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함 돋보인 ‘정치 문외한’
  • 박중환 국제부장대우 ()
  • 승인 200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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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참피 총리, 이틀 만에 조각 … 몇시간 뒤 4명 탈퇴


 이탈리아 정치 개혁은 초반부터 순탄치 않다. 중앙 은행 총재 출신인 카를로 아젤리오 참피 총리 지명자(72)는 4월26일 스칼파로 대통령으로부터 조각을 위임받은 지 이틀만에 초유의 거국 내각을 짜는 등 정치 문외한답지 않은 노련함을 보였다. 그러나 겨우 몇시간 뒤 옛 이탈리아공산당인 좌익민주다(PDS) 소속 3명과 환경당 출신 1명이 내각에서 탈퇴해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이들은 하원이 베티노 크락시 전 총리의 면책특권 박탈 여부를 결정짓는 표결에서 정치자금 부분만 가결하고 독직과 장물 수수 부분을 부결한 데 반발하며 탈퇴했다. 그러나 참피 총리는 표결은 하원의 결정일 뿐 그의 내각과는 관련없다고 밝혔다.

 좌익민주당과 환경당은 탈퇴 성명에서 “새 정치를 가로막는 새로운 추행”이라고 반발했으며, 개혁을 주도해온 롬바르드연맹은 부표를 던진 것으로 지목된 사회당 의원을 ‘도적들’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각료 2명을 참피 내각에 참여시킨 공화당은 일단 이탈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현 의회는 국민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영향력 있는 야당들의 연정 이탈과 조기 총선 요구로 정국이 계속 불안해질 경우 스칼파로 대통령은 상·하원 의장 가운데 한사람을 비상과도내각의 수반으로 지명한 뒤 총선을 앞당길 가능성도 있다.

 이탈리아의 새 정부는 정치인의 부정·부패뿐 아니라 고질적인 인플레와 예산 낭비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하고 있는 정치를 구제해야 하는 과업을 안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상원의원 선거와 정치자금에 관한 제도를 개혁하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 정치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순수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정치인이 정치자금을 스스로 조달하도록 한 데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2차대전의 비극을 겪은 이탈리아는 독재를 막기 위해 순수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덕택에 독재가 재출현하는 것은 막았으나 군소 정당이 난립하는 바람에 전후 51회나 여정을 거듭하는 혼미를 보여왔다. 정치 부패는 60년대 좌익계 정당이 공산권 국가로부터 정치 자금을 지원받자 우익계 정당이 이를 빌미로 삼아 각종 이권에 공공연히 개입하면서 만연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새 정부는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상원의원(선출의석 3백15)은 4분의 1만 비례대표로 뽑고 나머지를 다수대표제직선으로 하도록 법을 개정하고, 선거 비용을 국가가 전액 지원하되 정당의 정치자금 모금을 일절 금지 하는 법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정치 개혁을 주도적으로 요구해온 북부연맹 소속의 마르코-포르멘티니는 “국민투표 결과가 즉각 실행되지 않을 듯하다. 현 제도를 지속시키는 어떤 것도 결단코 반대한다”며 새 정부를 벼르고 있다.

 이탈리아 중앙 은행 총재 시절 ‘유럽 금융계의 신사’라는 별명을 얻은 참피 총리는 이탈리아 중앙 은행을 독일의 연방 은행처럼 강력한 위치에 올려 놓은 인물이다. 그는 14년간 총재직에 있으면서 정치권의 입김을 막는 데 크게 이바지했으며, 지난해 가을 유럽 통화 위기 때 리라화의 붕괴를 막았다. 그는 공식 출장 때에도 특급 호텔에 묵지 않는 검소함으로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다.

 그는 국민의 열화 같은 개혁 요구와 압도적인 지지만 받고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썩은 정치와 혼돈스런 정국을 개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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