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부대라도 만들어 달라”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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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 등 예술계, 병역 특례 축소 움직임에 강력 반발…콩쿠르 현장에 서도 ‘볼멘소리’

 
“자 줄을 서서 순번 추첨을 해주세요. 배경 음악 테이프가 바뀌지 않도록 꼭 확인하세요.” 5월11일 오후 서울 세종대학교 광개토관 15층 대기실에서 무용학도 50여 명이 늘씬한 다리를 치켜올리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토슈즈를 신은 여성 무용수뿐만 아니라 검은 타이즈와 흰 레오타드를 차려입은 남자 무용수들도 보였다. 오후 3시가 되자 추첨한 순서에 따라 한 명씩 강당 무대에 올라 심사위원 앞에서 춤 솜씨를 뽐냈다. 공연하는 학생들이나 지켜보는 학부모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제36회 동아무용콩쿠르 대회 예심 풍경이다. 

대부분 예술대 학생들인 이들에게 동아무용콩쿠르에 입상하는 것은 성공에 이르는 관문의 열쇠다. 남자라면 특별한 의미가 더 있다. 대회 1위 입상자는 예술 공익요원으로 편입되어 사실상 군 복무가 면제된다. 동아무용콩쿠르는 병무청장이 정하는 이른바 13개 ‘군 면제 대회’ 가운데 하나다.

예술 분야 특례자, 체육 분야 앞질러

무대에 오르기 전 대기실 바닥에 둥글게 모여 앉아 몸을 풀던 남자 지원자들 사이에 화제는 단연 병역 특례 제도였다. “앞으로 군 면제 안 해준다는 게 사실이야?” 지난 4월20일 열린우리당 임종인·김원웅 의원을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 11명이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예술·체육 분야 공익근무 요원 자격 요건을 법률로 규정하고 그 종류를 제한하는 것이 이 법안의 골자다. 체육 분야 공익요원의 경우는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예술 분야는 국제 대회 1·2위 입상자로 한정했다. 동아콩쿠르나 중앙콩쿠르 같은 국내 대회 입상에 대해서는 혜택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 법안 내용이 알려지자 문화계는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예술 발전을 저해한다며 수용 불가 의견을 냈다. 예술계 가운데에서도 무용계가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무용협회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우수한 기량을 가진 학생들이 외국 경연대회 참가만 목표로 할 것이기 때문에 국내 기초예술 교육이 황폐해질 것이다”라며 반박성명을 냈다.  11일 동아무용콩쿠르 예심장에서 기자를 만난 지원자 이현준씨(20)는 “무용하는 근육과 운동하는 근육은 다르다. 군대에 2년 동안 있으면 몸이 굳어서 재기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사실 일반 국민들에게 예술 분야 공익요원 제도가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예술 공익요원으로 편입되면 4주 훈련만 받은 뒤 평소 자신이 속해 있던 기관(학교 등)에서 활동할 수 있어 사실상 군 면제와 같다. 1973년 이래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체육 분야 7백10명, 예술 분야 3백96명에 달했다. 최근 들어 체육 분야보다 예술 분야 수혜자가 더 많아지고 있다. 2005년의 경우 체육 분야 특례자는 네 명이었지만 예술 분야는 40명이나 되었다.

 
2005년 예술 공익요원 편입자 40명 가운데 국제 대회 1·2위 입상자는 일곱 명, 국내 대회 1위 수상자가 33명이었다(세부 내역은 표 참조). 33명 가운데 동아일보·중앙일보가 주최하는 대회 입상자가 14명으로 절반 가까이 된다.

예술계와 해당 콩쿠르 주최 신문사의 반대와는 달리 일반 국민들의 여론은 다소 냉소적이다. 대학생 이용주씨(25)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한국 대표에게 병역 특례를 줄 것이냐에 대해 논란이 많았는데, 국내신인상 입상만으로 면제되는 제도가 있었다니 허탈하다. 주변에 군대 입대로 꿈을 접는 친구들이 많은데 유독 예술 분야만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예술계 내부에서도 다소 이견이 있다. 국립무용단 단원 김윤수씨(37)는 차세대 한국 무용을 이끌 인재로 손꼽히는 실력자다. 하지만 그는 면제 혜택을 받지 않고 군 복무를 했다. 김씨는 “군대 가면 무용 못한다는 말은 다소 과장되어 있다. 노력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오히려 병역 특례 때문에 후배들이 콩쿠르에만 목을 매는 폐단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한 임종인 의원은 “병역을 상벌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군 복무 기간을 단축한다든지, 병영 문화를 바꾼다든지, 대체복무제를 도입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야지, 누구를 군대에 보내고 말 것이냐는 것이 병역 논란의 초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징병제 국가 가운데 예술 분야 특례 제도를 두는 나라는 드물다(상자 기사 참조).

절충안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11일 동아콩쿠르 대기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던 강원대 무용학과 백영태 교수는 “만약 국민들이 원해서 예술 분야 병역 특례를 없앨 수밖에 없다면 대안을 만들어 달라. 음악 분야는 군악대라도 있는데 무용은 탈출구가 없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학생이 “러시아에는 발레리나로 구성된 부대가 있다”라고 귀띔해주었다. 이래저래 병역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현재 병역 특례 요구를 하고 있는 곳은 한류 스타 연예인, 과학 영재, 이공계 기능공 등 17개 분야(2만5천명 대상)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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