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3파전 속 ‘심풍’은 어디로?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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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교·이명수, ‘지지율 답보’ 이완구 맹추격

 
“왜 항상 호언장담만 하십니까?” “아니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의원 시절 청양군에 코오롱 그룹이 1조5천억원 규모 투자를 하게 하겠다고 공약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기업이 안 들어오겠다는데 난들 어떡합니까?” “수십억원 예산만 낭비한 것 아닙니까? 도대체 강한 추진력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할 만큼 했는데 결과가 좋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지난 5월10일, KBS 대전총국이 주최한 지방선거 토론회에 나선 충남참여자치연대 이상선 상임대표와 한나라당 충남지사 후보로 나선 이완구 전 의원이 방송 뒤에 벌인 설전의 내용이다. 드잡이까지 갈 뻔했던 이들의 다툼은 사회를 맡았던 박성준 아나운서의 제지로 겨우 수습되었다. 이런 모습은 후끈 달아오른 충남지사 선거 열기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충남지사 선거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1위 후보의 독주가 두드러지지 않고 전국적으로 드물게 3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일찍 뛰어들었고 높은 당 지지도라는 후광효과까지 누리고 있건만, 한나라당 이완구 후보(29.7%)는 30%대 지지율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후보는 뒤늦게 선거전에 뛰어든 열린우리당 오영교 후보(19.2%)·국민중심당 이명수 후보(11.6%)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

아직 성향 드러내지 않은 '숨은 표' 많아

주목할 만한 사실은 무응답층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충남의 무응답 비율은 33.8%에 달한다. 서울(17.5%)·경기(27.4%)·광주(24.8%)·제주(19.6%)와 비교했을 때 월등히 높다. 특히 무응답이 단순한 부동표가 아니라 성향을 드러내지 않은 ‘숨은 표’라는 점에서 후보들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아이캔뉴스 안재휘 대표(전 대전일보 편집국장)는 “대대로 충청도 표는 가장 늦게 반응했다. 숨은 표가 드러나고 부동표가 움직이면 지금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이완구 후보가 앞서가고 있는 가운데, 오영교 후보는 20대(24.2% 대 22.4%)와 화이트칼라 계층(35.3% 대 15.7%)에서, 지역적으로는 대전 근교권(25.5% 대 15.9%)에서 이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수 후보는 30대(17.5%), 블루칼라 계층(21.9%)에서, 지역적으로는 오 후보와 마찬가지로 대전 근교권(17.6%)에서 선전하고 있다.

 
충청권 유권자들은 후보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로 소속 정당을 꼽았다. 충청남도는 이번 <시사저널> 여론조사에서 모든 후보에 대해서 그를 선택한 이유로 인물이나 공약 대신 소속 정당을 가장 많이 꼽는 지역이었다. 현재 충남지역의 정당 지지도는 한나라당(34.6%), 열린우리당(23.2%), 국민중심당(10.4%), 민주노동당(5.5%) 순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완구 후보와 오영교 후보의 지지율이 아직 당 지지율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충남 정가에서는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은 것에 대해 내홍을 겪으며 우왕좌왕하는 ‘축소 지향의 국민중심당’에 대한 실망감이 한나라당 표 결집으로 나타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국민중심당에 대한 실망감은 고건 전 총리의 행보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나타난다. 고 전 총리의 대권 행보에 대해서 ‘한나라당과 연대해야 한다(18.0%)’거나 ‘열린우리당과 연대해야 한다(15.8%)’는 대답이 민주당이나 국민중심당과 연대(6.2%)해야 한다는 답변보다 훨씬 많았다.

국민중심당, 막판 '심풍'에 기대

국민중심당은 막판 ‘심풍’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심대평 전 지사의 역할 수행에 대한 평가는 ‘매우 잘해왔다(15.8%)’와 ‘대체로 잘해왔다(59.6%)’로 상당히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수 캠프의 이명우 대변인은 “전성기를 누릴 때도 자민련은 50% 이상 득표하지 못했는데, 심대표는 도지사 선거에서 70% 가까운 표를 얻었다. 심 대표가 본격적으로 나서면 판도가 바뀔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오영교 캠프 역시 ‘심풍’의 세기와 방향에 주목하고 있다. 충남은 대구·경북만큼 보수 성향의 지역이라 ‘심풍’이 한나라당 이완구 후보 표를 잠식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오후보가 어부지리를 얻어 팽팽한 삼각 구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영교 캠프의 임흥재 미디어특보는 “이완구 후보의 지지율이 30%에서 계속 정체되고 있다. 역전할 기회는 충분히 있다”라고 말했다.

오후보에게 고무적인 사실은 오후보 지지자의 투표 참여 의사(71.1%)가 이후보 지지자(66.6%)보다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열린우리당 후보들의 경우 대부분 전국적으로 적극 투표의사층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간격이 벌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오후보 캠프에서는 행복 도시로 이름을 바꾼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해 표 결집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행복 도시라는 숯에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 캠프에서는 한나라당 의원이 중심이 되어 행복도시 폐지법안을 발의한 것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장벽이 높다. 일단 토박이 충청권 표심이 이후보 쪽에 기울어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 ‘숨은 표’가 한나라당 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충청 출신의 토박이 충남 도민에게 오영교 후보는 16.7% 지지율을 얻어, 이완구 후보(31.4%)의 절반 정도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특히 자민련 태동지라고 할 수 있는 공주와 부여 등 중부 내륙권에서는 이완구 후보(42.2%)가 오영교 후보(10.2%)를 압도하고 있다.

'장항선 벨트'에서 한나라당 초강세

오후보로서는 이른바 ‘장항선 벨트’라 불리는 천안·아산·온양·예산·보령·장항 등 서북부 지역에서 부진한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전체 충남 인구의 40% 정도가 밀집해 있는 이곳에서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오 캠프에서는 이를 자민련 합당 효과가 발현된 것으로 분석하고 산업자원부와 대한무역진흥공사 등을 거친 오후보가 외자 유치 능력이 있음을 드러내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오후보는 “이미 일본 부동산 업체로부터 3천5백만 달러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MOU(투자의향서)를 체결했다. 외자 유치는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충남 정가에서는 차령산맥 이북인 서북부 지역과 차령 이남 내륙 지역의 ‘소지역주의’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선거의 관건이 되리라 보고 있다. 이명수 후보 캠프의 이명우 대변인은 “서북부 지역은 박근혜 대표 연설을 듣다가 기절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곳이다. 심대평 대표가 지사 시절 도청 이전을 남부 지역으로 결정한 것에 대한 구원까지 있어서 국민중심당으로서 공략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선거전이 벌어지면 오영교 후보 진영과 이명수 후보 진영에서 이완구 후보를 협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충남지사 선거의 승부는 이후보가 얼마나 수성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이후보는 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선관위로부터 여러 건이 고소당해 있는 상황이고 한나라당과 자민련을 왔다갔다한 점, 청양군에 1조5천억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했다가 무산된 것 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세 후보가 각축하는 가운데 민주노동당 이용길 후보는 힘겨운 선거를 치르고 있다. 보수 성향의 충남권은 전국적으로 민주노동당 지지도가 가장 낮게 나오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성장을 통한 분배가 아닌 공정한 분배를 통한 성장’이라는 민주노동당의 기본 이념을 설파하고 있다. 이후보 캠프의 이재기 대변인은 “당 인지도 제고를 통해서 기초의회나 광역의회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힘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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