외부 국가 권력이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학계ㆍ언론계에는 5공 인사 없는가”

 인하대 법대의 한 교수는 “국보위에 참여했던 5공 인사가 끼여 있는 등 법원 상층부인사 가운데 는 개혁 대상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지난번 공직자 재산 공개 때 보인 사법부의 태도는 자신의 반개혁성을 여실히 보여 준 것이다.  사법부 독립을 외부의 일절 불간섭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국민의 공감대를 얻어 시대에 역행하는 인물을 물갈이하는 것은 독립권 침해라고 볼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의 한 관계자는 “그 같은 무책임한 말은 곤란하다.  학계나 언론계에는 5곡 인사가 없는가”라고 반문하며서 사법 개혁안에 구체적인 인사조처 계획은 들어 잇지 않다고 밝혔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성골이니 진골이니, 행정처파니 비행정처파니 하는 인사상의 비리도 심각한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는 판사들을 군대의 ‘하나회’ 회원에 비유한다.  그들끼리 행정처 보직을 인계인수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할 때쯤이면 ‘누구는 대법원의 고위직 판사와 어떤 관계여서 어느 자리에 내정돼 있다”는 식의 소문이 떠돈다.  그리고 그 소문은 대개 사실로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판사 보직에 관한 유일한 조항은 법원조직법 제44조(판사의 보직은 대법원장이 행한다)뿐이다.  누가 어떤 경로로 전보되고 임명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정종섭 교수는 사법 문제를 인식하는 법관과 교수?언론이 공조체제를 갖춰 사법 부패의 실체를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법조계의 부패와 불합리를 국민에게 소상히 폭로함으로써 사법 개혁의 필요성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지법 서부지원 민사1단독 (  ?  )판사(36)는 6월 출간될≪법과 사회≫에 기고한 ‘개혁 시대의 사법의 과제’라는 글에 “사법부가 개혁 노력을 게을리 할 경우 더 큰 희생을 불러올 것이다”라고 썼다.  이 글은 <법률 신문>에 기고했으나 신문사측이 거절해 실리지 못하고 ≪법과 사회≫에 실렸다.  사법부 스스로가 개혁 작업에 나서지 않는 한 김판사의 우려는 현실로 드러날 지도 모른다.

 대법원이 내놓은 사법 개혁안의 구체적 실체가 나오기도 전에 한계부터 거론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전시적인 몇몇 조처를 내리는 데 그쳐서는 안되고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라는 안팎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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