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댐 건설이 웬말이냐”
  • 정희상 기자 ()
  • 승인 2006.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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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70만㎾ 생산용 추진…전문가·주민 “생태계 파괴·식수오염” 힘껏 반대

지리산 세석고원에서 등산길을 따라 곧장 내려가면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가 나온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 예치마을 주민 1백40여명은 요즘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산간지역 주민들로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수몰민 신세가 될 처지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이곳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대규모 양수 발전용 댐을 건설하기로 하고 타당성 조사를 마친뒤 환경처에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제출했다. 양수 발전소란 위와 아래에 두개의 댐을 만들어 위의 댐 물을 아래의 댐으로 흘려낼 때 생기는 낙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방식이다. 즉 전력소비가 적은 심야에 남은 전력을 이용해 하부댐 물을 상부댐으로 퍼올린 후 낮시간대에 전기를 얻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삼랑진과 청평 두곳에 양수 발전소가 있다.

한전은 이곳 지리산 일대를 양수 발전소 건설 최적지로 선정하고 2천년대의 전력수급난을 해소하기 위해 전력 70만㎾(35만㎾짜리 발전기 2대)를 생산하는 댐을 건립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지리산 중턱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에 아랫댐을, 같은 면 반천리에 윗댐을 각각 올해 안에 착공해 99년 말까지 6년간 대역사를 벌일 예정이다.

이같은 한전의 공사 계획이 알려지자 수몰 예정지구인 예치마을 주민은 물론 진주 지역 환경단체와 산악인들이 즉각 댐 건설 반대운동에 들어갔다. 지난해말 전원이 반대서명을 한 예치마을 주민은 수몰민으로 전락하게 될 자기들의 처지 말고도 반대 이유가 또 있다고 말한다. 이 마을 이장 이성배씨는 “댐이 들어서는 곳은 전국에서 몇 안남은 천혜의 자연자원 보고이다. 이곳에 발전소가 생겨 환경이 파괴되면 장기적으로는 댐에서 얻을 이익보다 더 큰 국가적 손실이 생길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양수 발전소 건설로 인한 지리산 환경 파괴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진주 지역으로 내려가면 더 크게 들린다. 댐이 들어설 경우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곳 중의 하나가 지리산에서 발원하는 남강을 끼고 있는 진주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진주시에 있는 민간 환경보호 단체인 ‘남강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은 최근 ??지리산 보전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시민의모임 회장인 강대성 변호사는 지리산에 양수 발전소를 건립하는 데 따르는 문제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국제 생태학계는 완전한 생태계 면적이 4백㎢가 넘는 산악은 지리산(4백40㎢)뿐이다. 그러나 지리산마저도 그동안 무분별하게 도로와 위락 시설을 만들면서 크게 파괴 되어버렸다. 그 결과 1백60종에 이르던 희귀 조류는 최근 절반으로 줄었고 곤충이 77종이나 멸종했다는 조사보고서가 나왔다. 여기에 댐까지 들어선다면 지리산은 회복하기 힘든 대규모 생태계 파괴를 겪을 것이다.??

시민의모임은 우선 지리산에서 발원하는 남강의 물을 직접 식수원으로 삼게 될 진주·사천·삼천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반대운동을 조직해 나가고 있다. 지리산 생태계가 불안전해지면 식수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민의모임은 갖가지 홍보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한전측에서 내놓은 환경영향평가서를 놓고 환경관련 전문가·학자와 산악인·지역주민 등을 초청해 시민공청회도 벌였다.

한전은 이같은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댐 건설을 강행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험준한 계곡을 막아 댐을 건설하므로 다른 다목적댐에 비해 규모가 작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게 한전측 주장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환경처에 환경영향평가서 최종안을 제출한 한전은 댐 건설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정부 12개 부처와 협의를 서두르고 있다.

지리산 양수 발전소 건립 사업에 참여한 한전 강정삼 환경조사부장은 댐 건설이 가져올 환경파괴에 대한 대책을 이렇게 말했다.

“수몰예정 지구에 서식하는 각종 야생동물과 천연기념물은 물이 차오르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므로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또 위?아래 댐 물이 계속 순환하므로 진주시민의 식수원 오염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한전은 이밖에도 5년이 넘는 공사기간에 유출될 사토에는 조경을 하고 상류에 가물막이댐을 설치해 수질오염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전, 전문가·시민단체와 협의 외면

한전의 이같은 대책에 대해 미흡하다는 생태학자들의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이경재 교수(서울시립대·조경학)는 “한전은 댐 건설 지역 주변에 서식하는 층층나무?서나무층층나무?서나무느티나무 군락을 녹지자연도 7등급으로 취급해 개발해도 영향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 나무 군락은 최소한 1백여년 이상 보존했을 때 나타나는 수종이다. 현행법이 20∼50년생 나무에 해당하는 8등급 이상은 개발을 금하니까 멋대로 7등급을 매긴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뿐만 아니라 댐 건설로 안개가 끼는 날(안개일)이 늘면 지리산 중턱의 건조한 토양에서 자라는 천연림에도 영향을 미쳐 수종이 변화할 것이 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민족의 영산이자 유일하게 남은 천혜의 자연자원 보고인 지리산에 댐 건설이 미칠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공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댐 건설 예정지 주변을 추적조사한 김인호 교수(경상대·물리교육학)는 더욱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개발 강행에 따를 문제점을 지적한다.

“지리산 양수 발전소는 면적은 작지만 깊이가 깊어 수량이 6백30만㎥나 된다. 댐이 건설되면 연간 안개일 수가 아랫댐 근처는 77일, 윗댐 근처는 43일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로 인해 지리산 식생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그는 한전측이 댐 건설 후보지 주변의 기상·기후·대기질 조사를 8개월 만에 마치고 문제가 없다고 발표한 것은 기후환경을 논의하려는 자세가 아니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환경단체 및 전문가들의 이같은 우려에 대해 한전측이 마주앉아 협의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데 있다. 지난해말 시민의모임이 지리산 양수 발전소 건설에 대한 공청회를 마련해 각계 인사를 초청했으나, 한전측은 “일방적으로 마련한 토론에는 응할 수 없다??며 불참했다. 이에 대해 시민의모임은 한전이 시민의 환경감시 기능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고 간주하고 댐 건설 강행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시민의모임은 등산철이 시작되는 3월부터 매주말 댐 건설 예정지에서 대규모 등반대회를 열어 반대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4월2일로 예정한 전국환경단체연합체 결성과 때를 맞춰 전국민을 상대로 ‘지리산 보존운동??을 펼치겠다는 계획도 마련했다.

결국 올해 안에 댐 건설 공사를 서두르려는 한전측과 이를 저지하려는 민간 환경단체들이 맞부딪침으로써 지리산 개발을 둘러싼 논쟁은 국내 환경문제의 새로운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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